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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스타트업 열전 3편
이정헌 뉴클레오엑스 대표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출발
생물 유래 친환경 난연제 개발
난연제의 ‘독성 딜레마’ 해결
첫 걸음 뗀 스타트업의 큰 포부
친환경 소재계 ‘3M’ 꿈꾸다

# ‘플래시 오버(Flash Over)’. 실내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가연성 가스가 일시에 폭발해 공간 전체가 불이 붙는 현상을 일컫는다. 재난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다. 건축 내장재에 우레탄폼·스티로폼 등 가연성 소재를 많이 사용하는 만큼 누구나 플래시 오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 이 때문인지 화재의 확산을 막아주거나 늦춰주는 ‘난연難燃 소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성균관대 바이오·나노 소재 연구실에서 출발한 ‘뉴클레오엑스(NucleoEX)’는 생물 유래 친환경 난연 소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뉴클레오엑스의 난연 소재는 기존의 것들과 무엇이 다를까. 이정헌(46) 대표를 만나 알아봤다. 

이정헌 대표가 이끄는 뉴클레오엑스는 생물 유래 친환경 난연제를 개발하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이정헌 대표가 이끄는 뉴클레오엑스는 생물 유래 친환경 난연제를 개발하고 있다.[사진=천막사진관]

✚ 난연 소재, 일반인들에겐 ‘익숙한 듯 낯선’ 단어인데요. 
“난연 소재를 사용한 제품은 우리 생활 곳곳에 있습니다. 건축 마감재부터 차량용품, 전자기기에도 난연 소재를 사용하고 있죠. 불에 타기 쉬운 플라스틱 등을 가공할 때 ‘난연제’를 첨가·도포하는 방식으로 만들다 보니 눈에 잘 보이지는 않죠(웃음).” 

✚ 그렇다면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난연제도 많을 텐데요. 
“맞아요. 시중에 많은 난연제가 있지만 한계도 적지 않았어요. 기존 난연제는 대부분 ‘할로겐계’ 난연제입니다. 할로겐계 난연제는 비용이 저렴하고, 플라스틱에 첨가했을 때 사출 성형이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브롬(Br) 등 유독성 물질을 사용한다는 점이죠. 이 때문에 사용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환경 호르몬이 발생하고, 소각할 때 다이옥신과 같은 독성 가스가 나오죠.” 

✚ 부작용이 많은데도 할로겐계 난연제를 계속 사용해온 이유는 뭔가요. 
“마땅한 대체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로겐계 난연제 외에 인(P) 화합물을 사용한 ‘인계’ 난연제도 있기는 합니다. 다만, 인계 난연제는 할로겐계 난연제에 비해 독성이 적지만 난연 효율은 좋지 않죠. 이 때문에 여전히 할로겐계 난연제가 전체 시장점유율의 30%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그럼 뉴클레오엑스가 개발한 난연제의 차별점은 뭔가요. 
“무엇보다 생물 유래 물질인 ‘ATP(adeno sine triphosphate·아데노신 3인산)’를 사용해 친환경적이죠.”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우리가 주목한 ‘ATP’는 모든 생물의 에너지 대사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에요. ATP의 분자 구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난연제로 개발하기에 적합한 구조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실제로 ATP의 난연성도 확인했죠. 이후 ATP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분말 형태의 난연제를 만들었습니다.” 

이정헌 대표가 ATP의 난연성에 주목한 건 2018년 무렵부터다. 이 대표가 이끌고 있는 성균관대 바이오·나노 소재 연구실(2012년 설립)에서 ATP의 난연성을 확인해 세계 최초로 학술 논문에 게재했다. 이를 토대로 ATP 난연제의 제품화를 위해 2022년 뉴클레오엑스를 창업했다. 뉴클레오엑스는 2020년 생체 유래 난연제 원천기술과 관련해 국내외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뉴클레오엑스의 친환경 난연제 적용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사진=뉴클레오엑스 제공]
뉴클레오엑스의 친환경 난연제 적용 전(왼쪽)과 후(오른쪽)의 모습.[사진=뉴클레오엑스 제공]

