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제조업 視리즈 7편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100년 넘는 日 제조업 현주소
도쿄 오타구의 제조업 부흥책
매출 늘리고 수주 기회 제공
기회 줄어든 문래동과 대조적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제조업의 쇠퇴를 절감하고 부흥책을 실시한 나라다. 그 핵심지역 중 한곳은 도쿄 오타구다. 한때 9000개를 넘나들던 마을공장(町工木場ㆍ마치코바)이 지금은 4000여개로 줄어들긴 했지만, 오타구는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 마을공장의 ‘매출처 발굴’ ‘기술 성장’을 지원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은 공장을 도심에서 밀어내기 바쁜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은 뭘까. 

일본 도쿄 오타구는 100여년간 일본 제조업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은 오타산업프라자.[사진=더스쿠프 포토]
일본 도쿄 오타구는 100여년간 일본 제조업의 중심에 있었다. 사진은 오타산업프라자.[사진=더스쿠프 포토]

2023년 말, ‘작은 공장’이 모여 있는 서울 문래동 기계금속집적지는 새로운 분기점을 만난다. ‘만약 이전한다면 그곳이 어디인지’후보지의 윤곽이 그때쯤 나와서다. 물론 작은 공장이 실제로 이전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있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작은 공장을 내보내고 싶어 한다는 거다.

이런 일이 문래동,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건 아니다. 일본 도쿄의 ‘오타구’도 문래동과 같은 일을 겪었다. 1980년대 마을공장(町工木場ㆍ마치코바)을 해안지역으로 내보내 ‘집적지’를 만들려던 오타구의 시도는 실패했다. 공장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오타구는 ‘도심 속 마을공장’을 유지하는 쪽으로 목표를 바꿨다. 그렇다면 지금 오타구의 마을공장은 어떤 모습일까.

오타구 도심은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10분 거리(게이큐본선 이용시)에 있다. 규모는 도쿄시 특별자치구 중 가장 크다. 오타구의 면적은 59.46㎢(약 1798만6650평). 문래동이 있는 영등포구(24.56㎢ㆍ약 742만9400평)의 2배 이상이다.

현재 오타구에 있는 마을공장은 4200여개로 1㎢당 약 70개의 공장이 둥지를 틀고 있다. 문래동 작은 공장은 1270여개로 영등포구 전체를 기준으로 했을 때 1㎢당 50여개의 공장이 있다.[※참고: 문래동으로 한정하면 밀집도는 1㎢당 858개로 늘어난다.] 

오타구 마을공장은 문래동 작은 공장과 마찬가지로 부품 등을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조로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 1990년대엔 대기업이 부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해외공장을 찾고, 설상가상으로 마을공장에 새 인력이 유입되지 않으면서 위기에 처했다.

그때부터 오타구는 마을공장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0월 16일 오전 11시. 여기는 오타구에 있는 게이큐선 가마타역. 오타구가 제조업에 쏟고 있는 관심은 이 역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역내엔 관광객을 위한 오타구관광정보안내소가 있는데, 여기에선 오타구 마을공장과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오타구청이 지정한 ‘오타구관광상품 100선選’ 중 마을공장이 만든 상품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의 눈에 띈 건 알루미늄을 통으로 가공해 만든 저금통. 이를 위아래를 뒤집으면 작은 구슬이 매끄럽게 가공된 알루미늄 ‘서킷’을 따라 내려온다. 장난감처럼 생겨서인지 제조업에 별 관심이 없는 관광객도 호기심을 가질 만하다. 흥미롭게도 이 저금통을 만든 마을공장은 로켓부품을 제작한다. B2B기업이지만, 관광객에게 마을공장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듯 ‘저금통’을 일부러 만든 셈이다. 

오타구에 마을공장이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가마타역 바로 앞에는 오타산업프라자(Ota City In dustrial PlazaㆍPiO)가 있다. 1996년 만들어진 이 6층 건물에는 오타구 제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오타구산업진흥협회가 있다. 이 협회가 오타구 마을공장을 위해 추진 중인 첫번째 핵심사업은 ‘기술성장’이다. 

야마다 다쓰야 오타구산업진흥협회 프로모션 섹션 리더는 “최근 마을공장에서 3D 프린터 도입을 위한 세미나를 진행했다”면서 말을 이었다. “3D 프린터는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많이 가공하는 오타구 마을공장에서 계속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무조건 도입하라고 할 순 없다. 마을공장에도 나름의 원칙과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종 세미나 등을 통해 3D 풍토를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오타구산업진흥협회가 추진하는 핵심사업은 또 있다. 다름 아닌 ‘매출처 연결’이다. 야마다 리더는 “기업ㆍ연구기관ㆍ대학에서 제조를 원하는 수요자가 있다면 오타구 마을공장과 연계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건수는 놀랍다. 연 1000건 이상이다. 오타구 마을공장이 4200여개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단순계산했을 때 4곳 중 1곳(23.8%)이 수주 기회를 얻고 있는 셈이다.

이는 문래동 작은 공장의 환경과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에도 작은 공장이 수주할 수 있는 연구ㆍ개발(R&D) 지원사업이 있긴 하지만, 1년에 10건 정도(서울경제진흥원 기준)다. 문래동 작은 공장의 수와 대비하면 0.7%의 공장만 받을 수 있는 지원인 셈이다.

오타구산업진흥협회가 단순하게 ‘매출처’만 연결해주는 건 아니다. 10인 이하 마을공장을 알리는 역할도 마다치 않는다. 야마다 리더의 말을 들어보자. “마을공장 대부분은 영업부를 별도로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오타구산업진흥협회에선 PiO프런트를 운영해서 영업부가 없는 마을공장의 수주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원청기업과의 접촉을 늘려주고 있다는 건데, 대표적인 방식은 ‘전시회’다. 전시회 참석 자격은 ‘10인 이하의 중소기업’이다. 가장 작은 기업부터 챙기겠다는 의도다. “경리직원을 고용할 여유조차 없지만 새로운 매출처를 찾으면 공장은 계속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던 문래동 작은 공장 사람들의 하염없는 바람이 오버랩됐다. 

오타구산업프라자에서 나와 동쪽으로 이동했다. 문래동처럼 촘촘한 건 아니지만 골목 곳곳에서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골목 안쪽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마을공장이 보였다. 오타구의 마을공장은 문래동과 달랐다. 좁은 직사각형처럼 생긴 마을공장은 골목 곳곳에 듬성듬성 숨어 있는 모양새였다. 깊숙한 곳에서 기계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인지 소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기계금속단지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부품 냄새도 느낄 수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 오타구 역시 1990년대 마을공장을 ‘해안가’로 옮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훌쩍 흐른 지금, 이 마을공장들은 어떻게 도심에 남아서 숨쉬고 있는 걸까. 이 의문은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여덟번째 편에서 풀어볼 예정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