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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자금의 부메랑
규제 완화 후 가계대출 증가
대만, 연착륙-거품 혼동한 결과
장기간 버블 방치로 시장 왜곡
국내 부동산 연착륙 중일까

정부가 부동산 가격 반등으로 가계대출 증가세가 멈추지 않자 시행한 지 13개월 된 50년 만기 주담대, 시행한 지 8개월 된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상품을 사실상 퇴출했다. 부동산 연착륙은 추가 가격상승이 아니라 가격하락폭의 조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연착륙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최근 아파트 가격이 반등하면서 가계대출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들. [사진=뉴시스]
최근 아파트 가격이 반등하면서 가계대출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들. [사진=뉴시스]

■ 연착륙 유도 or 부양 조치=정부는 지난해 8월 한국주택금융공사를 통해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을 출시했다. 올해 1월에는 강남3구와 용산을 제외한 전 지역의 부동산 규제를 모두 풀었다.

이와 함께 주택금융공사를 통해서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원 이하 주택을 담보로 5억원까지 대출해주는 상품이었다. 명분은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 유도였다. 

시장은 이런 일련의 조치를 연착륙 유도가 아닌 부양 조치로 받아들였다. 집값의 하락폭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강하게 반등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1일 통계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의 매매가와 전세가는 14개월 만에 동반 상승했다. [※ 참고: 다만, 가격상승을 주도한 서울 아파트의 거래량은 9개월 만에 감소하며 전형적인 가격 하락기의 징후를 보였다.]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과 상관없이 가계대출의 증가세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가계대출은 올해 4월부터 5개월 연속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대출은 4월 2조3000억원, 5월 4조2000억원, 6월 5조8000억원, 7월 5조9000억원, 8월 6조9000억원 불어났다. 

결국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14일 ‘가계부채 현황 점검 회의’를 열더니 50년 만기 주담대를 없애고,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상품을 26일까지만 판매한다고 밝혔다. 50년 만기 주담대는 1년 1개월 만에, 특례보금자리론 일반형 상품은 불과 8개월 만에 사실상 퇴출당했다. ‘거품이 급속하게 꺼지지 않는 선에서 가격이 서서히 떨어져야 연착륙이다’는 공식을 재확인한 셈이다. 

■ 연착륙의 정의=우리가 흔히 수식어처럼 사용하는 ‘연착륙’은 원래 중앙은행의 정책 성공을 칭송하는 말이다. 명확한 정의가 없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언어를 여러 부문에 차용해서 사용했다. 

연착륙이란 용어는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이던 시절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진=뉴시스]
연착륙이란 용어는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이던 시절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진=뉴시스]

앨런 그린스펀이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을 지내던 1994년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8%, 연방 기준금리는 연 3%, 실업률은 6.6%였다. 그린스펀은 호황 3년차인 이때 물가가 상승할 것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렸다.

기준금리는 1년 동안 일곱차례나 올라 6%가 됐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한풀 꺾이게 마련이지만, 이땐 그렇지 않았다. 물가상승률을 2%대에 잡아놨지만, 경기는 침체하지 않았다. 실업률은 1994년 말 5.1%로 오히려 내려앉았다. 

1994년 6월부터 1996년 1월까지 연준 부의장을 지낸 알란 블라인더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앨런 그린스펀을 중앙은행의 레전드로 만들어 준 완벽한 연착륙이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연착륙을 규정한 공식적인 정의는 없지만, 많은 경제학자는 연착륙을 실업률이 조금 상승하는 수준의 가벼운 경기침체로 간주한다”고 설명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한때 연착륙을 “부드러운(softish) 착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부동산의 연착륙=후쿠오카대 경제학과 준민 완 교수는 2018년 ‘거품의 예방과 착륙(Prevention and landing of bubble)’이라는 논문에서 “미국과 그리스, 일본은 과거 부동산 거품이 경착륙한 바 있지만, 대만은 1980년대에 부동산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연착륙’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에서 알 수 있듯, 일반적으로 자산시장의 거품이 물가를 자극하면,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서 금리를 높이고, 경기침체가 일어나야 비로소 거품이 꺼진다. 최악의 경우 일본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일본은 버블 붕괴로 오랜 기간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장기간 유지하고, 임금 인상률을 유지하는 정책을 쓰면서 최근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일본경제학회 부회장인 찰스 유지 호리오카 고베대 교수는 “일본 경제가 거품경제로 호황을 누렸지만, 주택 시장이 붕괴하면서 잃어버린 10년으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당시 일본 주택 시장의 거품은 정부가 실수요자 원칙을 포기해 투기적 거래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완 교수는 투기 거래를 자산 재판매로 차익을 기대하는 거래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정부가 실수요자와 투기자를 구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완 교수는 양도소득세를 강화해 이를 구분해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부동산의 연착륙 정책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자산 가치의 거품을 방지하는 것이다.” 

