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마켓톡톡
은행 횡재세 밀어붙이는 민주당
정유사 건너뛰고 은행만 겨냥해
기간 제한 없어 맹목적 증세 위험
정부 물가관리 실명제 효과 있을까
독점기업 가격, 법으로 통제해야

민주당이 횡재세를 부과한다며 ‘일시적’이란 기한을 두지 않고, 정부는 독과점기업의 동조적 가격 인상 가능성을 공정거래법이 아닌 ‘○○사무관'으로 통제하려 한다. 횡재세를 횡재가 발생한 부분에만 일회성으로 부과하고, 독과점기업들의 동조적 가격 인상이 의심되면 공정거래법으로 처리해 바로잡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민주당은 횡재세 부과 대상을 정유회사가 아닌 금융회사로 특정했다. [사진=뉴시스]
민주당은 횡재세 부과 대상을 정유회사가 아닌 금융회사로 특정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11월 초 빵·우유·과자·커피·라면·아이스크림·설탕·식용유·밀가루 등 9개 품목의 담당자를 지정해 물가를 관리하겠다고 발표했고, 곧이어 28개 품목으로 개수를 늘렸다. 더불어민주당은 14일 금융소비자보호법과 부담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해 횡재세를 은행권에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두 경제 정책은 자의적 해석이 지나치게 작용해 원안原案을 알아보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에서도 독점과 세금 등 두가지 이슈를 두고 커다란 소송이 진행 중이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9월 구글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며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구글은 삼성‧애플에 자사 검색엔진을 탑재하는 대가로 수익의 일정 부분을 배분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0월 미 국세청(IRS)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조세피난처인 푸에르토리코에 일부 기업을 옮겨 2004~2013년 세금을 누락했다며 289억 달러(약 39조원)를 추가로 납부하라는 세액조정통지서를 보냈다. 구글과 MS에는 대형 사건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와도 경제 전체에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칼을 문제가 발생한 부분에 들이대면 외과 수술이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에 겨누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 영구적 횡재세의 위험성=민주당이 내세운 횡재세의 골자는 금융회사가 직전 5년 평균 대비 120%를 초과하는 순이자 수익을 얻을 경우 해당 초과 이익의 4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상생금융 기여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당식 횡재세는 두가지 측면에서 일반적이지 않아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먼저 횡재가 발생한 부분이 에너지 부분이 아닌 은행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최근의 에너지 가격 급등 혹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일시적 횡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벌어질 추가 수익도 현재의 논리로 재단하려고 한다. 


횡재세의 필요성은 이미 유럽 여러 나라들이 도입하거나 도입을 시도하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다만 횡재세는 명확한 횡재성 이벤트로 인한 일회적이고 한시적인 부담금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히 새로운 세금을 늘리는 행위가 돼버린다. 또한 기업들이 투자와 혁신 대신 과도한 이익을 기피하는 기현상을 만들어 경제에 부담을 준다. 

미국 싱크탱크인 조세재단(Tax foundation)은 “횡재세는 에너지 가격 급등과 같은 횡재성 이벤트로 발생한 이윤에 부과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안토니오 파타스 경제학 교수도 지난 8월 15일 이탈리아의 은행 횡재세 부과와 관련해 “횡재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정치적 비극으로 발생한 일회성 이벤트라서 경제적으로 불확실성이 용인될 수 있다”며 “유럽의 은행들은 이런 일회성 세금 때문에 사업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안案이 석유 가격 급등이란 횡재를 건너뛰고 기준금리 인상이란 횡재를 택한 근거도 불분명하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횡재세를 채택한 20여개 유럽 국가들 중에서 에너지 회사와 함께 은행을 횡재세 부과 대상으로 선정한 나라는 체코‧헝가리‧스페인‧이탈리아(추진 중) 4개 나라고, 이중에서 정유회사보다 먼저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우리나라 4개 정유회사 영업이익은 지난해 4분기 1조3521억원, 올해 1분기 1조4565억원, 2분기 -1조346억원, 3분기 2조9969억원이었다. 

스페인은 정유회사, 은행, 전기회사에 횡재세를 매겼다. 스페인 대법원은 올해 2월 정유회사 렙솔이 과세를 금지해 달라는 소송에서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은 법의 주요한 목적에 부합한다”고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스페인 정부의 발이 꼬이기 시작한 건 초과 이윤이 아닌 매출에 과세하고, 횡재세를 일시적이 아닌 영구적 증세 수단으로 삼으려고 욕심을 부리면서였다. 이에 따라 스페인 정부는 현재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 천연가스회사 엔데사는 물론이고 마드리드, 안달루시아, 갈리시아 3개 지방정부와도 소송을 벌이고 있다. 

■ 라면 사무관의 문제=농축산부는 지난 6일 라면‧빵‧과자‧커피‧아이스크림‧설탕‧우유 7개 품목 가격을 태스크포스(TF)를 꾸려서 집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9일에는 식용유‧밀가루를 추가해 각각 품목 담당자를 새로 지정했다. 12일에는 다시 28개 품목으로 늘렸다. 농식품부는 그간 신선 농‧축산물에만 담당자를 지정해 품목별로 물가를 관리해왔다. 2012년 이명박 정부가 품목별 담당자를 지정했던 ‘물가관리 책임실명제’와 동일하다. 

정부가 처음 제시한 관리 품목 7~9개를 보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기업들이 생산하거나 여기에 근접한 소수기업이 만들고 있다. 만약 이들 기업의 가격 인상에 문제가 있다면 굳이 ‘추가 담당자’를 지정하지 않더라도 바로잡을 근거는 충분하다. 

공정거래법 제6조는 “연간 매출액 또는 구매액이 40억원 이상인 사업자들 중에서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인 경우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공정거래법 제40조는 사업자가 다른 사업자와 공동으로 상품의 가격, 거래조건 등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를 하면 명시적인 합의가 없어도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는 공동행위를 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부가 라면 등 28개 품목을 집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라면 등 28개 품목을 집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들 품목은 말 그대로 생필품이다. 늘 사는 물건이기 때문에 소수 품목이라도 소비자는 가격 인상을 체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지난해 8월 ‘기대‧체감 인플레이션과 소비자물가와의 관계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기대인플레이션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최근 경제주체들 간의 물가 불안 심리를 안정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소비자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 사이의 상관계수가 0.76으로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말한다. 한국은행이 매월 2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는데, 조사 대상자에게 직전 월까지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알려주고 응답자가 향후 1년간 물가상승률 구간을 표기하도록 한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올해 6월 3.5%로 고점을 찍고, 7~10월 3.3%로 진정세를 보였지만, 10월 3.4%로 재상승하기 시작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