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철학의 문제인가 판단 착오인가
줄어든 공공임대 기금 계획
하지만 입주자 만족도 봐야
징검다리 역할 의미 무색할까

50만호 그리고 또 50만호.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공공건설(분양)과 공공임대의 목표 물량이다. 물량으로 보면 똑같지만, 투입한 예산은 다르다. 공공건설 예산은 크게 늘었지만, 공공임대는 그 반대였다. 윤 정부는 왜 공공임대주택을 낮게 평가하고 있을까. 철학의 문제일까.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에 투입되는 주택도시기금 예산을 줄이는 대신 공공건설을 포함한 분양에 지원하는 예산을 늘렸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에 투입되는 주택도시기금 예산을 줄이는 대신 공공건설을 포함한 분양에 지원하는 예산을 늘렸다.[사진=연합뉴스]

국가는 국민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헌법에 근거한 의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집에 이런 헌법적 의무를 다하려는 정책을 담았다. 대표적인 게 공공건설(분양) 50만호다. 분양 유형을 일반형ㆍ선택형ㆍ나눔형 총 3개로 나눠서 수요자가 자금이 부족하더라도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다양화했다.

공공임대주택 정책도 윤 대통령이 내걸었던 공약 중 하나다. 물량은 공공건설과 동일한 50만호다. 건설임대ㆍ매입임대를 매년 각각 3만5000호씩 공급하고 전세임대를 해마다 3만호씩 공급하겠다는 게 목표다. 분양 주택이 3개 종류로 나뉘듯, 공공임대도 영구임대, 국민임대, 행복주택, 통합공공임대로 나뉜다. 

영구임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입주 기회를 주는 방식으로, 최장 50년 거주할 수 있다. 국민임대는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70% 이하인 경우 최장 30년간 입주한다. 행복주택은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00% 이하란 조건과 만 39세 이하란 기준을 충족해야 입주가 가능하다. 

통합공공임대는 각기 다른 단지로 만들어졌던 영구임대, 국민임대, 행복주택을 하나로 합치고 입주자의 소득에 따라 임대료를 다르게 부과하는 임대주택이다. 같은 주택이라 하더라도 입주자의 상황에 따라 행복주택 임대료를 낼 수도 있고 국민임대 임대료를 낼 수도 있다는 거다. 통합공공임대의 경우, 건물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셈이다.

그럼 공공건설과 공공임대주택 계획은 얼마만큼 현실성이 있을까. 이 질문의 단서는 2023년도 주택도시기금 운용방안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공공임대주택부터 보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계획한 기금운용방안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위한 출자ㆍ융자예산(영구ㆍ국민ㆍ행복ㆍ통합)은 4조7663억원으로, 전년(6조1690억원) 대비 22.7% 줄었다. 

대신 늘어난 건 공공건설을 포함한 분양주택을 위한 기금이었다. 같은 기간 분양주택을 위한 출자ㆍ융자 예산은 3163억원에서 1조3955억원으로 341.3% 증가했다. 공공임대보다 공공분양과 민간분양을 지원해 국민 주거의 질을 더 높이겠다는 결정이었다. 분양과 임대를 모두 50만호씩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공공임대를 위한 예산은 크게 줄어든 셈이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그렇다면 공공임대주택의 수요가 적어서 분양 기금 계획만 키워놓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수도권에서 공급되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경쟁률은 민간분양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가령, 수서역세권에서 공급되는 전용면적 55㎡(약 17평) 행복주택의 경우 211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영등포에서 분양했던 한 민간분양 아파트의 평균 경쟁률 198대 1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은 다른 듯하다. 국토부가 올 1월 3일 발표한 ‘주택시장 연착륙과 서민 취약계층 주거안정 역점 추진’이란 자료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고 싶어 하는 응답자 비중은 40% 이하였다. 소득 1~4분위가 42.0%였고, 그보다 소득분위가 높은 계층의 경우 공공주택 입주 의사는 30%대를 기록했다. 공공임대주택의 선호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거다. 

문제는 이 분석이 100% 현실을 반영하냐는 점이다. 이 또한 그렇지 않다. 2023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토지연구원은 LH가 공급해온 5대 공공임대주택(영구임대ㆍ국민임대ㆍ행복주택ㆍ기존주택 매입임대ㆍ기존주택 전세임대)의 종합 실태조사 보고서(이하 공공임대주택 보고서)를 내놨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했던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대주택에 입주하길 희망하는 응답자의 비중은 40% 이하였지만, 정작 임대주택 입주민들의 만족도는 80%를 넘어섰다. 그중엔 어린이와 함께 사는 입주자도 적지 않았는데, “임대주택 거주가 어린이의 양육환경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한 이들은 50% 이상이었다. 

특히 기존주택 매입임대나 전세임대의 경우, 고시원이나 반지하 등 ‘비주택’에서 거주하다가 옮겨온 입주민이 3~6%에 달했다. 공공임대주택에서 민간으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가구도 전체의 14.7%에 달했다. 이런 결과는 임대주택이 주거상향을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공공과 민간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공공임대주택은 주관적인 만족도뿐만 아니라 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공공임대주택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전월세 주택 거주자의 경우 소득 대비 임대료 비중(RIR)이 23.2%에 달했지만, 공공임대의 RIR은 이보다 훨씬 낮았다.

예컨대, 공공임대주택 중 RIR이 가장 높은 건 국민임대로 19.1%에 머물렀다. 같은 조건의 민간임대주택의 시세 RIR(31.4%) 대비 12.4%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진미윤 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공공임대주택은 청년층에게 주거 사다리가 돼주고 있다”며 “공공임대주택을 기반으로 내집 마련 사다리에 올라타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게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의 예산을 늘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철학의 문제인가 판단 미스일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