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진의 내 아이 상담법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
몇몇 수험생 우울감 느끼기도
문제는 부모의 너무 높은 기대
자녀 마음의 병 들게 할 수 있어
자립심 키우기도 어려워져…
수능 앞둔 자녀 위한 부모 역할
있는 그대로 자녀 응원해줘야

올해 수능일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도, 이들을 뒷바라지해온 학부모도 긴장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다. 긴장감을 넘어선 우울감에 시달리는 학생들도 수없이 많을 게 분명하다. 이럴 때 부모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수능에서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을 낼까 봐 걱정하는 수험생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능에서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장을 낼까 봐 걱정하는 수험생이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늘한 바람이 불면 어느덧 수능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일(11월 16일)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청소년 인구가 줄면서 수능 응시생 수가 매년 감소하고, 진로 선택의 폭도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대학 진학은 어려운 과업이다. 

지금도 50만4588명의 수능 응시생들이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9월 대학 수시 일정을 시작으로 추가합격자가 발표되는 내년 2월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할 아이들…. 모두가 자신이 쌓아온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따뜻한 운도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청소년 상담을 하는 필자의 마음도 이런데, 수험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 행여 자녀가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해 좌절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할 것이다. 그만큼 수능은 수험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다.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경쟁교육 고통 지표’ 설문조사 결과(2022년)를 보자. “경쟁교육·대학입시 때문에 고통받는다”고 답한 학생은 51.4%, 학부모는 64.8%로 나타났다. 수험생 뒷바라지를 하는 학부모들의 마음고생도 심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자녀와 함께 수능이란 ‘산’을 지혜롭게 넘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상담할 때 만난 고3 학생 A의 사례를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올해 수능을 치르는 A학생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3년 내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유치원 다닐 때부터 부모님에게 ‘공부를 잘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을 들어왔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엔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잘살 수 있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죠. 그러다 보니 대학 말고 다른 길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에 가는 거구나 생각했죠. 부모님이 소위 상위권 대학을 나오셨다 보니 저도 막연하게 부모님 뒤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막상 고등학교에 입학해 수능 모의고사를 치러보니 수도권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겠더라고요. 고등학교 3년 내내 너무 힘들었어요. 성적은 오르지 않는데 한편으론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품었죠. 그러다가도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제 자신을 탓하게 됐죠.”

A학생은 매일 아침 일어나기가 두려울 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러운 데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실망감이 꼬리를 물면서 공부에 집중하는 게 어려웠다. 

이처럼 자녀의 현실보다 높은 부모의 기대는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 스스로를 폄훼해 우울감에 빠지기도 쉽다. 실제로 A학생은 “공부하다가 힘들어 잠깐 졸았을 때 실망한 듯한 부모님의 눈빛을 봤다”면서 “마치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더 큰 문제는 A학생이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상위권 대학에 가고 싶을 뿐, 무엇을 전공해 어떤 미래를 살고 싶은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A학생처럼 이런 짐을 안은 채 수능을 치르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부모의 기대=자신의 미래’라고 여기는 아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이런 문제는 수능이라는 문턱을 넘는다고 해서 자연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미래를 분리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변의 기대에 휘둘리기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알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만약 수능을 앞둔 자녀가 우울해한다면 부모도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 자녀에게 기대를 강요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지금이라도 달라져야 한다. 행여 수능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이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자녀의 현실보다 높은 부모의 기대는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사진=뉴시스]
자녀의 현실보다 높은 부모의 기대는 아이들을 병들게 한다.[사진=뉴시스]

이런 감정에서 오랜 시간 벗어나지 못해 자존감이 낮아진 채 위축된 삶을 사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녀보다 삶의 경험이 많은 부모는 “노력한다고 해서 모든 게 이뤄지는 건 아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생각을 자녀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수능에서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해도 결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긴 시간 수험생 뒷바라지를 해온 부모로서도 자녀가 원하는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 모든 문제는 부모의 기대에서 시작한다. ‘자녀가 나를 실망시킨 게 아니라 내 기대가 나를 실망시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은 수험생도 부모도 기대를 내려놓고 서로를 들여다봐야 할 때다. 고3 아이들은 수능을 치르고 나면 곧 성인이 된다. 이들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은 “잘 컸다”일지 모른다. 이제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바라보자.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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