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수출서 한중일 비중 20%
日 반도체 점유율 20% 목표
中 중동 등 경제지도 넓혀
韓, 가계·기업대출에 발목

# 한·중·일 3개 나라의 지난해 수출액 총합은 세계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미국 수출액은 동북아 3개국 수출액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들 3개국은 전통적으로 수출을 국가 경제의 기반으로 삼으면서 서로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 하지만 팬데믹 이후 동북아 3국의 경쟁 구도에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일본은 오랜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벗어나 ‘반도체 굴기’를 전면으로 내세웠고,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소외되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내수 진작에 나섰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가장 큰폭의 수출 감소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 일본, 중국 동북아시아 3국은 세계 무역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점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전체 수출액은 24조6555억3000만 달러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수출액 3조6055억8100만 달러로 1위, 일본이 7467억2000만 달러로 5위, 한국이 6835억8400만 달러로 8위를 차지했다. 세 나라의 수출액을 모두 합치면 약 5조 달러다. 전 세계 수출의 20%가량을 한·중·일 3개 나라가 차지하고 있다.

그간 동북아 3국은 일본이 기술을 선점하면, 한국이 이를 쫓아가고, 중국이 대량생산에 나서는 방식으로 여러 동일 산업에서 경쟁해 왔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미국의 견제를 받은 중국이 반도체 등 세계 주요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디리스킹(De-risking)’당하고 있다.

그 사이 미국의 사실상 최우방인 일본은 기술적 우위를 앞세워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은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을 해온 나라들과는 다르게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경기 부흥에 나서고 있다. 

■ 日, 반도체 굴기=일본 경제산업성은 2021년 6월 4일 ‘반도체 전략’을 발표하고, 같은달 18일 내각에서 이를 국가의 성장전략으로 선정했다. 주요 내용은 반도체 제조기반을 재생해 첨단 반도체 양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인 지난 6월 6일 경제산업성은 ‘2021년 반도체 전략’을 수정해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일본이 2030년까지 반도체 매출을 2020년 목표치였던 5조엔(약 45조원)의 3배인 15조엔(약 13조5000억원)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대만 TSMC의 일본 공장에 4760억엔, 자국 반도체회사들에 총 4229억엔을 보조금으로 제공해 일본 국내총생산(GDP)을 4조2000억엔으로 늘릴 계획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990년 50% 이상에서 최근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를 2030년까지 20%까지 늘리겠다는 게 일본의 목표다.

일본은 반도체를 국가성장전략의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일본 도쿄의 컨테이너항 모습. [사진=뉴시스]
일본은 반도체를 국가성장전략의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일본 도쿄의 컨테이너항 모습. [사진=뉴시스]

가능성 없는 플랜은 아니다. 일본의 반도체 관련 기술력은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이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일본의 개별 소자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25%,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9%, 아날로그와 반도체 로직은 각각 9%, 6%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65% 점유율을 기록 중이지만, 개별 소자 반도체는 5%, 반도체 로직 시장에선 6%에 불과하다. 

이처럼 동북아 3국의 반도체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일본이 지난 5월 반도체 생산장비의 대중對中 수출을 발 빠르게 규제한 것도 미국의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라기보단 자국 반도체 산업의 보호를 위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중국의 환구시보 영문판은 지난 6일 ‘일본의 반도체 야망은 경쟁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정부가 지난 5월 생산장비 등 반도체 관련 23개 품목을 중국 수출 규제 리스트에 포함했는데, 중국 시장은 물론 일본의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잃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 日 반도체 기술 수준=일본의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여전히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의 도쿄일렉트론(TEL), 어드밴테스트, 스크린홀딩스, 히타치하이테크가 2020년 기준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에 속한다.

