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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프로 공개 후 6개월
MR에 시큰둥한 소비자
업계 둘러싼 어두운 전망
애플 비전프로도 통할까

애플의 MR헤드셋 ‘비전프로’ 론칭일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한쪽에선 늘 그랬듯 애플이 시장의 판을 뒤집을 거란 전망을 내놓지만 상황은 썩 좋지 않습니다. 2023년 6월 비전프로의 ‘연구버전’을 공개한 후에도 관련 시장엔 찬바람만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출시를 앞둔 애플 ‘비전프로’는 과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애플 비전프로는 2024년 초 출시 예정이다.[사진=뉴시스]
애플 비전프로는 2024년 초 출시 예정이다.[사진=뉴시스]

2023년 6월 5일, 애플은 자사 최초의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Vision Pro)’를 공개했습니다. 일종의 ‘연구버전’이었죠. 아이폰을 비롯해 애플워치(스마트워치), 에어팟(무선이어폰) 등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관련 시장을 뒤흔드는 애플의 신작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사실 비전프로가 정확히 어떤 기기인지를 두곤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업계에선 비전프로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을 합친 MR헤드셋으로 부르고 있지만, 애플은 ‘공간 컴퓨터’란 새로운 명칭으로 정의했습니다. 이 기사에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비전프로를 MR헤드셋으로 구분하겠습니다.

비전프로에 실린 기대감 덕분인지 애플의 주가도 급등했습니다. ‘연구버전’ 비전프로를 공개한지 일주일 뒤인 2023년 6월 13일(현지시간) 애플 주가는 전일 대비 1.56% 상승한 183.79달러로 마감했습니다. 그 결과, 시가총액이 2조8900억 달러(약 3728조원)로 커지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죠. 증권가에서 ‘애플이 세계 최초로 시총 3조 달러를 돌파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습니다. MR헤드셋 시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일단 전망은 밝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VR·AR·MR을 아우르는 확장현실(XR) 시장 규모가 2023년 412억 달러(약 53조4364억원·이하 전망치)에서 2026년 1007억 달러(약 130조6079억원)로 3년 새 2.4배가량 불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MR헤드셋 시장의 현주소는 전망과 180도 다릅니다. 시장 상황을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현재 시장의 선두에 서 있는 건 페이스북으로 유명한 ‘메타’입니다. MR헤드셋 시장에서 메타의 점유율은 2023년 2분기 기준 50.2%에 달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전프로를 의식해서인지 메타도 2023년 10월에 신제품 ‘퀘스트3’를 출시했습니다. 퀘스트3의 가격은 69만원(한국 128GB 기준)으로, 같은해 출시했던 고급형 기기 ‘퀘스트프로(129만원)’보다 절반 가까이 저렴합니다. 메타가 보급형 MR헤드셋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하려 한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문제는 메타의 노력에도 소비자들은 MR헤드셋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시장조사기관 서캐나(Circana)에 따르면, 2023년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MR헤드셋의 전체 매출은 6억6400만 달러(약 8621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줄어들었습니다. 메타의 퀘스트3 판매량도 신통치 않은 듯합니다.

미 IT전문매체 폰아레나는 “퀘스트3의 초기 판매량 전망치가 기존 700만대에서 출시 후 250만대로 감소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부진한 판매량 탓인지 VR· AR 기술을 개발하는 메타의 리얼리티랩스 누적 손실은 250억 달러(약 32조600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의 게임회사 소니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2023년 2월 소니는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VR기기 ‘플레이스테이션VR2’를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출시 이후 6주간 글로벌 판매량이 자사 예상치인 200만대를 크게 밑도는 60만대에 그쳤습니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MR헤드셋 신제품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어찌 보면 애플이 비전프로를 처음 공개했을 때보다 상황이 더 악화한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기기 판매량이 줄어든 이유로 한정된 사용자층을 꼽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령별로 ‘VR·AR 기기를 갖고 있다’고 답한 이들 중 3~9세 응답률(부모 대리 답변)이 16.1%로 가장 높았습니다. 상대적으로 지갑 사정이 좋은 30대와 40대는 각각 9.6%·10.4%에 그쳤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보고서에서 “일부 콘텐츠를 제외하면 사용자 대부분이 10대나 어린 아이들”이라면서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발굴해야 MR기기의 파급력도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 애플이 조만간 ‘비전프로’를 출시할 듯합니다. 업계에선 이르면 2월, 늦어도 3월쯤엔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출시까지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단 얘깁니다.

비전프로는 정체된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반반인 듯합니다. 일단 비전프로의 주요 기능은 ‘오락’에 치우쳐진 MR헤드셋의 콘텐츠 범위를 ‘일상’으로 확대하는 데 집중돼 있습니다.

▲현실 공간에 무제한으로 작업 화면과 앱을 띄우는 ‘무제한 디스플레이’, ▲영화 시청이 가능할 정도로 이질감 없는 가상화면, ▲화상회의·영상편집 등 다양한 회사 업무 지원 등 비전프로의 주요 기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비싼 제품가격은 단점으로 꼽힙니다. 비전프로의 예상 가격은 3499달러(약 453만원)로 메타의 퀘스트3보다 5배가량 비쌉니다. 비전프로가 일반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고 있는지 의문이 들 만한 가격대입니다.

비전프로의 애매한 ‘비전’도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애플이 비전프로의 콘셉트로 내세운 ‘공간컴퓨터’가 무엇인지 불명확하기 때문이죠. ‘비전프로가 MR 산업의 대중화를 이끌기엔 가격대가 너무 높고 정체성도 흐릿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같은 우려를 뒤집고 애플의 비전프로는 MR헤드셋의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요? 처음에 ‘콩나물 같다’는 혹평을 받았던 에어팟처럼 말이죠. 지켜볼 일입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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