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윤호 변호사의 기록
연이어 발생하는 강력 사건
범죄자는 우리와 뭐가 다를까
지금 짚어봐야 할 악의 평범성
폭력 묵인하고, 방관한다면…
나도 폭력 가담자 될 수 있어
폭력 방관하지 말아야 할 이유

입에 담기 힘든 끔찍한 사건들이 터져 나온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란 공포감과 함께 회의감이 밀려든다. 그런데 ‘폭력’은 사이코패스나 살인마만이 저지르는 게 아니다. 주위의 폭력에 무관심하고 방관하는 것 역시 폭력에 가담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폭력을 막아주는 ‘방어자’가 될 때 우리 사회도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정유정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사진=뉴시스]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른 정유정은 우리가 흔히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사진=뉴시스]

20대 여성이 또래여성을 잔혹하게 살인하고 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23살 정유정은 지난 5월 26일 부산에서 과외 앱으로 만난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 일부를 캐리어에 담아 유기했다. 잔인한 범행과 달리 공개된 범인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했다. 그 모습에 대중을 충격받았다. 길 가다 마주칠 법한 평범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범죄자나 살인자들은 뭔가 다르게 생겼을 거라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겉만 보면 우리와 다를 게 없다. 그럼 정유정 같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이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르기에 그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걸까. 

모두가 그렇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던 필자는 그 의문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어 영화 한편을 켰다. 미국 최악의 살인마 중 한명으로 꼽히는 ‘테드 번디(Ted Bundy)’의 실화를 다룬 ‘노 맨 오브 갓(NO MAN OF GOD·2021년 작)’이다.

테드 번디는 10대 소녀부터 최소 3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로, 1970년대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그 역시 겉보기엔 평범했다. 중퇴하긴 했지만 한때 대학에서 법학과 심리학을 배웠고, 주변인들에게 친절하고 원만한 성격이었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테드 번디는 짐작할 수 없을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고, 1979년 사형을 선고받았다. 실제 사형 집행은 1989년에야 이뤄졌다. 테드 번디가 형 집행을 미루기 위해 10년 가까이 “자백하겠다”며 시간을 끌었기 때문이다.

‘노 맨 오브 갓’은 FBI 요원 모두가 기피하던 테드 번디의 ‘프로파일링(profiling)’을 신참 요원 빌 해그마이어가 맡으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뤘다. 빌은 유족에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테드 번디를 4년간 인터뷰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테드 번디는 자신을 치켜세워주고 친구처럼 대하는 빌에게 점차 경계를 풀고 입을 열기 시작한다. “너와 내가 본질적으로 다른 게 뭘까” “너도 내가 될 수 있었어”…. 테드 번디는 줄곧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과 빌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실제로도 테드 번디는 비슷한 말을 남겼다. “난 짐승이 아니야. 난 미치지 않았고, 다중인격자도 아니지. 난 그냥 보통의 한 사람이야. 우리 연쇄살인범들은 당신의 아들이고 남편이야.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너희도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 나처럼 살인과 같은 악행의 충동을 느낀 적이 있잖아.” 

테드 번디의 주장은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선상에 두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거다. 그럼에도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있다. 우리가 테드 번디나 정유정과 같은 사이코패스(psych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와 다른 건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충동을 행동으로 옮겨선 안 된다는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사유하지 않는 순간 우리도 누군가를 향한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일 홀로코스트(holocaust) 생존자이자 정치 이론가인 ‘한나 아렌트(Hann ah Arendt)’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 

한나 아렌트는 1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매우 사악하고 악마 같은 사람일 것이라 예상했다. 뜻밖에도 그는 친절하고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 모습에 한나 아렌트는 충격을 받았다.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연구한 그가 소개한 개념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스스로 악한 의도를 품지 않더라도 당연하고 평범하게 여기고 한 행동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사유할 수 없는 무능(사유의 불능성)’이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 역시 죄라는 거다. 

이같은 악의 평범성은 학교폭력, 직장 내 괴롭힘, 집단 내 따돌림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가해자가 특정 피해자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분위기를 형성하면, 주위 방관자들은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봐 따돌림에 동참하곤 한다.

이는 폭력을 방관하거나 힘의 우위에 있는 가해자의 비위를 맞추는 방식이다. 우리가 한나 아렌트의 이론을 곱씹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사유하지 않고 행동할 때 의도치 않게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어서다.

폭력을 방관하면 의도치 않게 폭력에 가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폭력을 방관하면 의도치 않게 폭력에 가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료|교육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료|교육부]

학교폭력(이하 학폭) 전문 변호사인 필자는 여러 학폭 사례를 접하면서 한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학폭 피해자에게 관심을 갖고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 했다면, 결코 가해자의 폭력을 방관하지 않았을 거란 점이다. 무관심 속에서 폭력은 더 깊이 뿌리 내리기 마련이다.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최악의 악은 선하다고 자부하는, 귀찮아하는 다수에 의해 탄생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아이들이 피해자를 외면하지 않는 ‘방어자’가 될 수 있으려면 어른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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