실리콘 웨이퍼 시장에서는 일본의 신에쓰화학, 섬코(SUMCO) 2개 회사가 메이저에 속한다. 포토레지스트(감광재)에서는 도쿄오카공업(TOK), JSR이 있다. 식각용 가스 분야에서는 스텔라케미카, 모리타화학, 쇼와덴코가 기술을 선도한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6월 20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인하했다. [사진=뉴시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6월 20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인하했다. [사진=뉴시스]

앞서 언급했듯 반도체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가장 앞선 기술인 10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시장은 대만이 92%, 한국이 8%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은 28~45㎚ 시장에서 5%, 45㎚ 초과 시장에서 13%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일본은 미국 IBM과 협력해 2㎚급 반도체를 2027년 양산하겠다고 발표했다. IBM은 2021년 세계 최초로 2㎚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이 IBM의 기술을 양산하는데 성공하면 여러 단계를 건너뛸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움직임도 빠르다. 6월 26일 포토레지스트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JSR을 일본 국부펀드인 산업혁신투자기구(JIC)가 인수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국부펀드는 JSR 주식 100%를 약 8조원에 공개매수할 계획이다. JIC는 JSR 인수를 마치면 비상장사로 운영할 계획이다. JSR의 포토레지스트 시장점유율은 26%다. 

일본 정부는 해외 반도체 회사들의 생산시설을 유치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지난 3월 삼성전자가 “일본에 첨단 반도체 R&D 개발 거점을 구축한다”면서 3000억원 투자를 결정했고, 마이크론이 5조원을 들여서 일본에 D램 생산라인을 건설하기로 했다. 인텔, TSMC, 삼성전자 등 해외 반도체 회사들이 지금까지 약속한 대일對日 투자액은 2조엔에 달한다. 

■ ‘더블딥’으로 가는 중국=지난 6월 20일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10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인민은행은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기존 3.65%에서 3.55%로 0.1%포인트 인하하고, 5년 만기 LPR도 4.20%로 0.1%포인트 내렸다.

LPR을 인하한 이유는 지난 7일 중국의 관세청인 해관총서가 발표한 5월 무역통계에서 수출증가율이 3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출증가율은 3월 14.8%, 4월 8.5%를 기록했지만, 5월에 -7.5%에 머물렀다.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량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지난 3월 –34.9%를 기록한 데 이어 5월에도 -18.2%를 기록했다.

[자료 | IMF]
[자료 | IMF]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이 반도체 생산에 힘을 기울이는 와중에 정작 중국은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사실상 제외되는 상황인 것도 무역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6%에서 5.4%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따라 중국 경제가 회복한 후 재침체하는 ‘더블딥’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늘고 있다. 

중국의 선택은 경제 지도를 넓히는 것이다. 중국은 아세안에 이어 중동 지역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주선했고,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초청했다.

6월 27일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다. 경제 분야에서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과도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8일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7월 초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이 중국을 찾는다. 

■ 한국의 고민=한국은 동북아 3국 가운데 가장 불리한 상황이다. 한국 무역수지는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경제성장률도 1%대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달리 기준금리를 내릴 상황이 아니다. 한국의 가계·기업대출은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105.0%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았다. 기업대출 비율도 119.6%로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부동산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효과는 사실상 사라졌다. 

원화 가치가 많이 내려왔지만, 여전히 위안화와 엔화에 비해서는 강세가 지속되는 것도 문제다. 하이투자증권은 6월 26일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의 초완화적 정책 기조 유지 결정에 따라 엔화 가치는 하락했다”며 “중국의 금리 인하폭이 시장 기대보다 적고 재정 부양책이 발표되지 않아서 위안화 약세 기대감은 오히려 증폭됐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달러화가 강보합세를 보이는데도 엔·위안화에 비해 원화 강세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다. [사진=뉴시스]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 중 하나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다. [사진=뉴시스]

일본이 반도체 카드를 다시 꺼내 들고, 중국이 중동으로 시선을 넓혀 가는데, 우리 경제 구조는 여전히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디스플레이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불안 요소다. 모든 주력 산업이 중국·일본은 물론이고 대만과도 경합해야 하는 분야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2021년 한국의 수출증가율은 16.1%로 대만 수출증가율 99.1%의 6분의 1에 그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지난해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수출 비중에서 한국의 수출점유율은 2011년 3.1%에서 2021년 2.9%로 0.2%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4.6%포인트, 대만은 0.8%포인트 상승했고, 일본은 1.2%포인트 하락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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