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배민 배달료 시스템 변경 논란
기상할증, 눈비 올 때 추가 지급
기상청 데이터 기반 자동화했지만
기상상황 반영 못하는 사례 속출
가게 도착 후 취소시 수수료 지급
기존엔 배달료 전액 지급했지만
사측 일방적으로 시스템 변경
라이더유니온 “사실상 임금 삭감”
법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자

한편에선 “시스템 고도화”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선 “일방적 임금 삭감”이라고 반박한다. 배달앱 업체 ‘배달의민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배달기사들의 배달료 시스템을 회사 맘대로 변경했는데, 그 과정에서 배달기사가 받던 배달료가 빠지거나 줄어든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민이 배달기사의 처우와 직결된 시스템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배달기사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아한청년들 소속 배달기사들은 “사측의 일방적 시스템 변경은 사실상 임금 삭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우아한청년들 소속 배달기사들은 “사측의 일방적 시스템 변경은 사실상 임금 삭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팬데믹 국면에선 배달 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숱했다. 배달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달앱 업체들이 각종 프로모션을 내걸고 배달기사를 모셔갔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점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인지 배달기사는 ‘플랫폼 노동’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지난해 기준 플랫폼 종사자 수는 291만9000명에 달했는데 그중 배달·배송·운전 업종 종사자의 비중은 26.5%(77만5000명)나 됐다. 

하지만 엔데믹(endemic·풍토병) 전환 이후 배달 수요가 감소하면서 플랫폼 노동이 품고 있던 문제들이 배달기사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최근 배달앱 업체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에서 불거진 ‘배달료 논란’이 대표적이다. 그럼 배민에선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한가지씩 살펴보자. 

■ 논란 취소 수수료 = “시스템 고도화일까, 일방적 임금 삭감일까.” 최근 배민에서 불거진 논란이다. 배민의 배달기사를 관리하는 ‘우아한청년들’이 일부 시스템을 자동화하는 과정에서 배달기사들에게 지급되는 배달료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우아한청년들은 지난 10월 30일 배달기사들에게 “(배달기사가) 11월 7일부터 가게 도착 후 취소되는 주문 건에는 취소 수수료 1500원을 지급한다”고 통보했다. 언뜻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취소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기존 주문 취소 시엔 배달기사에게 배달료 전액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기본 배달료가 3000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배달기사로선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셈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지부(이하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는 “주문 취소 시 배달기사에게 배달료 전액을 지급하는 건 ‘약관(바로배달 약관 17조4항)’을 통해 서로 합의한 내용이다”면서 “사실상 배달기사의 임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아한청년들 측은 이렇게 반론했다. “배달료는 배달기사가 고객에게 배달수행을 완료했을 때 지급하는 게 원칙이다. 실제로 배달을 끝낸 후 고객이 주문을 취소했다는 걸 알았을 경우에 배달료 전액을 지급해 왔다. 기존엔 배달기사가 가게에 도착했는데 고객이 주문을 취소했을 경우 배달기사가 직접 보상을 신청해야 했지만, 취소 수수료 제도를 도입하면서 자동 지급하도록 했다.”

배달기사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했다는 건데, 정작 배달기사들이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 반론엔 어폐가 있다. 기존엔 배달 완료 후든 가게 도착 후든 배달료 전액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배달기사 입장에선 배달료가 깎인 게 사실이란 얘기다. 

■ 논란➋ 기상할증 자동화 = 문제는 사측의 일방적인 제도 변경으로 배달기사가 배달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례가 또 있다는 점이다. 우아한청년들은 지난 11월부터 ‘기상할증 시스템’을 자동화했다. 기상할증은 ▲눈이나 비가 올 때, ▲기온이 영하 5도 이하나 영상 33도 이상일 때 배달기사에게 500~1000원의 추가 배달료를 지급하는 제도다. 

기존엔 기상청의 일기예보와 배달기사들의 제보 등을 현장 관리자가 파악해 할증 여부를 설정했다. 하지만 11월을 기점으로 기상청의 자료(기상청 날씨 API)를 받아 자동으로 할증을 적용하도록 바꿨다. “기상할증 제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우아한청년들 측의 설명과 달리 현장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자동화 시스템이 실제 기상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배달기사들이 기상할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비가 내려도 기상청의 비 예보가 없다면 기상할증을 받지 못한 셈이다.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4일까지 접수된 피해사례는 수백건에 달한다. 우아한청년들 측은 “보상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시스템을 고도화해가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했지만 그들을 위한 법적 안전망은 미비하다.[사진=뉴시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했지만 그들을 위한 법적 안전망은 미비하다.[사진=뉴시스]

■ 근본적 문제점 = 그렇다면 배달기사들에게 보상을 지급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배달기사는 ‘플랫폼 노동자’란 태생적 약점을 갖고 있다. 근로기준법 등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사측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임금·퇴직금 보호, ▲적정 근로시간 보장, ▲휴일·휴게시간 보장, ▲해고 제한 등의 권리를 보장받지만 배달기사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는 다르다. 

배민의 사례처럼 노동자의 임금과 직결되는 알고리즘이나 정책을 플랫폼 회사가 맘대로 바꿀 수 있다. 배달기사·대리운전기사·웹툰작가 등 플랫폼 종사자들의 연합인 ‘플랫폼노동희망찾기’가 ▲플랫폼의 사용자성 및 종사자의 노동자성 인정, ▲표준단가 책정 등 생활임금 보장, ▲알고리즘 설명·교섭 의무 부여, ▲사회보험 적용 확대,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性을 인정하기 위한 법안들이 수년째 국회에 발이 묶여 있다는 점이다. 이수진(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이 대표적이다. 여기엔 ▲플랫폼 종사자에게 노동관계법을 우선 적용, ▲법 적용 대상이 아님을 입증할 책임을 플랫폼 기업에 부여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은주(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하는사람기본법안’의 골자도 근로기준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플랫폼 종사자·프리랜서 등을 일하는 사람에 포함해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지만, 소관위 계류 중이다. 이 때문에 쟁점이 많은 법 제·개정을 이룰 때까지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배달기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를 두곤 다툼이 있지만,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라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고용노동부나 배민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번 배민의 시스템 변경처럼) 배달기사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주는 알고리즘은 사실상 ‘취업규칙’의 역할을 한다. 그런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경우엔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 아울러 알고리즘을 변경할 땐 객관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고 관련 정보를 근로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플랫폼 업체들은 이런 것들을 허투루 다룬다. 결국 고용노동부가 나서서 근로감독과 행정지도를 펼쳐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다.”

입법의 미비, 정부의 해태, 그 뒤에 숨은 플랫폼 업체…, 배민 배달료 논란에 숨은 나쁜 컬래버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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