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PF 위기, 노동자로 번지나
임금체불 공개기업 중
건설업 비중 30% 넘어
하도급 업체 대금 지연에 피해
악화 가능성 높은 건설 경기
임금체불 위기 더 커질까

2023년 임금체불기업으로 공개된 기업 3곳 중 1곳은 건설업종이었다.[사진=뉴시스]
2023년 임금체불기업으로 공개된 기업 3곳 중 1곳은 건설업종이었다.[사진=뉴시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던 지난해 12월. 건설업의 밑단이 흔들리자 건설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끌어안았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벌써 하도급 업체들이 대금을 정산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는 건설노동자의 임금체불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문제는 건설경기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도 공사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17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청년주택 건설 현장에는 노동자들이 오지 않았다. 11일까지 받기로 했던 임금이 결국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11월 임금이었다. 지난해 12월, 1월 초까지 일했던 건 포함도 안 됐다. [※참고: 태영건설은 1월 25일 상봉동 청년주택 현장 등에 밀린 노무비 53억원을 1차 지급했고 31일에 277억원을 2차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상봉동 청년주택은 태영건설이 시공하는 현장이다. 빌린 돈을 갚을 여력이 없다고 선언한 태영건설은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지난 12일 채권단은 워크아웃에 동의했다. 태영건설은 천천히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겼지만 임금이 체불된 노동자에게 그런 기회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신용카드 대금 상환일이 돌아오고, 내야 할 공과금도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회사가 주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고용노동부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태영건설이 시공하는 105개 현장에서 임금체불 여부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기성금(공사 진척에 따라 지급되는 공사비) 집행 여부도 확인해 협력업체에 제때 공사금을 줬는지도 확인한다. 그러면서 이번 임금체불 조사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고용노동부가 이렇게 대대적인 임금체불 조사를 시작하는 건 임금체불의 위험이 그만큼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건설업은 특히 그렇다.

고용노동부가 매년 8월 조사해 발표하는 임금체불 고용주 목록을 보자. ▲임금체불 2회, ▲체불액 규모가 3000만원 이상인 기업은 3년간 명단을 공개하는데, 그중 건설업 비중은 2021년 28.9%, 2022년 33.2%, 2023년 36.3%로 커졌다.

[※참고: 임금체불 고용주 목록엔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아야 올라간다. 그래서 임금체불 기업 명단이 공개되는 시점은 임금을 체불한 기간과는 무관하다. 유죄를 선고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건설업계의 임금체불금액도 큰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건설업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2021년 313만9316원에서 2022년 326만7000원으로 3.7% 늘어났다. 같은 기간 임금체불액은 11.8%(2615억원→2925억원) 증가했다.

이 결과는 건설업 경기와도 긴밀하게 엮인다. 2021년 12월 건설업종합실적지수(100 이상일 경우 긍정적)는 92.5포인트였다. 2022년에는 72.1포인트로 20.4포인트 하락했다. 문제는 2024년 건설 경기도 불안하다는 데 있다. 2022년의 불안이 단순한 분양 실적 악화 수준이었다면 이번 위기는 기업 자체의 존립이 흔들리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태영건설 현장에선 임금체불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생겼다. 지난 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태영건설 현장에서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의 현황을 공개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공식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비수도권에 있는 건설 현장에서 태영건설 워크아웃 이후 노조 조합원이 임금체불을 당했다고 신고하는 경우가 계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들만 그렇게 보고 있는 건 아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1월 24일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에 따른 하도급 업체의 피해사례 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특히 태영건설과 하도급 계약을 맺은 업체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자 862개 현장 중 104개 현장이 답변했고, 그중 92개 현장에서 대금 지급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 현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건설 현장에 찬바람이 불면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응답한 현장 중 13.5%인 14개 현장에선 대금이 미지급됐다. 절반에 가까운(48.1%) 현장에선 대금 지급기일이 60일에서 90일로 한달 넘게 밀렸다. 현금으로 주던 대금을 어음이나 외담대로 바꿔 지급한 현장은 12곳(11.5%), 발주처 직불로 대금 지급 방식이 변한 현장은 2곳(1.9%), 어음할인 불가 등 기타 피해를 당한 현장은 14곳(13.5%)이었다. 대금 지급과 관련해 아무런 피해도 당하지 않은 현장은 12곳으로 비중은 11.5%에 불과했다. 

대금 지급 문제와 임금체불은 긴밀히 엮여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 임금체불 문제가 더 심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기업만큼 노동자에게도 지금은 ‘혹독한 시절’임에 분명하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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