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협력사에도 환경규제 주문
미·EU 탄소세 부과시 부담 커져
켈리 슈 교수 논문의 함의

# 6월 들어 한국 정부는 우리의 시스템이 국제적인 기준(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통보를 연이어 받았다. 정부는 20일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과의 소송에서 패소했고, 22일에는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실패했다.

#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해야 할까. 지난 5월 예일대 켈리 슈 교수가 발표한 녹색 투자에 관한 논문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친환경 투자가 환경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뉴시스]
친환경 투자가 환경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뉴시스]

■ RE100 가입 러시=최근 들어 우리 기업들의 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5일 LG전자는 RE100에 참여한다고 밝혔고, 지난 5월 25일에는 카카오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소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RE100 참여를 선언했다. SK그룹은 2020년 RE100 캠페인 참여 의사를 공개했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이같은 계획을 완료하겠다고 선언했다. 

RE100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국제 환경 캠페인이다. 2014년 환경단체 더클라이메이트그룹 등이 파리협정을 앞두고 시작했다. 이 캠페인이 대중적이라고 보긴 힘들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이 캠페인에 가입한 기업은 전세계 380여개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열심히 가입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애플과 같은 미국 회사들이 이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어서다. 미국 기업들은 이른바 공급망 지속가능 정책을 시행해 협력회사들에도 자신들의 기준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애플은 “2030년까지 전 세계 110개 이상의 협력업체들이 애플 부품을 생산할 때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1년 KOTRA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전체 수출에서 북아메리카 지역의 비중이 15.9%였다. 중국 등 아시아 지역(60.2%)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한국의 유럽 수출 비중은 9.4%다.

■ 글로벌 스탠더드 비용=RE100이란 환경 캠페인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보다 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비용으로 계산해보면 우리 기업에 RE100이 생존의 문제라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KDI국제정책대학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RE100이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한국 기업들이 RE100에 불참하면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 패널 산업의 수출액이 각각 15%, 31%, 40%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보고서는 “한국 기업들이 RE100에 참여해도 자동차·반도체·디스플레이 패널 산업의 수출액이 각각 8%, 9%, 22%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RE100으로 인해 한국의 대표적 수출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하면서 신재생에너지에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주는 필수조건으로 ‘북미 지역에서 제조·조립한 부품이나 핵심 광물을 사용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유럽연합(EU)이 준비하는 핵심원자재법(CRMA)의 핵심도 역외국가에서 수입한 원자재에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다. 


EU는 올해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범 도입해 철강·알루미늄·전자제품 등 수입품에 3년 후부터 탄소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미국도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했었다. 결국 RE100이든 탄소세든 우리 기업들은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탄소 관련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  글로벌 스탠더드 미달 논란=한국 정부는 지난 20일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과의 1조원대 국제 소송에서 패소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 배상금 5358만6931달러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엘리엇은 2018년 ‘한국 고위 공무원들이 삼성그룹 총수 일가와 결탁해 외국 투자자를 노골적으로 차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소송의 핵심은 정부가 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가 아니라 정부가 국민연금의 표결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외국인 투자자를 차별했는지다. 재판부는 우리 정부의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국가의 행위가 아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이터는 지난 20일 한국 정부의 패소를 보도하며 “한국 대법원은 2022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얽힌 비리 스캔들과 관련해 국민연금에 삼성 합병을 승인하도록 압력을 가한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징역형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단순히 제도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한국이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실패했다. [사진=뉴시스]
한국이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실패했다. [사진=뉴시스]

22일에는 한국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 편입에 실패했다. MSCI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시장 접근성이 여전히 낮다고 판단했다. 디미트리 멜라스 MSCI 지수 정책위원장은 “한국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끌어올리려는 계획을 제안했는데, 정책이 시행되면 그 영향과 효과를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MSCI는 지난 8일 ‘시장 접근성 평가보고서’를 공개하고 한국의 외환시장 자유화 수준 등 6개 항목을 ‘개선 필요’로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MSCI가 선진국 지수 편입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외환시장 전면 개방이 설령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정부도 외환시장의 전면 개방을 택하는 대신 거래 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접근했다. 우리가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될 경우 어느 정도의 외국인 투자가 늘어날지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 글로벌 스탠더드의 역설=지난 5월 15일 예일대 켈리 슈 교수는 ‘비생산적인 지속가능 투자: 굴뚝산업과 녹색산업의 충격 탄력성’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친환경을 표방하는 펀드가 늘어나면 탄소배출량 감축 등 환경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선입견을 바꿔놓는다. 

켈리 슈 교수는 2002~2020년 3000개 이상 대기업의 탄소배출량을 조사했는데, 지속가능 투자가 실제 탄소배출량 감소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속가능 투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추구하는 펀드다. 논문에 따르면 관련 펀드의 운용자금 규모는 2020년 현재 약 35조 달러이고, 2025년까지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가 RE100 관련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환경단체가 RE100 관련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슈 교수는 논문에서 “굴뚝산업에 속한 회사가 탄소배출량을 1%만 줄여도 일반적인 녹색회사가 탄소배출량을 100% 줄이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며 “ESG 펀드들이 굴뚝산업을 피하고 처벌하기보단 오히려 이런 회사들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 교수가 기후 변화를 둘러싼 우려에 반기를 든 건 아니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투자자들이 굴뚝산업 회사의 이사회에 들어가 친환경 경영을 직접 실행하거나, 굴뚝산업의 탄소배출량 감축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에 직접 투자하면 더 많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슈 교수의 주장이다. 

논문에 따르면 굴뚝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은 녹색회사들보다 평균적으로 261배 많다. 같은 투자금으로 굴뚝산업이 세상을 좀 더 친환경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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