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28㎓ 손 뗀 이통3사
정부 새 주인 찾고 있지만
비용 탓에 나서는 기업 없어
용례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아
갈 곳 잃은 초고속 주파수

28㎓ 주파수는 ‘진짜 5G’에 없어선 안 될 요소다. LTE보다 20배 빠른 5G를 구현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통3사가 28㎓ 기지국을 충분히 설치하지 않은 탓에 소비자는 5G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이통3사가 갖고 있던 28㎓ 주파수 할당권을 뺏은 정부는 이를 제4이통사에 줄 계획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28㎓는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8㎓ 주파수 할당 계획을 선포했지만 신규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8㎓ 주파수 할당 계획을 선포했지만 신규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동통신3사가 초고주파인 28㎓ 주파수와 작별한 지 7개월이 흘렀다. 발단이 된 건 지난해 11월께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통신사들의 기지국 설치가 부진하다’는 이유로 KT와 LG유플러스의 28㎓ 주파수 할당을 취소했다. SK텔레콤에도 ‘주파수 할당 당시 약속했던 목표(이통사당 기지국 1만5000개 설치)를 2022년 연말까지 채우지 못하면 할당을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SK텔레콤의 28㎓ 대역망 구축 수는 1650개(2023년 5월 기준)에 그쳤고, 결국 과기부는 지난 5월 SK텔레콤의 28㎓ 할당 취소 처분을 내렸다. 다만, 28㎓를 이용해 운영하던 이통3사의 5G 지하철 와이파이는 5G 특화망인 ‘이음5G’를 활용해 계속 유지된다

이통3사가 사실상 28㎓를 포기하자 과기부는 ‘4번째 통신사’를 찾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11월 21일 28㎓ 주파수 할당 계획을 공고하고 12월 19일까지 입찰 기업을 찾겠다고 밝혔다.

주파수 할당 가격을 기존보다 65.0% 저렴한 742억원(최저경쟁가 기준)으로 책정하고, 망 구축 의무도 기존 1만5000대에서 ‘3년 내 6000대 설치’로 낮췄지만 이통3사는 참여할 수 없다. 당시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이번 할당 공고로 신규 사업자가 진입해 통신시장의 경쟁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마감까지 10일가량 남긴 현재 28㎓ 주파수를 사겠다는 기업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진입 문턱을 크게 낮췄음에도 기업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비용’에 있다. 28㎓ 대역은 5G의 주력망인 3.5㎓보다 직진성이 강하다.

그만큼 속도가 빨라 이론상으론 LTE보다 20배 빠른 5G를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주파수 도달거리가 짧고 회절률(전파가 휘어지는 성질)이 낮아 장애물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려면 기지국을 3.5㎓보다 촘촘히 세워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막대한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통3사가 28㎓ 기지국 설치에 난색을 표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업계에선 28㎓ 기지국 설치에 필요한 초기 자본금만 최소 1조~2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스마트폰 중 28㎓ 주파수를 지원하는 기기가 없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설령 ‘제4이통사’가 나타나 28㎓ 서비스를 개시하더라도 소비자는 이를 체감할 수 없다.

스마트폰 제조사의 한 관계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이통3사가 28㎓를 지원하지 않는 시점에서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굳이 28㎓ 대역 이통 기능을 탑재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그럼 28㎓는 이대로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사장되는 걸까. 통신업계 관계자들은 “28㎓ 주파수의 사용처를 바꾸는 것만이 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동통신사업 대신, 사람이 몰리는 테마파크나 스포츠 경기장, 주요 환승역, 정교한 통신을 요구하는 스마트공장 등에 먼저 설치하자는 거다.

자율주행 기술에 28㎓ 주파수를 접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초고속 차량 전용 통신망 구축이 필수인데, 속도가 빠른 28㎓ 주파수가 안성맞춤일 수 있다. 확 트인 차도의 특성상 장애물을 통과하기 어려운 28㎓의 단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이상적인 시나리오지만 문제는 자율주행 산업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은 운전자들이 운전대에서 안심하고 손을 뗄 수 있는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3’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해외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계 최초로 ‘24시간 무인택시’를 운행했던 제너럴모터스(GM)가 크고 작은 교통사고 탓에 3개월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김영기 한국공학한림원 자율주행위원회 위원장은 “완성차 업체들이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차량제어·원격제어 등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면 28㎓ 주파수의 먹거리는 더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다만, 이같은 미래는 자율주행 상용화가 선행하지 않고선 실현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율주행 산업이 일정 궤도에 올라야 28㎓ 주파수의 쓰임새가 늘어날 거란 얘기다. 이통3사마저 손을 뗀 28㎓ 주파수 사업은 앞으로 어떤 결말을 맞을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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