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14년 만에 부활한 보증금 제도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할 환경부
제도 시행 유예 · 축소하더니…
전국 시행 의무화 포기 전망까지
시계 거꾸로 돌리는 환경 정책
그러면서 SNS 챌린지에 열심
그린워싱 비판 나오는 까닭

# 지난해 6월 전국에서 시행할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그런데 환경부가 이 제도의 시행을 12월로 돌연 연기하더니, 12월엔 다시 제주도·세종시에 한해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 그후 10개월여가 흐른 지금 환경부는 이 제도를 각 지자체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정책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환경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건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내용의 SNS 챌린지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이란 비판이 나온다.

환경부가 진행 중인 ‘일회용품 제로 챌린지’를 두고 쇼잉 논란이 일고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환경부가 진행 중인 ‘일회용품 제로 챌린지’를 두고 쇼잉 논란이 일고 있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 ‘일회용품 제로 챌린지(일회용품 없애기 도전)’가 확산하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손으로 숫자 1을, 한손으로 숫자 0을 만든다→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린다→다음 주자를 지목한다’. 롯데쇼핑·LG유플러스·CJ푸드빌· SK매직·한화자산운용·잡코리아 등 업종을 불문하고 기업 대표들이 이 챌린지에 참여했다. 대학 총장부터 공공기관장도 대열에 올라탔다. 

각계각층 인사가 참여한 이 챌린지는 환경부가 지난 2월 시작한 릴레이성 행사다. 취지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품 사용을 늘리겠다’는 실천약속을 널리 알리겠다는 거다. 첫 주자로 나선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선 일상생활에서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한편에선 “일회용품 제로 챌린지와 같은 보여주기식 행사로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없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이 챌린지가 환경 인식을 제고하는 데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일회용품 사용을 실제로 줄이기 위해선 좀 더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런 비판이 나오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정작 정부의 환경 정책은 뒷걸음질치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게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다. 

지난 9월 환경부는 2025년까지 전국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추진 방향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지자체 자율에 맡기겠다는 게 골자였는데, 이 때문에 환경부가 사실상 제도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대체 뭐기에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걸까.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지자체에 손에 맡겨도 괜찮은 걸까. 한가지씩 살펴보자. 

■ 의문➊ 제도 뭐기에 =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숱한 곡절을 겪어왔다. 정부가 2002년 처음 시행했지만 안착하지 못한 채 200 8년 폐지됐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법적 근거 없는 업체 간 자율협약에 불과하다 보니 참여율이 저조한 탓이었다. 보조금 관리에 허점을 드러난 것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플라스틱 폐기물이 급증하면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필요성이 다시 떠올랐다. 
환경부는 2020년 자원재활용법(자원의절약과재활용촉진에관한법률)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보증금을 관리할 비영리기관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COSMO)’를 설립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소비자가 일회용컵에 음료를 구입할 때 자원순환보증금 300원을 지불하고, 일회용컵을 반납할 때 돌려받는다.” 제도 대상은 점포 100개 이상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음료·제과제빵·패스트푸드 브랜드로 규정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매장은 전국 3만8000여곳에 달했다. 

환경부는 2022년 6월부터 전국에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전면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취임 당시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을 꼽았던 만큼 14년 만에 부활할 이 제도에 관심이 쏠렸다. 

■의문➋ 의미 없는 표류 = 그런데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환경부는 이 제도의 전국 시행시점을 지난해 6월에서 12월로 돌연 연기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점주들을 위한 결정”이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회용컵 수거 시스템 등 준비가 미비한 탓에 점주들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6개월간 준비기간을 갖겠다는 취지였는데, 약속한 12월이 돌아오자 환경부는 다시 말을 바꿨다. 이번엔 전국이 아닌 제주도와 세종시에서 시범시행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환경부는 “시범시행 결과를 반영해 2025년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은 내놓지 않았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환경부를 향해 감사원이 철퇴를 내렸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시민단체 녹색연합으로부터 청구를 받아 ‘환경부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시행 유예’ 관련 공익감사를 실시했다. 

1년여 만인 지난 8월 발표된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환경부가 제도 시행에 필요한 대상 사업자, 보증금, 처리지원금 등 하위법령과 고시를 제때 마련하지 않아 대상 사업자가 시행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다. 환경부는 자원재활용법 취지에 맞게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환경부는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나온 지 한달여 만인 지난 9월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의 실시 여부를 지자체의 결정에 맡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환경부의 정책이 거꾸로 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의문➌ 지자체는 과연 = 문제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각 지자체에 맡겨도 괜찮으냐는 점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지자체에 맡기는 순간 제도가 유야무야될 거란 전망에서다.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지자체의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지자체의 자율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무엇보다 지자체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하면 ‘형평성 논란’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시범시행 중인 이 제도는 ‘특정 프랜차이즈 브랜드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미 형평성 논란을 겪고 있다.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개인 커피전문점이나 편의점 등은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시범시행 중인 제주도·세종시에 있는 커피전문점 중 이 제도의 대상 업체는 10.8%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 시행 여부를 지자체의 선택에 맡겨두면 더 큰 형평성 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오정훈 제주프랜차이즈점주협의회 회장은 “환경부가 제도를 시행할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전국 모든 매장이 참여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10일 발표한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운영실태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제도 대상 매장을 확대하고 매장 간 교차반납을 허용해 일회용컵 회수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인프라로 꼽히는 일회용컵 수거 시스템을 지자체가 구축할 수 있느냐도 짚어볼 문제다. 지자체보다 여력이 많은 환경부가 주도하는 제주도와 세종시에서조차 수거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필수 인프라로 꼽히는 ‘일회용컵 무인 수거기’는 제주도와 세종시에 각각 1대밖에 없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는 연말까지 무인수거기를 15대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이 역시 제주도와 세종시의 면적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이렇게 꼬집었다. “지자체의 손에 맡겨두면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또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기조가 달라질 수 있어 제도 안착이 어렵다. 결국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선 환경부가 강력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제도를 이끌어가야 한다.” 환경운동가들이 환경부의 SNS 챌린지에 비판적인 시선을 쏟아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백나윤 활동가는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시행할 예정이던 ‘일회용품 사용규제’ 제도를 1년 유예한 데 이어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마저 사실상 포기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보여주기식 챌린지 캠페인은 ‘그린워싱(Greenwashing·위장환경주의)’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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