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맥주 가격 속 씁쓸한 경제학
오비맥주, 맥주 출고가 인상
식당서 한병값 7000원 전망
출고가 100원 오를 때…
식당에선 1000원씩 올라
자영업자 정말 폭리 취했을까

맥주 가격이 또다시 꿈틀대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맥주 업체들이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들고 있어서다. 맥주 시장점유율 1위 오비맥주가 최근 맥주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한 만큼 식당에서 판매하는 맥주 가격도 오를 전망이다. 한편에선 “출고가는 100원 오르는데 식당 판매 가격은 1000원씩 오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맥줏값이 오르는 게 결국 식당 사장들 때문이라는 거다. 정말 그럴까 오해일까. 

머지않아 식당 맥주 한병 가격이 7000원대에 육박할 전망이다.[사진=뉴시스]
머지않아 식당 맥주 한병 가격이 7000원대에 육박할 전망이다.[사진=뉴시스]

퇴근길 시원한 맥주 한잔도 호사가 됐다. 맥주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서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국내 맥주 한병(500mL) 가격은 평균 5000~6000원으로, 고급 음식점에선 1만원에 육박하는 값에 팔리고 있다. 직장인 박정훈(34)씨는 “둘이서 마른안주에 맥주 한두병씩만 마셔도 4만~5만원이 훌쩍 넘어간다”면서 “가격이 부담스럽다 보니 지인과 맥주 한잔 걸치는 것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문제는 연말을 앞두고 맥주 가격이 또다시 들썩이고 있다는 점이다. 포문을 열어젖힌 건 맥주 시장점유율 1위 업체 오비맥주다. 이 회사는 지난 11일부터 카스·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9% 올렸다. 오비맥주가 맥주 출고가를 끌어올린 건 지난해 3월 이후 1년 7개월여 만이다. 

경쟁사인 하이트진로 측은 “아직 맥주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가격 인상이 맥주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거란 전망이 많다. 1위 업체가 가격을 인상하면 시차를 두고 후발 업체가 가격을 끌어올려 왔기 때문이다.[※참고: 맥주 가격을 끌어올리지 않은 하이트진로는 11월 9일부터 소주 ‘참이슬’의 출고가를 6.95%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소주 가격 인상은 지난해 2월에 이어 1년 8개월여 만이다.] 

지난해 3월 오비맥주가 맥주 출고가를 평균 7.7% 인상했을 때에도 하이트진로는 곧이어 출고가를 7.7% 올렸다. 11월엔 롯데칠성음료가 맥주 출고가를 8.2% 인상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머지않아 맥주 한병 7000원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가뜩이나 치솟은 물가에 맥주 가격이 1년여 만에 또다시 오르자 소비자단체들은 주류 업체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오비맥주의 가격 인상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측은 “오비맥주의 매출 원가율은 2020년 40.1%, 2021년 42.2%, 2022년 41.0%로 큰 변동이 없었다”면서 “원가 부담으로 인한 가격 인상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반면 오비맥주 측은 “맥주의 주요 원료인 맥아의 9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국제 맥아 시세가 48%가량(2021년 대비 2022년) 올랐고, 유가·환율 상승 등의 변수도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주류 업체의 출고가 인상률 대비 식당 판매가 인상폭이 과도하게 높은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지난해 3월 하이트진로는 맥주 출고가를 500mL 한 병당 1146원에서 1260원으로 110원 인상했다. 그 무렵 식당에서 판매하는 맥주 가격은 1000원 안팎으로 올랐다.

상당수 소비자들이 “출고가가 100원 오르면 식당에선 1000원씩 오른다”는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출고가를 빈번하게 올리는 주류 업체도 문제지만, 과도하게 판매가를 끌어올리는 식당에도 책임이 있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식당 사장들은 정말 맥주 가격을 과하게 끌어올린 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맥주 유통과정을 보면 자영업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나씩 살펴보자. 

주류 업체가 원재료비·물류비 등 각종 제반 비용 증가를 이유로 출고가를 인상하면, 주류 도매업체는 보관비·물류비·인건비 등의 상승분을 반영해 납품 가격을 조정한다. 이렇게 형성된 납품 가격에 사장이 인건비·전기료 등 비용 증가분을 반영해 주류 판매 가격을 결정한다. 출고가 대비 식당 판매가격 인상폭이 큰 이유다. 따져볼 점은 맥주 가격을 마지막에 건드린 사장이 폭리를 취했느냐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족발가게를 운영하는 김상범(52)씨의 말을 들어보자. “식당의 경우 결국 주류에서 마진을 남길 수밖에 없다. 원재료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음식으로 수익을 남기는 게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음식 양이나 질을 떨어뜨릴 수는 없지 않나. 손님을 잡기 위해 서비스라도 제공하다 보면 원재료 가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결국 주류 출고가가 올랐을 때 판매 가격을 조금이라도 올려 받는 거다.” 김씨가 마냥 볼멘소리를 늘어놓은 건 아니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자영업자들의 원재료 가격 부담이 커질 대로 커진 건 사실이다. 지난 9월 기준 소비자물가지수(2020=100) 동향을 보자. 곡물가격(102.57)은 전년 동월 대비 9.2% 올랐다. 수산(108.60), 가공식품(117.85), 과실(146.51)도 같은 기간 각각 3.5%, 5.8% 24.0% 상승했다. 채소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5.7% 하락했지만 130.81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전기료, 가스비, 수도요금 등이 줄줄이 올랐다. 특히 정부는 전기료를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연속해서 인상했다. 이 기간 전기요금 인상률은 39.6%(1㎾h당 40.4원 인상)에 이른다. 여기에 3분기 동결했던 전기료를 또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매년 꾸준히 오르는 인건비도 자영업자들에겐 부담 요인이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996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96 20원)보다 2.5%(240원) 오를 예정이다. 

이렇게 ‘나갈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매출은 되레 줄고 있다. 부대찌개 전문점을 운영하는 박영선(56)씨는 “코로나19 때보다 손님이 20~30%는 줄어든 것 같다”면서 “점심이든 저녁이든 가리지 않고 장사가 되질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엔데믹으로 전환했지만 자영업 시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엔데믹으로 전환했지만 자영업 시장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실제로 소상공인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 발표한 ‘9월 소상공인시장 경기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식점업 소상공인들의 경기체감지수는 62.9로 전체 소상공인 평균(70.5)을 밑돌았다. 경기체감지수가 100 이상이면 경기 호전, 100 미만이면 경기 악화를 의미하는 만큼, 자영업자들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맥주 납품 가격이 올랐다고 또다시 가격에 손을 대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있던 손님마저 발길을 끊을까 봐 걱정스러워서다. 영등포구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노은정(48)씨는 “11월부터 맥주 납품 가격이 오른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말을 이었다. “가격을 그대로 두자니 남는 게 없고, 올리자니 손님 발길이 더 끊길까 걱정이다.” 

남는 게 없는 점주는 주류 가격이라도 끌어올려야 하고, 소비자는 나날이 오르는 술값에 ‘퇴근길 맥주 한잔’을 줄이고 있다. 맥주 한잔도 힘겨운 시절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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