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
코로나19 국면서 몸집 키워
수백억원 투자 유치했지만
과한 톱스타 마케팅 부메랑
수익 악화로 돌아와 적자 지속

# 고가의 명품은 백화점에서 사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2021년 “명품을 왜 백화점에서 사?”라는 광고 카피가 그 생각을 흔들어 놨다. 마침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라 그 질문이 더욱 와닿았다.

# 사람들은 발품을 파는 대신 클릭 몇번으로 손쉽게 명품을 소유했다.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그렇게 성장했다. 하지만 호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비자는 지금 ‘명품을 왜 플랫폼에서 사?’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팬데믹 기간 몸집을 키운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이 위기에 빠졌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팬데믹 기간 몸집을 키운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이 위기에 빠졌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5월 16일 경복궁 근정전 일대에서 ‘2024 크루즈 컬렉션 패션쇼’를 열었다. 조선시대에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근정전은 화려한 런웨이로 변신했고, 몇몇 착장着裝(의복이나 가구 따위에 부착한 장치)은 한국의 오방색을 차용한 듯 한국의 미를 풍겼다. 

그보다 앞선 4월 29일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한강 잠수교에서 ‘2023 프리폴 컬렉션’을 진행했다. 2019년 10월에 인천국제공항 격납고에서 개최한 ‘2020 크루즈 컬렉션 스핀오프 쇼’ 이후 두번째 한국 패션쇼였다.

한국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주목하는 시장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명품 소비액이 많아서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명품 소비액은 325달러(약 43만원)로 세계 1위다. 미국(280달러)과 중국(55달러)보다 월등히 많다.

한국에 진출한 명품 3대장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가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최대 실적을 기록한 건 이를 방증한다. ‘에루샤’는 지난해 각각 6502억원, 1조6923억원, 1조591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각각 23.3%, 30.0%, 15.2% 늘어난 수치다. 

모건스탠리는 한국 명품시장이 이토록 성장한 이유로 두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순자산이 증가해 구매력이 증가했다는 점, 둘째는 사회적 지위를 명품으로 과시하려는 욕구가 크다는 거다. 이런 분석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데, ‘코로나19’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운신의 폭이 대폭 좁아지자 억눌린 욕구를 명품 소비로 푸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면세점이나 백화점, 아울렛에서 구매하던 명품을 온라인으로도 살 수 있는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이 크게 주목받았다. 이른바 ‘머트발’로 불리는 머스트잇(MUST’IT)·트렌비(tren: be)·발란(BALAAN)이 대표적이다.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빅3인 머트발은 팬데믹 기간 중 사이좋게 몸집을 키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성장한 건 발란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243억원이던 발란의 매출은 지난해 891억원으로 266.4%나 증가했다. 머스트잇은 120억원에서 331억원으로 175.2%, 트렌비는 171억원에서 225억원으로 31.4% 성장세를 보였다. 

머트발의 폭발적인 성장 배경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톱스타를 내세워 TV 광고를 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는 점이다. 주지훈(머스트잇)·김희애(트렌비)·김혜수(발란)를 모델로 기용한 광고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거래액 증가로 이어졌다. 

성장하는 시장인지라 투자 업계도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머스트잇은 2020년과 2021년에 시리즈 A(150억원), 브릿지 라운드(130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한 데 이어 2022년엔 CJ ENM으로부터 200억원 규모의 시리즈 B를 유치했다.

2019년 70억원, 2020년 110억원, 2021년 220억원을 잇달아 유치한 트렌비는 2022년 8월 350억원의 D라운드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한때 기업가치가 ‘8000억원’까지 매겨지던 발란은 누적 투자금액이 총 735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수그러든 2022년을 기점으로 ‘잘나가던’ 명품 플랫폼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몸집을 키우는 동안 체질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다. 머스트잇은 지난해 168억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트렌비는 233억원의 손실을 냈다. 발란은 손실 규모가 2021년 186억원에서 2022년 374억원으로 커졌다.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진 이유가 뭘까.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팬데믹 기간엔 테크기업이 프리미엄을 누렸지만. 엔데믹(풍토병·endemic)으로 오프라인 활동이 가능해지면서 이커머스 전체 성장률이 떨어지고, 프리미엄도 사라졌다”면서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을 바라보던 환상이 사실상 꺾인 셈”이라고 분석했다. 

머트발 특유의 공격적인 마케팅도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세 업체가 광고선전비로 지출한 돈은 지난해에만 총 666억원(머스트잇 158억원+트렌비 122억원+발란 386억원)에 이른다. 3년(2020~2022년)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1400억원이 넘는다.

위기감이 깊어지자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들은 저마다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머스트잇은 수익선 개선을 위해 광고선전비를 축소하는 등 운영비를 절감했다. 지난 1월엔 수수료율을 8.8%에서 12.1%로 인상하고, 직매입 상품 판매를 강화하는 등 매출 확대를 위한 전략도 함께 펼치고 있다. 머스트잇 관계자는 “월간 영업이익이 개선되고 이어 올해 안에 월간 손익분기점(BEP)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렌비와 발란도 광고선전비, 판매촉진비 등을 대폭 줄이며 실속 차리기에 나섰다. 이들을 알린 일등공신이나 다름없는 톱스타 TV 광고는 모두 중단했다. 여기에 더해 트렌비는 명품 중고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발란은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허약해진 체질을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많다. 서 교수는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땐 상관없지만 지금부턴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남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차별화된 핵심 경쟁력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때가 됐다.”
 

[사진|뉴시스, 자료|더스쿠프]
[사진|뉴시스, 자료|더스쿠프]

실제로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의 ‘명품 쇼핑앱 트렌드 리포트 2022’를 보면 머트발에서 구매하는 브랜드 순위는 클래식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 브랜드, 컨템포러리 브랜드 순으로 동일하다. 각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유 역시 ‘정품 여부 신뢰할 수 있어서’ ‘기능이 편리해서’ ‘좋아하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어서’ 등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각 플랫폼의 차별점이 없다는 의미다. 

다시 서 교수의 얘기다. “한번이라도 거래를 했던 이들에게 다른 플랫폼에선 경험하지 못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들은 언제든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별점이 없다면 점점 더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명품 이커머스 플랫폼 업체들은 돌아선 소비자의 발길을 다시 돌릴 수 있을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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