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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소비지출 고소득층 “확대”
양질의 일자리 실종 현상 지속
내년 수출 신냉전으로 축소 가능성
경제 불평등 그대로 방치한 미국
샌프란 ‘도시 종말의 고리’ 발생
불평등에 무관심한 한국의 미래

우리 경제는 전통적으로 수출을 앞에 뒀다. 하지만 지난해 수출이 급감하면서 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수출을 앞질렀다. 그런데 국내외 경제 지형이 고소득과 저소득,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화하면서 내년 소비‧수출 성장을 갉아먹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갈수록 심화하는 경제 불평등을 해소할 의지가 부족한 점도 복병이다. 

내년 우리 경제의 소비 감소가 우려된다. 서울 시내 한 마트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사진=뉴시스]
내년 우리 경제의 소비 감소가 우려된다. 서울 시내 한 마트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 [사진=뉴시스]

■ 복병➊ 소비 축소=우리나라 소득 상위 20%는 내년에 지출을 확대할 계획이지만, 소득 하위 40%는 지출을 더 줄일 계획이다. 13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국민 소비지출 계획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52.3%가 내년 소비지출을 올해보다 축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소득 수준에 따라서 차이가 컸다. 소득 상위 20%(5분위)에 해당하는 60.9%가 내년 소비를 올해보다 더 늘리겠다고 답했지만, 소득 하위 20%(1분위)는 35.5%만이 소비를 늘릴 계획이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소득 하위 20~40%는 42.6%가 내년 소비를 늘릴 예정이라고 답했다. 

통계청의 11월 고용동향도 세대별로 일자리의 양극화가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29만1000명 늘어났다. 이는 60세 미만 취업자 증가분보다 많다. 지난 10월에도 60세 이상 취업자가 29만1000명 늘었다. 반면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11월에도 4만4000명 줄면서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 9월 전월 대비 3.4포인트 하락했고, 10월에는 0.98포인트, 11월에도 1.6포인트 떨어졌다. 일반적으로 심리 관련 지표는 실제 통계를 선행한다. 

■ 복병➋ 수출 축소=지난 1~10일 우리나라 수출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3% 늘어나는 데 머물면서 3개월 연속 수출 증가에 파란불이 켜졌다. 그런데 내년 우리 수출의 복병은 다른 곳에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기침체다.

중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0.5% 떨어지면서 2020년 11월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부동산과 지방정부의 부채 위기로 중국인의 소비심리가 크게 쪼그라든 것도 문제다. 

내년 미국의 경기침체를 전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투자은행 바클리는 내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분기 0.4%, 2분기 0.3%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4분기 미국의 성장이 둔화하기 시작해 내년 성장률이 1%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 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CEO도 12월 들어 미국의 경기침체를 경고했다. 

미·중 신냉전 체제가 세계 무역을 축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타 고피나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는 지난 11일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린 국제 행사에서 “세계 경제가 두 블록으로 분열하면 세계 GDP의 2.5~7.0%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화가 크게 후퇴할 조짐은 아직 없지만, 지정학적 분열이 심화하면 신냉전에 돌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도 같은날 “세계 상품 무역이 올해 8% 축소할 것”이라며 “내년 무역 전망도 매우 불확실하고 비관적”이라고 밝혔다. 

■ 복병➌ 도시 종말의 고리=고피나스 부총재는 올 초 KBS와 인터뷰에서 유독 한국의 성장률을 낮춘 이유로 수출과 부동산 시장의 둔화를 꼽으며 “가장 취약한 계층에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전체 거시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과연 이런 충고를 귀담아듣고 있는지 의문이다. 현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과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고물가·고금리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을 위한 재원 마련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럽과 달리 세계 1·2차 인플레이션으로 횡재성 수익을 올린 정유회사·은행으로부터 일회성 부담금인 횡재세를 거두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 은행들이 스스로 수익 일부를 내놓겠다는 상생안은 대출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보는 구조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지난 12일 발표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혁신안에서도 사회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방안이 빠져있다. 공공주택에 민간 건설사들의 참여를 허용하겠다면서 공공분양주택에만 초점을 맞추고, 공공임대주택 대책은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가 2년 전보다 13.3% 상승한 102만원까지 치솟았는데(연합뉴스), 국회예산정책처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7월 통합공공임대주택 사업 승인 물량은 연간 목표치의 7.3%에 그쳤다. 

경제가 좋지 않을수록 취약 계층을 위한 정책이 필요한 이유는 침체기일수록 경제력의 차이가 더 많이 벌어지고, 이는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 유지하는 데 불리해서다. 미국에서 샌프란시스코가 경쟁력을 잃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높은 월세와 취약 계층의 붕괴는 이 비싼 도시의 경쟁력을 불과 3년 만에 실종시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높은 월세와 경제 불평등으로 팬데믹 이후 도시 경쟁력을 상실했다. 샌프란시스코 한 거리에 노숙자들의 텐트가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높은 월세와 경제 불평등으로 팬데믹 이후 도시 경쟁력을 상실했다. 샌프란시스코 한 거리에 노숙자들의 텐트가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애플‧구글 등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까닭에 샌프란시스코는 2020년 미국에서 월세가 세번째로 비싼 도시였지만, 올해 들어서 10위로 급락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 5월 ‘월세가 소득의 30%인 게 뉴노멀’이란 보고서에서 “샌프란시스코는 베이지역의 고임금 직원들이 다른 도시로 이주하면서 코로나19 이후 가장 약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고임금 근로자가 샌프란시스코를 떠나자 높은 월세와 인플레이션으로 노숙자들은 증가하고, 상점에서 약탈이 급증했다. 월세 하락은 그 결과인 셈이다. 

이스테인 반 니에우뷔르흐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 워킹페이퍼에서 “재택근무 증가 등의 변화가 부동산의 가치를 끌어내려 세수를 줄이면, 높은 월세와 생활 인프라 부족으로 범죄가 늘어나면서 도시가 공동화한다”는 ‘도시 종말의 고리’ 이론을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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