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문래동 작은 공장 이야기
더스쿠프 Video B 기획
1편 스러지는 작은 공장
2편 흉물이 된 작은 공장

# 도시에도 공장은 있다. 그런데 존재감은 사실상 없다.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그 낡은 공간에서 뭘 만드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다. 이 때문인지 도심 속 작은 공장들은 흉물이란 오해를 사거나 도시개발론에 밀려 흩어지기 일쑤다.

# 더스쿠프와 영상 플랫폼 Video B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의 가치’를 영상으로 만들었다. 인트로 1편 ‘스러지는 작은 공장’과 2편 ‘흉물이 된 작은 공장’을 동시에 공개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은 작은 공장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다. 청계천과 을지로에서 밀려난 공장 중 상당수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공장 1279곳을 옮기는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과연 이들 공장은 순조롭게 터전을 옮길 수 있을까. 이들이 또다시 문래동에서 밀려나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더스쿠프가 영상을 통해 문래동 작은 공장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내레이션 : 대한민국의 인구와 인프라가 밀집한 서울. 여기에도 공장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규모가 크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정비되지 않은 도로와 낡은 건물에 둘러싸인 탓인지 공장 외관도 좀 어수선합니다.


내레이션 : 도심 속 작은 공장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겁니다. 낡은 공장을 낀 골목 사이를 지날 때면 ‘무섭고 음습하다’고 생각하는 주민도 있을 거고요. 어느덧 도심 속 작은 공장은 볼품없는 애물단지, 흉물로 전락했습니다. 이곳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내레이션 : 우리는 경제생태계 밑단에 있는 이들을 흔히 ‘소상공인’이라고 부릅니다. 장사를 하는 ‘소상인’과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소공인’을 뜻합니다. 다만 실제로 우리가 쓰는 소상공인은 이들을 다 아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소상인’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죠.

내레이션 : 사실 소상인의 위기는 비교적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자주 가던 식당이 간판을 내렸거나 ‘임대 문의’란 종이가 나부끼면 우리는 골목상권이 침체에 빠졌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소상인은 시민의 일상과 밀착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부의 관심과 정책도 이들에게 쏠려있습니다.

내레이션 : 하지만 소공인은 다릅니다. 작은 공장의 셔터가 오랫동안 닫혀 있어도 빈자리를 느낄 수 없습니다. 일반 시민은 소공인의 ‘작은 공장’에서 무엇을 만드는지 그렇게 생산한 물건이 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니 작은 공장은 흉물 취급을 받는 겁니다.

내레이션 : 그래서인지 도시개발 계획만 세워지면 작은 공장 사람들은 밀려날 위기에 처합니다. 낙후한 지역을 재생해 도시 미관을 정비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작은 공장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죠.

과거 청계천과 을지로에서도 그랬습니다. 여기엔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던 작은 공장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서울시가 청계천ㆍ을지로 개발에 시동을 걸면서 작은 공장의 터전을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탱크도 만들 수 있던 공장엔 중장비가 들어섰고 일부는 콘크리트 더미에 묻혔죠.

서울 도심의 공장들은 제조업을 키워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사진=연합뉴스]
서울 도심의 공장들은 제조업을 키워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사진=연합뉴스]

물론 작은 공장 사람들이 대책 없이 쫓겨난 건 아니었습니다. 도시개발 사업으로 밀려난 작은 공장주들에게 ‘가든파이브’를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송파구 문정동 일대 17만8443㎡ 약 5만4073평에 조성한 국내 최대 규모 유통단지였습니다. 그럴듯한 장밋빛 청사진에 작은 공장들도 결국 보금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불가피한, 비자발적 이주였습니다. 이렇게 내쫓기는 사람에게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생활경제연구소 구본기 소장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구본기 소장 : “어떤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그곳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 다른 곳으로 이렇게 이주를 할 수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때 일어나는 이주는 비자발적이에요. 따라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불가피하게 비자발적 이주가 발생하면 폭력적이지 않고 비자발적으로 내쫓기는 주체에게 수평적인 이주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


내레이션 : 하지만 작은 공장들은 끝내 가든파이브에 모이지 못했습니다. 현재는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죠. 이전 시기와 맞물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입주에 필요한 돈도 크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내레이션 : 그때 떠난 작은 공장 사람들의 일부는 또다른 기계금속집적지로 향했습니다. 바로 문래동입니다. 문래동의 ‘기계금속집적지’엔 1279개의 작은 공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수도권엔 1만796개의 공장이 있는데 이중 11.8%가 문래동에 집결해 있습니다. 수도권 공장 10개 중 1개는 이 동네에 있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서울에 남은 가장 큰 도심형제조업단지가 문래동입니다.

내레이션 : 하지만 새롭게 자리 잡은 문래동 역시 최근 불어온 ‘개발 바람’에 휘청이고 있습니다. 문래동은 몇년새 ‘힙’한 동네로 변모했습니다. 작고 예쁜 카페와 식당이 작은 공장을 밀어내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났습니다. 임대료도 가파르게 치솟았죠. 올 하반기 매물로 올라온 문래동 건물을 보면 158㎡, 그러니까 약 48평 건물의 보증금은 4000만원. 월 임대료는 400만원에 이릅니다. 작은 공장 사람들이 견뎌내기엔 부담스러운 비용입니다.

청계천·을지로에서도 도시 개발이 있었고 대체지를 마련해준다고 했지만 공장은 결국 사라졌다.[사진=연합뉴스]
청계천·을지로에서도 도시 개발이 있었고 대체지를 마련해준다고 했지만 공장은 결국 사라졌다.[사진=연합뉴스]

내레이션 : 설상가상으로 문래동의 ‘개발 바람’은 갈수록 세지고 있습니다. 영등포구는 지난 6월 문래동에 있는 소공업체 1279개를 통째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 자리에 4차 산업 거점을 육성하겠다는 건데요. 올해 연말쯤이면 이전 후보지의 윤곽도 드러납니다. 작은 공장 사람들은 이전 계획을 반신반의합니다. 을지로와 청계천에서 밀려날 때 경험한 ‘작은 공장 해체’의 뼈아픈 역사가 문래동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구본기 소장 : “계획을 먼저 마련해 놓고 그제서야 이제 피해자 그룹들이 우리 내쫓긴다라는 목소리들이 조금 나오면 그제서야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고 순서가 뒤로 밀린단 말이에요. 이게 일반적인 도시개발의 문법이에요. 그걸 지금 답습하고 있는 거고….”


내레이션 : 그럼에도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싹 밀어버리고 개발하는 게 낫다.” 작은 공장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불편한 존재일 겁니다. 부동산 개발을 바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죠. 뭘 만드는지도 모르는데 왜 노른자 땅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냐면서 이런 가정을 떠올릴 겁니다.

내레이션 : 정말 그럴까요. 작은 공장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큽니다. 작은 공장은 한국 제조업의 실핏줄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신제품의 테스트 버전을 만들 때 작은 공장이 맞춤형 부품의 생산처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이는 자잘한 부품을 만들 여력이 없는 대형 공장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얘긴 3편 ‘작은 공장의 작지 않은 가치’를 통해 더 자세히 들어보겠습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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