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LH 또 전관예우 근절 선언
입찰제한까지 도입했지만
실제 적용하기는 불가능해
반복과 비효율의 쳇바퀴

지난 9월 한국토지주택공사는 4월 무너진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대응으로 ‘전관예우’를 뿌리뽑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LH는 2021년에도 전관예우를 없애겠다는 혁신안을 내놨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LH의 고질병을 없앨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LH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놓은 혁신안은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사진=뉴시스]
LH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놓은 혁신안은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사진=뉴시스]

지난 4월 인천 검단신도시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무너져 내렸다. 1개월 조사 끝에 나온 사고 원인은 “설계ㆍ시공ㆍ감리 등 모든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거였다. 이 아파트 사업을 끌고 왔던 건 한국토지주택공사(LH)였고, LH 현장에 관여한 건설관리감독 용역업체ㆍ감리업체ㆍ설계업체엔 LH 퇴직자가 숱했다. 이 때문에 모든 업무가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이뤄졌을 것이란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런 지적을 인지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8월 15일 LH 퇴직자가 취직한 업체와 LH가 맺은 모든 용역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LH도 비슷한 제스처를 취했다. LH는 9월 22일 ‘전관前官 이권 카르텔’ 해결을 위해 전관 기준을 강화하고 퇴직자 현황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엔 건축설계ㆍ단지설계ㆍ용역종합심사평가 등에서 전관업체의 경우 최소 6점에서 15점까지 감점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LH는 새롭게 마련한 기준을 이날부터 용역 입찰공고에 즉각 적용했다.

이로써 LH 퇴직자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LH를 휘두를 수 있는 범위는 무척 좁아졌다. 그렇다면 LH가 앞세운 ‘전관업체 통제전략’은 과연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일까. 그렇지는 않다.

■ 문제➊ 무의미한 반복 = 사실 LH가 ‘전관예우를 근절하겠다’고 외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국토교통부는 3기 신도시에서 LH 직원들이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일자 2021년 6월 7일 ‘한국토지주택공사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전관예우를 없애기 위한 대책 4가지가 포함됐다. ▲취업제한 대상자 대폭 확대, ▲수의 계약 금지, ▲설계ㆍ공사 입찰 등 계약 관계 업무 투명성 제고, ▲퇴직자의 부적절한 접촉 금지다.

LH가 급하게 내놓은 입찰제한 조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이한준 LH 사장.[사진=연합뉴스]
LH가 급하게 내놓은 입찰제한 조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이한준 LH 사장.[사진=연합뉴스]

이중 중요한 대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일단 애초 ‘상임이사(1급 상당)’에만 적용했던 취업제한 조건을 ‘2급 이상’으로 문턱을 낮췄다. 이에 따라 7명에 불과했던 취업제한 대상자가 5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수의계약 금지 조치도 강화했다. 전관이 취직한 업체의 수의계약 제한 기간이 2년에서 5년으로 늘었다. 설계ㆍ공사 입찰을 심사하는 위원회를 꾸릴 때 외부전문가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의무화한 것도 의미 있는 대책이었다.

이 방안은 2021년 6월 공직자 윤리법 시행령 개정으로 2년 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LH는 검단 아파트 현장에서 벌어진 ‘부실 감리’를 막아내지 못했다. 물론 검단 아파트 현장의 건설 사업관리업체를 선정하는 입찰 절차가 2021년 1월에 진행됐기 때문에 시점상 차이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수차례에 걸쳐 전관예우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한 LH의 방관까지 허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 문제➋ 위헌 소지 = 앞서 언급했듯 원 장관은 7월 31일 이후 LH 전관업체와 LH가 맺은 계약을 모조리 취소했다. 주목되는 건 원 장관의 또다른 계획이다. 그는 “LH 전관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 자체를 막겠다”고 말했다. 

이게 가능한 방법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문제가 있다. 민홍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문의한 내용에 따르면, 전관업체란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거나 입찰을 배제하는 건 위헌 소지가 있다.

입법조사처는 “이미 건설공사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으로 자격제한, 제한경쟁입찰, 적격심사 등을 시행 중”이라며 “부실시공으로 처벌받거나 관련 법령을 위반하지 않았는데도 LH 퇴직자를 고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정한 계약이 아니라거나 계약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것이 명백하다고 볼 순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또 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39조 3항에 따르면,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기준은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해야 한다. 하지만 9월 22일 LH가 내놓은 전관예우 철폐 대안에서는 이 단계가 빠져 있었다. LH 관계자는 “좀 더 구체적인 혁신안이 조만간 나오면 그에 맞춰서 전관예우를 불식할 방법도 명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LH가 내놓은 대책은 대부분 제도를 개선하는 데 집중됐다. 2년 전 LH 직원의 3기 신도시 투기 문제가 불거져 나온 혁신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로 드러난 문제는 제도적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공사기간(공기工期)을 정해놓고 기한에 맞춰야 하는 낡은 병폐가 공사 품질을 떨어뜨리는 진짜 요인”이라며서 “비숙련 노동자가 부쩍 늘어났다는 점도 시공에 악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아파트 품질 문제는 전관예우뿐만 아니라 건설현장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고질병’에서 기인한다는 얘기다. 사고만 터지면 ‘전관예우’를 없애겠다는 LH는 과연 이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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