대만은 1980년대 부동산 연착륙에 성공했지만, 주택 시장 버블로 고통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만은 1980년대 부동산 연착륙에 성공했지만, 주택 시장 버블로 고통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만의 1980년대 부동산 연착륙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부동산 가격은 방어했지만, 결과적으로 경제가 좋아졌다고 보기 힘들어서다. 대만은 1980년대 일본과 동일하게 거품경제가 붕괴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대만은 당시 전자산업이 성장하면서 부동산 거품을 수용할 만큼의 자본이 투입되면서 이른바 부동산 연착륙이 가능했다(대만 월간지 타이완 파노라마 1999년 2월호). 대만은 1990년대 말부터 건설사들의 주택 초과 공급으로 다시 한번 위기에 놓였지만, 정부가 저금리 정책 주담대를 공급하고, 주택 보유세를 낮춰 또 한번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 그 결과는 주택 가격의 고공행진이었다. 대만 매체 뉴스렌즈는 지난 3월 22일 ‘대만의 주택 위기’라는 기사에서 “대만의 주택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임금 수준은 낮다”며 “대만의 높은 주택 가격은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대만 타이베이 기준 평균 생활비의 64.9%가 주담대 상환금이다. 

대만의 주택보급률은 1990년대에 이미 80%를 넘겼다. 정부는 주택 시장의 연착륙에 집착해 공공주택 보급을 포기하고, 저소득층의 임대 수요를 시장에서 소화하도록 방치했다. 이를 위해서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해도 부동산 관련 세금이 부담되지 않도록 하향 조정했다. 대만의 사례는 부동산 시장에서 연착륙과 버블을 혼돈하면 벌어지는 일들을 잘 보여준다. 

■ 경착륙은 정책 실패=완 교수의 논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과 관련해서 경착륙, 연착륙과 함께 중착륙(medium land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부분이다. 

논문은 정부가 부동산 거래세, 양도소득세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터지지 않는 한도에서 상향 조정한다면 부동산의 본질적 가치에 도달할 수 있고, 이것이 중착륙이라고 주장한다. 또 세금 외에 재정과 같은 추가 금융 정책을 시행하면 거품이 꺼진 후의 부동산 가격이 본질적인 가치보다 낮아지는데 이를 경착륙이라고 규정한다. 완 교수는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은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주장했다. 

[자료 | 대만 매체 뉴스렌즈, 넘비오닷컴, 참고 |  평방피트=0.09㎡]
[자료 | 대만 매체 뉴스렌즈, 넘비오닷컴, 참고 | 평방피트=0.09㎡]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최근 한국 부동산 시장을 뒤흔든 것은 정부의 정책금융 문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지난 8월 24일 회의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이 “현재 가계대출 증가에 정책금융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특례보금자리론 한도 잔액과 신청분 중 미실행액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수개월 동안 정책금융이 가계대출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동력이 역사적으로 재판매를 통한 차익에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완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는 ‘투기 수요’다. 최근 흔히 쓰이는 ‘지금 아파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가장 싸다’는 말은 추가 가격상승을 통한 차익확보가 부동산 매매의 동력이라는 점을 확실히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는 아파트의 경우 본질적인 가치를 이미 뛰어넘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한국은행도 인용하는 물가비교사이트 넘비오(NUMBEO)에 따르면, 한국의 도심 지역 아파트 가격은 제곱피트(0.09㎡)당 43만6945대만달러로 홍콩·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한 103개 나라 중에 1위였다.

대만은 이 순위에서 5위를 차지했다. 대만 뉴스렌즈 보도에 따르면 비도심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가격 비교에서도 한국은 스위스에 이어서 세계 2위였다. 추가 가격상승을 기대하기에는 높은 가격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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