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추적+ 빅테크의 배신➋
기습적 가격 인상 또다른 이유
미리 공지했다가 여론 악화
앱마켓 정책 변경 알렸던 구글
국내외서 거센 규제 움직임
규제망 피하려는 선제적 꼼수

빅테크가 은밀하게 가격을 끌어올려도 소비자로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사진=뉴시스]
빅테크가 은밀하게 가격을 끌어올려도 소비자로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사진=뉴시스]

# 유튜브가 최근 미국에서 유튜브 프리미엄의 요금을 조용히 인상했다. 소비자로선 억울할지 모르지만, 유튜브처럼 대형 플랫폼이 요금 인상 등 중요한 정책적 변화를 은밀하면서도 갑작스럽게 발표하는 건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지난 6월 말엔 캐나다에서 넷플릭스가 베이식 요금제를 폐지했다. 애플은 지난해 앱스토어의 인앱결제 수수료를 인상하는 정책을 기습적으로 알렸다가 뭇매를 맞았다.

# 기업들이 소비자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게 뻔한 가격을 쥐도 새도 모르게 올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소비자에게 있다. 유튜브·넷플릭스 등 플랫폼 업체들이 가격을 끌어올릴 때 이용자의 동의를 굳이 구하지 않더라도 플랫폼을 바꾸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 플랫폼 업체들이 가격을 은밀하게 끌어올리는 이유는 또 있다. “가격 등 정책을 변경하겠다”는 걸 선제적으로 알렸다간 세계 각국 규제당국의 ‘포위망’에 제발로 들어가는 격이어서다. 더스쿠프의 심층취재 ‘추적+ 빅테크의 배신’ 두번째 편이다. 

구글은 앱마켓의 결제 정책을 바꾸는 과정에서 많은 뭇매를 맞았다.[사진=뉴시스]
구글은 앱마켓의 결제 정책을 바꾸는 과정에서 많은 뭇매를 맞았다.[사진=뉴시스]

우리는 심층취재 추적+ 빅테크의 배신 첫번째 편에서 플랫폼 업체들의 조용한 요금 인상을 소비자 입장에서 살펴봤다. 싼 값으로 론칭했다가 시장을 지배하는 위치에 오르면 가격을 끌어올리는 플랫폼 업체들의 뻔한 전략을 우리는 여러 차례 지적했다.

이번엔 단 한번도 꼬집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플랫폼 업체들이 가격을 은밀하게 끌어올리는 또다른 이유인데, 그건 규제와 연관성이 깊다. 사실 소비자만 플랫폼의 정책 변화를 지켜보는 건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 역시 예민하게  플랫폼 업체들을 대한다.  

특히 전세계 규제당국은 빅테크의 목을 비트는 규제를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가 국경을 넘나들며 막대한 이득을 거두고 있어서다.   

빅테크가 요금 인상이나 정책 변경을 기습적으로 발표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요금 인상이나 정책 변경을 미리 알리면 세계 각국 규제당국이 ‘규제망’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게 빅테크의 전략이란 거다.  

일례로 구글은 앱마켓의 결제 시스템을 바꾸려다가 모진 풍파를 겪었다. 이 회사가 자사 앱마켓의 새 결제 시스템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IT 업계를 들쑤셔 놓은 건 2020년 7월의 일이었다. 구글의 새 시스템은 게임에만 적용해 온 인앱결제를 모든 종류의 콘텐츠에 확대 적용하겠다는 거였다. 

인앱결제는 앱마켓 사업자가 개발한 내부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걸 뜻한다. 문제는 인앱결제를 이용하면 구글에 최대 30%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개발사 입장에선 기존에 내지 않던 수수료를 내야 하니, 사실상 구글이 수수료를 올린 셈이었다. 이는 이용자의 앱ㆍ콘텐츠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게 뻔했다. 

구글은 그러면서 개발사에 1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정책 시행은 2021년 9월 30일부터 하겠다는 거였다. 그러자 곧장 전세계 정부는 구글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 사업자가 높은 수수료율을 사실상 강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몫 키우기에 나섰다는 이유에서였다.

애플은 구글보다 먼저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있었던 탓에 함께 뭇매를 맞았다. 두 기업의 앱마켓이 전세계 점유율을 90% 넘게 차지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유럽연합(EU) 등이 공정거래법 위반, 시장독과점에 의한 경쟁방해 행위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국회도 나섰다. 2021년 9월 앱마켓 사업자가 특정 결제 방식을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인앱결제 강제금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전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각국의 규제 강화 움직임과 여론 악화에 시달린 구글은 정책 적용 시점을 6개월 더 유예했다. 

과방위 소속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구글이 정책 유예기간을 둔 덕분에 생태계 여론을 수렴하고 법제화할 수 있었다”면서 “이미 시행된 정책을 두고는 ‘편의를 누렸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하는 게 당연하다’는 플랫폼 측의 반론도 뚜렷하기 때문에 되돌리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물론 결과만 따져보면 각국 규제당국의 대응은 무용지물이었다. 구글은 1년 유예에서 6개월을 더 미루고 난 뒤 바뀐 정책을 지난해부터 적용했다.

특히 국내에선 구글을 겨냥한 법을 시행했는데도 구글은 구차한 꼼수로 인앱결제 강제 정책을 밀어붙였다. 개발사 자체결제 시스템을 허용하는 방침을 추가했는데, 이 시스템이 구글에 내야 하는 수수료율 역시 26%로 기존 수수료율(최대 30%)과 큰 차이가 없었다. 

결제시스템을 따로 구축해야 하는 비용을 고려하면, 개발사 입장에선 사실상 구글의 인앱결제를 활용하는 게 더 나았다. 결국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입점한 앱 서비스 관련 요금이 줄줄이 인상됐다.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있는 애플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사진=뉴시스]
인앱결제를 강제하고 있는 애플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사진=뉴시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 교수는 “구글의 사례에서 보듯, 미리 정책 변경을 공지했다가 비판 여론이 확산하면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규제 대응 차원에서 조용한 정책 변경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플랫폼을 기반에 둔 빅테크들은 수익성을 위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은밀한 요금 인상을 계속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규제당국도, 소비자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일은 또 어떤 플랫폼이 요금을 슬쩍 올릴까. 빅테크의 소리 없는 배신은 이미 시작됐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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