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5월 제정한 전세사기특별법
6개월마다 보완 입법하기로
임대인 책임 늘리라는 피해자들
여전히 피해자 요건도 까다로워
건설사 손해는 보증해주면서
전세사기는 왜 사인 간 거래인가
특별법 개정안 수건 발의됐지만
올해 정기국회로 넘어가지 못해
총선 전 통과 여부도 불투명

2022년 말 전세사기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6개월이 흐른 2023년 5월에야 정부는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문제’라던 주장에서 물러나 ‘전세사기특별법’을 제정했고, 더불어민주당은 “6개월에 한번씩 보완 입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또 6개월, 국회는 약속을 지켰을까.

전세사기피해자들은 피해자가 대출받는 것이 아니라 임대인이 그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피해자들은 피해자가 대출받는 것이 아니라 임대인이 그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사진=연합뉴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올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6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의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전세사기특별법이 이미 있는데 왜 또 개정안까지 통과시키려는 것이냐”고 반론을 펼지 모른다. 하지만 ‘전세사기특별법’은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5월 ‘보완’을 약속한 법이었다.

특별법 제정 당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필요하거나 반영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6개월마다 보완 입법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법을 만드는 국회는 전세사기특별법에 ‘땜질’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전세사기특별법’은 이름이 무색하게 피해자들로부터 “전혀 특별하지 않은 법”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임대인이 들고 사라져 버린 보증금을 혼자서 다 갚아나가야 한다는 피해자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서울ㆍ인천ㆍ수원ㆍ대전ㆍ대구ㆍ부산에서 이런 삶을 살고 있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다시 모였다. 6일 계획된 국토위 법안심사소위 전날이었다. 대출금을 갚고 주거 비용을 계속 마련하기 위해 각자 생업에 바쁜 삶을 살다 저녁에 시간을 냈다.

이유는 하나였다. 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모인 피해자들은 크게 3가지 의문을 던졌다. 하나씩 살펴보자.

■ 의문➊ 책임질 임대인의 실종 = 피해자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 하는 건 전세 보증금의 빚을 피해자인 임차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거였다. 이날 전세사기피해자 집회에서 강서구 피해자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왜 돈을 가져간 사람들에게 받지 않고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갚으라고 하는가”라며 “지금 대출을 피해자들에게 받으라고 하고 있는데 차라리 임대인들에게 대출받게 하라”고 부르짖었다. 이어 “그런 임대인들에게는 추가 임대 계약을 금지하고 재산 늘리기(신규 매입)도 허용하지 않는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전세사기 피해자는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을 예로 들며 “이 세 모녀에게 피해받은 보증금 규모가 800억원인데 떨어진 처벌은 징역 10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전세사기를 저질러도 임대인은 갚을 의무도 없고, 재산 몰수도 어렵다는 거다.

임차인의 보증금 수십억원을 가져가 놓고서도 임대인이 받는 처벌은 징역 수년 정도가 전부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사실상 사기를 방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 의문➋ 개인 간 거래의 모순 = 정부가 여태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민간에서 발생한 사기 행위 피해자를 모두 구제할 수 없다”는 거였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면, 보이스피싱이나 다른 사기 범죄도 모조리 국가가 손해액을 배상해 줘야 하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전세사기는 그 결이 다르다”고 꼬집고 있다.

이철빈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적극적으로 전세 대출을 내주고 그 대출에 보증을 서고 보증보험까지 만들어 전세 계약을 하게끔 만들어 둔 것이 정부 아니냐”라면서 말을 이었다.

“민간이 개입하는 게 잘못이라면 IMF 때 정부는 왜 금융기관 부실을 도와줬는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금융기관과 건설사의 보증을 서준 까닭은 뭔가.”

그는 이어 “전세사기 특별법을 5월에 제정했고, 벌써 6개월이 흘렀는데, 정부에서 자랑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임대 사업 실적은 0건에 불과하다”며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비판했다.

전세사기피해자수원대책위원회 함승원 부위원장은 “(국가가 자격증 발급한)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이 임차인을 기만했는데도 어떻게 국가에 아무런 책임이 없느냐”며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대규모 사기 범죄를 외면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는 각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의문➌ 선구제 후회수 왜 못하나 = 피해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부분은 또 있다.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메꾸기 위해 또다시 대출받아야 한다는 거다. 이 어려움을 덜어내려면 정부의 ‘선先구제 후後회수’가 필요하다고 피해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임대인의 재산을 추적하거나 추징할 권리가 없는 임차인 대신 정부가 나서서 먼저 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돌려주고 이후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해달라는 거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신탁사기를 당한 30대 피해자는 “몇년간 모은 돈과 대출받아서 들어간 전세 보증금인데 어디서 돈을 마련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주말에도 아르바이트해 가면서 월세 내고 다시 어떻게든 돈을 모으려 애쓰고 있긴 한데, 정부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대출을 또 받으라는 말만 거듭하고 있어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당장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임차인들에게 숨 돌릴 구멍이라도 마련해달라는 거다.

정부는 전세사기특별법으로 지원 대책을 마련했지만 피해자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다.[사진 | 뉴시스]
정부는 전세사기특별법으로 지원 대책을 마련했지만 피해자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한다.[사진 | 뉴시스]

이처럼 6개월 만에 특별법 개정안의 통과를 요구하기 위해 모인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1년 전 처음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만든 보상체계에서 피해자로 인정받는 건 쉽지 않았고, 이미 전세금 대출을 받은 피해자들은 임대인이 돌려주지 않은 전세금을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대출받아야 했다. 그사이 피해자 중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도 올해 마지막 정기국회에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상정되지 못했다. 축조심사(법률안을 한 조항씩 차례대로 낭독하며 심사하는 방식)를 거쳐 소위에서 의결되면 2024년 열릴 정기국회에서 통과를 노려볼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2024년 총선을 앞둔 국회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법안 통과에 관심을 기울일지 알 수 없다. 21대 국회는 “6개월마다 보완 입법하겠다”며 내뱉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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