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3대 생활규제 폐지 세가지 질문➌
도서정가제 논란 속 고질병
도서정가제 손 보기로 한 정부
몸통 놔둔채 곁가지 쳤단 비판
정가제 대상서 웹 콘텐츠 제외
종이책 판매량에는 악영향
오프라인 서점 실적 부담 커져
영세서점 할인율 유연화도 문제
도서공급시스템 모순 해소해야

21년 만에 도서정가제에 큰 변화가 나타날 조짐입니다. 정부는 도서정가제의 적용 범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웹툰ㆍ웹소설 등 웹 콘텐츠를 제외하겠다는 겁니다. 영세서점들은 도서정가제를 유연하게 적용해 더 많은 할인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출판업계에 내재된 고질병을 고칠 수 있을까요?

정부는 웹 콘텐츠와 영세서점을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웹 콘텐츠와 영세서점을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했다.[사진=뉴시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의 최대 이슈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찬반 논쟁도 격합니다. 2022년 대선 당시엔 거대 양당 후보가 ‘도서정가제 축소(윤석열)’와 ‘강화(이재명)’란 엇갈린 정책을 내놓기도 했죠. 

도서정가제는 책 할인을 15%(가격 할인 10%+마일리지 5%)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제한 법입니다. 큰 폭의 할인율을 적용할 여력이 없는 작은 서점과 출판사를 위한다는 게 이 법의 취지입니다. 하지만 할인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없다는 건 정작 소비자에겐 좋지 않은 정책입니다.

그래서 국회는 도서정가제를 ‘3년 단위 일몰법’으로 제정했습니다. 2003년 도입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도서정가제는 언급했듯 ‘찬반 논쟁’이 툭하면 벌어졌습니다. 도서정가제를 웹소설ㆍ웹툰 등 웹 콘텐츠에도 적용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진 2019년엔 갈등이 폭발할 지경까지 이르렀죠. 그럼에도 정부는 번번이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예민한 이슈였던 겁니다. 

그러던 지난 22일 윤석열 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 생활 규제 개혁’에서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도서정가제의 개선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웹툰ㆍ웹소설 등 웹 콘텐츠는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하고 영세서점에만 ‘할인 유연화’ 정책을 넣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웹 콘텐츠에 도서정가제는 적용하지 않는다. 영세서점의 경우엔 더 많은 할인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도서정가제를 두고 갑론을박만 벌여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발표는 큰 변화입니다. 

그렇다면 이 개선책은 출판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일단 도서정가제의 시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도서정가제의 근간은 1999년 7월 서점조합연합회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 발의한 ‘저작물의 정가유지에 관한 법률안’입니다.

당시 IMF로 경제가 침체하자 대형서점들은 출판물의 가격을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동시에 지역서점들은 ‘값싼 가격’으로 무장한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죠. 

이 때문에 작은 서점들이 위기에 몰리자, ‘정가유지’를 앞세운 법률을 발의했던 건데, 이 안案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그 이후에도 한차례 더 무산됐던 ‘도서정가제’는 2002년 법제화했습니다. 영세서점이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법안 통과를 이끌었습니다. 처음엔 18개월 이내 신간에만 할인 금지를 도입했지만 12년 후인 2014년엔 구간舊刊도서(이전에 나온 책)에도 적용했습니다. 

도서정가제 찬성론자들은 이 제도가 책의 생태계를 지킨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출판문화진흥원에 따르면, 신간 종이책에 부여된 국제표준 자료번호(ISBN)의 건수는 2013년 11만6770건에서 2018년 15만2130건으로 30.3% 늘었습니다.

ISBN 발행 실적이 있는 출판사 수는 2012년 6222개에서 2018년 8058개로 증가했죠. 구간도서에도 정가제를 도입한 후 더 다양한 책과 출판사가 늘었다는 겁니다. 찬성론자들은 이를 도서정가제의 긍정적 효과라고 주장합니다.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측은 다른 통계를 제시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 96.8%, 72.2%였던 학생ㆍ성인 독서율은 2021년 각각 87.4%, 40.7%로 줄어들었습니다. 2022년 서점조합연합회는 도서정가제 이후에 "서점이 단 한개도 없는 지역이 총 5곳 생겼고, 서점이 멸종하는 지역도 42곳에 달할 것”이란 통계도 발표했습니다. 

양측의 의견이 이렇게 팽팽한 상황에서 2019년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습니다. 출판계 대표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웹소설 전자출판물 정가표시 의무화 안내’란 공문을 웹소설ㆍ웹툰 업체에 전달했습니다. 이 공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포털과 웹소설 업체에서 판매하는 전자출판물(웹툰 포함)에는 반드시 매 편에 ISBN과 함께 정가표기를 해야 한다.” 

웹소설ㆍ웹툰으로선 ‘무서운 경고장’이었습니다. 이것은 웹소설을 출판물에 포함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특히, 특정 시간을 기다리면 무료 회차를 얻을 수 있는 ‘기다리면 무료’란 마케팅으로 성장해온 한국 웹툰업계로선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죠. 웹소설이 출판물이 되면 도서정가제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기다리면 무료’ 자체가 불법이 됩니다.

이 문제는 헌법재판소로 번졌습니다. 2020년 웹소설 작가 A씨는 “도서정가제는 위헌”이란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만인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판시하면서 도서정가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 질서의 혼란을 방지함으로써 저자와 출판사를 안정적으로 보호ㆍ육성하고, 다양한 서점 또는 플랫폼을 유지ㆍ장려해 소비자의 도서접근권을 확대한다.”

도서정가제의 효과를 두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도서정가제의 효과를 두고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자! 다시 윤 정부가 발표한 ‘도서정가제 개선안’을 살펴볼까요? 뼈대는 ▲도서정가제에서 웹툰ㆍ웹소설 등 웹 콘텐츠 제외 ▲영세서점의 도서 가격 할인 한도(15%) 유연화 두개입니다. 

일단 도서정가제에서 웹툰ㆍ웹소설 등 웹 콘텐츠가 빠졌지만, 논란은 더 확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이출판물에는 도서정가제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콘텐츠를 더 저렴한 ‘전자책’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종이책의 판매량은 자연스럽게 감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오프라인 서점의 쇠퇴로 이어질 겁니다. 웹 콘텐츠는 도서정가제 밖에 두면서 전자책의 범위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은 건 명백한 실수로 보입니다. 

그럼 더 많은 할인을 할 수 있는 영세서점은 어떨까요? 이 부분도 좀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실 영세서점이 어려움을 겪는 근본적인 이유는 비틀어진 도서공급시스템입니다.

대형서점은 정가의 60~70%로 책을 공급받지만 영세서점은 이보다 비싼 값에 책을 받는다는 게 문제란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세서점에 ‘할인유연화’ 정책을 적용하더라도 출판사로부터 책을 비싸게 받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효과는 거의 없을 겁니다. 

공병훈 협성대(미디어영상광고학) 교수는 “출판계의 문제는 도서정가제 하나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며 “근본적으로 도서정가제라는 제도 자체를 다시 점검해볼 시기”라고 제언했습니다.

도서정가제 개선은 소비자로서는 분명 반길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출판계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한 결정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그만큼 후속대책이 중요하단 겁니다. 윤 정부는 과연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을까요?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