✚ 평생 연구자로 살아오셨습니다. 직접 기업을 설립하고 제품 개발에 뛰어든 이유가 뭔가요. 
“연구자로서 기술을 개발해 몇차례 기업에 기술을 이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무리 좋은 기술이더라도 기업의 니즈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실제 제품화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죠. 학교에서 하는 연구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 머물 수밖에 없고, 사업화를 위해선 또 다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추가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원하는 제품을 만들려면 ‘창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왜 지금이었나요?
“사실 난연제에 포함된 독성물질을 규제하는 세계 각국의 정책적 노력은 계속되고 있어요. 잔류성 유기 오염 물질의 제조·사용을 제한하는 국제협약 ‘스톡홀름 협약(2004년 발효)’이 대표적이죠. 그럼에도 난연제는 마땅한 대체재가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ESG경영이 대두되고 환경을 고려한 지속가능성이 중요시되는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난연제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 친환경 난연제가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봐요(웃음). 생물 유래 물질을 사용하는 만큼 무독성·친환경·친생태계적입니다. 또 적은 양으로도 뛰어난 난연성을 자랑하죠.” 

✚ 할로겐계 난연제와 인계 난연제의 단점을 극복한 셈이네요. 실제 개발한 제품을 소개해주세요.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제품은 ‘난연 스프레이’입니다. 화기 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을 위한 제품이에요. 작업복에 난연 스프레이를 뿌려 사용하는 방식이죠.”

✚ 기존 난연복을 대체할 수 있나요? 
“맞아요. 두껍고 무거운 난연복을 입어야 했던 작업자들이 좀 더 편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첫 시제품을 만들어, 올해 하반기 본격적인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난연 스프레이가 어떤 원리로 화재로부터 보호해주는지 궁금해요. 
“난연제를 작업복에 도포하는 방식이죠. 만약 이 작업복에 불을 붙이면 표면에 팽창성 차르(char)가 형성됩니다. 차르가 일종의 방화벽 역할을 해 내부로 열이 전달되는 걸 지연시켜주죠.”

✚ 시장의 반응은 어떤가요. 
“이제 막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제품을 고도화해갈 계획입니다.” 

✚ 향후 어떤 제품들이 추가될까요. 
“난연 시트, 섬유 소재, 플라스틱 소재, 건축용 소재부터 배터리 화재를 막는 패키징 소재까지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난연제를 사용하는 여러 분야의 기업들과 협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결국 어떤 난연제를 택하느냐는 기업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기업은 비용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나요. 
“현재로선 기존 난연제 대비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해결 방법은 있습니다. ATP 외에 친환경 난연 물질을 함께 조합하면 난연 효율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할 수 있죠. 이뿐만이 아니라 기업들의 의식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치명적인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 일반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만들 계획도 갖고 계시나요? 
“언젠가 B2C 제품도 개발하고 싶습니다. 화재 위험이 큰 주방 가스레인지 주변 등에 붙일 수 있는 스티커 타입의 난연 제품도 만들 수 있겠죠(웃음).” 

✚ 실제로 화재의 안전지대는 없다고들 합니다. 난연 제품의 수요는 더 늘어날 듯한데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전세계에서 화재가 빈번해지고 있죠. 2019~2020년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6개월간 이어졌을 정도입니다. 동식물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요.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우리가 개발한 친환경 난연제로 언젠가 산불 확산을 막는 제품도 개발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뉴클레오엑스는 기존의 난연제 시장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사명에도 ‘핵산(nucleic acid) 등 생물 유래 물질을 신개념 소재로 확장(extend)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 뉴클레오엑스의 단기적·장기적 목표는 무엇인가요. 
“단기적으로는 난연 스프레이가 시장에 안착해 첫걸음을 잘 떼는 것이겠죠. 그렇게 한걸음씩 내디뎌 언젠가 ‘3M’ 같은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 3M은 ‘포스트잇’으로 널리 알려진 회사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데 사실 3M은 소재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독보적인 기업입니다. 뉴클레오엑스도 생물 유래 친환경 소재 분야의 독보적인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연구실에서 시작해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뉴클레오엑스. 이들의 앞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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