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현대차그룹 ‘훔치기 쉬운 차’ 오명
美 주정부들 현대차그룹 상대 소송
법적 잠금장치 있는데 범죄자 옹호
도난 잦은 건 높은 인기를 방증
잠금장치 중요하면 법 만들어야

미국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일부 자동차가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훔치기 쉬운 차로 낙인찍혀서다. 그러자 미국 주정부들이 ‘왜 훔치기 쉬운 차’를 팔았냐며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는 이 행태에는 심각한 오류가 숨어 있다.

롭 본타(오른쪽) 캘리포니아 법무장관과 홀리 마리엘라 법무차장이 현대차그룹에 리콜을 요청한 기자회견 모습.[사진=뉴시스]
롭 본타(오른쪽) 캘리포니아 법무장관과 홀리 마리엘라 법무차장이 현대차그룹에 리콜을 요청한 기자회견 모습.[사진=뉴시스]

‘훔치기 쉬운 차.’ 최근 미국에서 판매 중인 현대차와 기아의 자동차들에 붙은 오명이다. 미국은 자동차 도난범죄가 잦은데, 유독 현대차그룹의 자동차들이 도난에 취약하다는 이유에서다. 유튜브에는 현대차그룹의 자동차를 어떻게 훔치는지 알려주는 영상까지 적잖게 올라와 있다.

그중 한 영상에는 현대차 쏘나타의 운전대 옆 플라스틱 박스를 뜯고, 충전용 USB케이블을 꽂아 어렵지 않게 시동을 거는 모습이 담겨 있다. 현대차그룹의 차를 훔치는 게 일종의 놀이처럼 공유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각 주는 현대차ㆍ기아의 일부 자동차가 도난범죄의 표적이 되는 이유를 ‘엔진 이모빌라이저’가 달려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엔진 이모빌라이저란 자동차 키에 특수암호를 내장한 칩을 넣어 차체에서 이 칩과 동일한 신호가 잡히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게끔 하는 도난방지 장치다. 쉽게 말해 ‘도난방지 기능이 없는 자동차가 문제’라는 거다.  

이 때문에 미국의 각 주는 현대차ㆍ기아에 책임을 묻는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17개 주의 법무장관과 컬럼비아 특별구는 미국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일부 현대차ㆍ기아 차종의 리콜을 요청했다. 각 주의 도시들은 소송도 제기했다.

뉴욕주의 뉴욕,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위스콘신주 밀워키, 워싱턴주 시애틀 등이 대표적이다. 절도하기 쉬운 자동차를 판매해 미국법상 공적 불법방해(공익을 침해하는 특수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엔 미국 코네티컷주 법무장관이 현대차와 기아의 차량 도난방지 기술 결여 문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윌리엄 통 코네티컷주 법무부장관은 “현대차ㆍ기아에 여러 번 되풀이해서 차량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고 공공안전에 취약한 점을 개선할 것을 요청했다”면서 “양사가 무슨 대책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현대차ㆍ기아의 자동차 도난범죄가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에서 현대차ㆍ기아의 자동차 도난범죄가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미국 각 주에서 벌어지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훔치기 어려운 차를 만들면 도난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에 일리가 없지도 않다. 하지만 자동차 도난사고의 책임을 무조건 제조사에만 지우는 게 옳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이유가 있다. 

■ 문제❶ 범죄자 옹호 = 첫째, 현재 미국 주정부의 행태는 도둑이 멀쩡한 금고를 털었는데 도둑에겐 뭐라 하지 않고, 정작 금고 판매업자에게 잠금장치가 왜 이리 허술하냐고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치에 어긋난다.

현대차ㆍ기아 자동차는 법적으로 정해진 기본적인 잠금장치를 탑재했다. 더구나 자동차 도난범죄는 미국에서 주로 일어나는 범죄다. 우리나라나 일본, 유럽에선 그렇게 쉽게 자동차를 도난당하지 않는다. 미국 시장에서 주로 일어나는 독특한 범죄 상황을 대비해 도난방지 장치를 달지 않았다고 문제 삼는 건 타당하지 않다. 

법적으로 정해진 기본적인 잠금장치가 있는 상황이라면 범죄행위를 비판하고, 이런 범죄자들을 엄벌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옳다. 현대차그룹을 비난하기 전에 도난범죄를 줄일 강력한 처벌조항과 함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시스템부터 손봐야 한다는 얘기다. 

■ 문제❷ 절도의 이유 = 둘째, 범죄자들이 현대차ㆍ기아의 자동차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건 그저 ‘쉽게 훔칠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타고 다니기 위해 차를 훔치는 이들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장물 거래를 통해 돈을 벌려는 게 목적이다. 그러려면 위험 대비 수익이 좋은 차를 골라야 하는데, 그게 바로 현대차ㆍ기아의 자동차들이다.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거다. 

실제로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선호도는 갈수록 상승하는 추세다. 미국 자동차 시장조사기관인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36만4521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시장점유율은 10.3%로, GM(16.7%), 포드(13.6%), 도요타(13.2%)에 이어 4위다. 기존의 4위였던 스텔란티스(10.2%)를 앞질렀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 전기차 부문 경쟁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 문제❸ 규정의 이상한 공백 = 셋째, 미국은 각종 안전 관련 항목을 별도로 정해놓고 있다. 특히 자동차의 기준은 꽤 까다롭다. 가령, 전 차량에 4세대 에어백(무게를 감지한 에어백 시스템)을 의무화했을 정도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의 실적이 좋아지고 있다는 건 이런 까다로운 기준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렇게 철저한 규제책을 적용하고 있는 미국이 유독 ‘엔진 이모빌라이저’ 규정만은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 놓고 현대차그룹의 잠금장치 시스템을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엔진 이모빌라이저가 그렇게도 완벽한 장치라면 지금이라도 엔진 이모빌라이저 혹은 그 이상의 잠금장치를 의무화하면 그만이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은 어떤 규정도 어기지 않았다. 법을 어긴 건 자동차를 훔친 범죄자들이다. 하지만 미국의 주정부들은 범죄자를 뭐라 하기보다는 현대차그룹의 잠금장치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CBS 기자 출신의 한 언론인은 기고를 통해 도둑보다 집주인에게 책임을 묻는 이상한 상황을 비판했는데, 이게 상식적이다. 

법 지킨 기업 아닌 범죄자 탓해야

미국 주정부들의 행태가 비상식적이다 보니 또다른 우려도 생긴다. 언급한 것처럼 현대차그룹은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미국 자동차 업계로선 현대차그룹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자들이 인기 있는 차를 훔치고, 도난사고를 빌미로 미국 자동차 업계가 현대차그룹을 견제하는 것 아니냐고 추론하는 건 지나친 우려가 아니다. 우리도 나름의 대책을 수립할 때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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