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제조업 視리즈 1편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제조업 시작점 만들어내는 역할
서울 도심 개발 압력에 설자리 잃어
도심 속 작은 공장 존속해야 할 이유

도시의 작은 공장들이 사라지고 있다. 주택도 부족한 시기에 공장을 없애고 고층 공동주택으로 개발하는 건 어쩌면 탁월한 선택일지 모른다. 문제는 작은 공장들이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면 제조업의 ‘밑단’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더스쿠프의 새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그 첫번째 편이다.

도심 속 작은 공장은 새로운 시도를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사진=뉴시스]
도심 속 작은 공장은 새로운 시도를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사진=뉴시스]

혼자서 일하거나 소규모 인원으로 일하는 개인사업자를 우리는 자영업자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정권의 이념이나 색채를 가리지 않고 자영업자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취업자 5명 중 1명이 자영업자(19.9%ㆍ2023년 2분기 기준ㆍ통계청)일 정도로 그 수가 많아서다. 자영업이 무너지면 취업자 중 20%가 흔들리는 셈이니, 정부가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다만, 이 지점에선 우리가 따져봐야 할 게 있다. 다름 아닌 소공인小工人이다. 사람들은 흔히 ‘소상공인’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이는 ‘상인’을 뜻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도소매업, 숙박ㆍ음식점업의 5인 미만 사업체 비중이 각각 91.4%, 89.7%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소공인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면받는 경우가 많다. 한국경제의 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그 가치를 몰라주는 사람들도 숱하다. 코로나19 국면 때도 그랬다. 2020년 발발한 팬데믹 상황에서 소공인은 소상인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지만,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소상인의 타격은 비교적 쉽게 느낄 수 있어서다. 자주 가던 식당이 간판을 내렸거나 ‘임대 문의’란 종이가 나부끼면 그들의 어려움을 금세 체감할 수 있다. 밤늦게 슬리퍼를 신은 채 다니던 편의점이 문을 닫아도 그렇다.

소공인은 다르다. 작은 공장의 셔터가 오랫동안 닫혀 있어도 빈자리를 느끼기 쉽지 않다. 일반 시민은 소공인의 ‘작은 공장’에서 무엇을 만드는지, 그렇게 생산한 물건이 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니 ‘작은 공장’은 시시때때로 흉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럼 도심 속 ‘작은 공장’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저 자잘한 부품 따위나 만드는 곳일까. 그렇지 않다. ‘작은 공장’은 한국 제조업의 실핏줄과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핵심은 ‘테스트’다. 예를 들어보자.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대형 공장에선 ‘자잘한 부품’을 만들 여력이 없다. 삼성, LG 등 원청 기업이 원하는 ‘규격화한 부품’을 찍어내는 것도 바쁘다. 

[비주얼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비주얼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문제는 이들 대기업이 ‘신제품’을 만들 때다. 신형 스마트폰의 성능을 실험하거나, 새로운 방식의 TV를 개발했을 때, 거기에 걸맞은 부품을 만들어줄 공장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이 바로 ‘작은 공장’에서 진행된다.

비단 대기업만이 아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구상했을 때도 ‘작은 공장’이 돌아간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수많은 테스트 버전을 만들어야 할 때 이들 ‘작은 공장’이 맞춤형 부품의 생산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거다.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문래동, 성수동 등지에선 작은 공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작은 공장’의 자리가 조금씩 줄어든다는 점이다. 작은 공장은 준공업지역이나 일반상업지역(폐수ㆍ대기유해물질 등을 배출하지 않거나 소음ㆍ진동이 일정 기준 이하인 경우)에도 둥지를 틀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법적 근거가 밀려들어오는 자본까지 막아내진 못했다. 준공업지역이던 서울 성수동의 ‘빈 공장’엔 카페나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작은 공장이 빽빽했던 세운상가(일반상업지역) 일대에도 고층 건물이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밀려난 작은 공장들은 서울 문래동(영등포구)에 터전을 잡았지만 이마저도 미래가 밝지 않다. 이 지역에 ‘개발붐’이 일면서 간신히 자리 잡은 작은 공장들은 다시 한번 이전을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영등포구는 지난 3월 ‘문래동 기계금속 집적지 이전 후보지 발굴 용역’도 발주했다. 오는 12월이면 그 연구 결과가 나온다. 

그렇다면 문래동 작은 공장들은 이전 이후에도 지금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역대 정부가 진행했던 ‘이전 사업’이 여태껏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 청계천ㆍ을지로 개발을 시작한 서울시는 서울 송파구에 ‘가든파이브’를 건설해 소공장을 이전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청계천ㆍ을지로를 떠난 작은 공장들은 끝내 ‘가든파이브’에 모이지 못했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일부가 모여든 곳이 바로 문래동이다. 어렵게 터전을 닦은 문래동 작은 공장 소공인들이 ‘이전’을 걱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준비 없는 이전은 곧 ‘흩어짐’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작은 공장은 갈수록 터전을 잃을 게 분명하다. ‘자리’를 잃으면 작은 공장들이 지탱해오던 ‘밑단의 산업’도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제조업의 실핏줄인 작은 공장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답을 찾기 위해 더스쿠프가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을 시작한다. 팬데믹 국면에서 가려진 소공인의 현주소, 생산 공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은 공장’의 숨은 가치, ‘작은 공장’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일본 도쿄 오타구大田区가 찾은 미래 등을 직접 취재할 계획이다. 視리즈 2편은 다음호에서 이어가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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