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제조업 視리즈 6편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이전 가능성 여전히 높지만
그럼에도 문래동 온 사람들
사라지지 않을 제조업
그 틈 사이 핀 희망의 꽃

오랫동안 작은 공장의 보금자리였던 문래동은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그 역할을 상징하는 건 도림로 골목길에 있는 커다란 망치였다. 하지만 조형물 앞에 있던 공장마저 이젠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문래동의 정체성이 ‘만드는 곳’에서 ‘보는 곳’으로 문래동이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개발 바람까지 더해졌다. 문래동 작은 공장은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고 있다. 

문래동 작은 공장의 미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원책은 아직 부족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래동 작은 공장의 미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원책은 아직 부족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279개의 작은 공장이 모여 있는 영등포구 문래동. 이곳의 분위기는 최근 냉랭하다. 영등포구가 이곳에 기계금속을 만드는 작은 공장 대신 4차 산업혁명의 거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수립하면서 작은 공장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어서다. 준공업지역의 고밀도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결정도 한몫했다.

우리는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공장 5편에서 1~2년 전부터 몰아친 ‘개발 바람’에 미래를 걱정하는 작은 공장 사람들의 회한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벼랑 끝에 절망만 내걸린 건 아니다. ‘개발 바람’에 등이 떠밀리는 상황에서 미래를 새롭게 그리려는 사람들도 있다.

문래동4가와 2가가 맞닿아 있는 경인로77길은 문래동의 끝이자 작은 공장 밀집 지역의 경계선이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붉은색 벽돌로 만든 높은 건물이 눈에 띈다. ‘작은 공장’의 기술과 ‘문래동 창작촌’의 예술을 접합하는 ‘술술센터’다.

이를테면, 작은 공장의 금속가공 기술로 만들어진 영등포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으로, 영등포문화재단이 관리하고 있다. 문래동의 터줏대감 격인 작은 공장과 2010년 이후 새롭게 이곳에 뿌리를 내린 예술가들이 노력해 만든 ‘공생의 결과물’로 보인다. 

더 구체적인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술술센터에서 90도로 돌아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2층 건물이 보인다. 영등포구에서 만든 영등포 도시재생센터다. 이곳에는 서울소공인사회적협동조합이 함께 있다. 지난 9월 이곳에서는 1279개의 문래동 작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 30여명이 모였다. 소공인사회적협동조합의 청년분과 모임이 처음으로 열렸던 날이기 때문이다.

산업용 기계를 제조하는 태유정공의 김태준 과장은 새로 발족한 청년분과에서 총무를 맡았다. 그는 “이곳에서 많은 청년이 일하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면서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함께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청년 30여명의 만남이 의미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떠나야 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어서다. 영등포구와 문래동 소상공인협회가 발주한 ‘이전 후보지 연구 용역’의 결과는 연말이면 나온다. 그때쯤이면 문래동을 떠나야 하는 작은 공장의 새 둥지가 윤곽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런데도 30여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문래동 작은 공장의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모인 걸까. 김 과장은 “작은 공장의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없어질 수는 없는 시장”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누군가는 계속 제품을 생산하고 공장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제조업이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이번에 이전하면 공장 문을 닫겠다는 사장님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엔 가업을 이은 젊은 사람들도 많고, 은퇴하신 분들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이도 있습니다. 작은 공장이 문래동을 떠나든 말든 우리는 미래를 그려야 합니다.” 

김 과장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수많은 작은 공장이 문을 닫았지만, 고정적인 매출처가 있는 태유정공은 혹한의 시기를 버텨냈다. 김 과장은 “작은 공장을 더 성장시킬 방법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문래동에서 네번째 해를 보내고 있는 특수기어 제조업체 부강의 최선우 대표도 문래동 작은 공장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최 대표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하시던 일을 보고 문래동의 미래를 믿고온 젊은 사장 중 한명이다. 가업을 잇고 있는 그는 문래동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여러 공장이 모여 있다는 게 가장 컸죠. 문래동 한 지역에 공장이 다 있다 보니 레이저, 절곡, 열처리 같은 작업을 가까이서 할 수 있으니까요.” 

이들뿐만이 아니다. 문래동 작은 공장 속 젊은 제조업자들은 새로운 매출처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9월 소공인사회적협동조합의 청년분과 모임에 참석한 30여명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여기엔 새 매출처를 만들기 위해 블로그ㆍSNS 등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다. 새롭게 만든 부품과 기술을 블로그에 아카이빙하는 식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젊은 작은 공장 사람들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정책적 기반은 없느냐다. 

만약 제조업의 실핏줄을 살리려는 노력을 작은 공장 사람들만 하고 있다면 그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실핏줄이 터지면 제조업 전체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취재 결과, 정책적 지원이 있긴 하다. 서울시가 서울 내 산업을 키우기 위해 만든 서울경제진흥원은 마곡ㆍ상암DMCㆍG밸리ㆍ홍릉ㆍ여의도ㆍ양재에 산업 거점을 만들고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지원 규모가 작다는 점이다. 서울경제진흥원 측은 “연구ㆍ개발(R&D)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일정한 절차를 통과하면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다”면서 “문래동 작은 공장 중에는 10곳가량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래동에 1279개의 작은 공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과 0.1%만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지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작은 공장이 숱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좀 더 효율적인 지원 정책은 없을까. 우리는 작은 공장을 좀 더 꼼꼼하게 육성하는 ‘산업 지원 정책’을 찾기 위해 비슷한 흐름을 겪은 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일본 도쿄의 오타구다. 우리보다 먼저 제조업의 위기를 겪었던 지역은 어떻게 작은 공장의 미래를 만들었을까. 이 이야기는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일곱번째 편에서 이어가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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