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댓글에 답하다
새 실업급여 기준과 함정 2편
단시간 노동자에 다중취업자라면…
완전한 실업자여야 수급 대상이고
실직 순서 맘대로 정할 수 없기에
실업급여 반복 수급할 유인 없어
하한선 규정은 오류 방지책일수도
고용노동부 고용보험 취지 살펴야 

고용노동부의 실업급여 산정 기준 변경은 현실이라는 변수를 간과한 결정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고용노동부의 실업급여 산정 기준 변경은 현실이라는 변수를 간과한 결정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우리는 ‘댓글에 답하다 : 새 실업급여 기준과 함정’ 1편에서 고용노동부의 실업급여 산정 기준 변경(소정근로시간 하한선 삭제)이 “현실이라는 변수를 간과한 결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계를 위해 초단시간 일자리를 선택한 노동자 중에는 다중취업자가 적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 그럼 고용노동부의 실업급여 산정 기준 변경은 단시간 다중취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 얘길 본격적으로 해보겠습니다. ‘댓글에 답하다 : 새 실업급여 기준과 함정’ 2편입니다. 

‘댓글에 답하다 : 새 실업급여 기준과 함정’ 1편에서 세워둔 가정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겠습니다(표 참조). 여러분은 주5일 기준, 1일 3시간짜리 일자리 A와 1일 2시간짜리 일자리 B를 가진 ‘단시간 노동자’이자 ‘다중취업자’입니다.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A사업장에서 62만6984원을, B사업장에서는 41만7989원을 월급으로 받습니다. 총 104만4973원입니다.

여기서 단시간 노동자는 1개월간 소정所定(정해진) 근로시간이 60시간 미만이거나 1주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노동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했습니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실업급여를 받는 상황을 만들어봐야 할 텐데, 그에 앞서 살펴볼 게 있습니다.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 필요한 세가지 규칙입니다. 이 규칙은 실업급여 액수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표
참조). 

■ 규칙
고용보험 가입 = 우선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들 겁니다. 여러분은 다중취업자인데, A사업장과 B사업장 중 어떤 곳에서 고용보험을 가입해야 하느냐는 거죠. 동시 취업 시 보통은 월급이 더 많은 곳, 근로시간이 더 긴 곳으로 정합니다. 그게 노동자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경우엔 A사업장으로 가입하는 게 맞겠죠.[※참고: 고용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위 가정과 같은 단시간 노동자는 원래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3개월 이상 일하는 경우엔 예외’여서 가입할 수 있습니다.]

■ 규칙 실업자와 사업장 = 둘째는 완전히 ‘실업자’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A와 B 중 하나의 일자리만 잃는다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고, 두 일자리를 모두 잃어야만 한다는 얘기죠. 

셋째는 가장 마지막까지 근무한 사업장의 근로시간과 급여를 토대로 실업급여를 산정한다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이는 앞서 언급한 첫번째 규칙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월급이 높은 A사업장에서 고용보험을 가입했는데, 마지막 근무지가 B사업장이라면 결국 B사업장에서의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실업급여를 받을 테니까요. 맹점은 또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자리를 나중에 잃을지 결정할 수 없다는 거죠. 

이런 규칙들을 염두에 두고, 실업자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A사업장과 B사업장 중 어디서 먼저 실직할지 알 수 없으니 나눠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실업급여 산정 기준을 바꾸기 전이라면 ‘근로시간 3시간 이하’는 언제나 ‘4시간’으로 인정해주니까 상관없겠지만, 이젠 2시간이나 3시간에 따라 실업급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표
참조). 

■ 시나리오
A사업장 먼저 실직 = 근로시간이 3시간인 A사업장부터 실직할 경우를 보겠습니다. 실업급여 규칙에 따라 여러분의 고용보험은 B사업장보다 근로시간이 길고 급여도 더 많은 A사업장에 가입돼 있을 겁니다.

A사업장을 잃은 다음 또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B사업장으로 고용보험을 옮겨야 합니다.[※참고: 그럼 A사업장에서 여러분이 낸 고용보험료는 어떻게 될까요? 근로복지공단에 환급 신청을 해서 직접 받아야 합니다. 환급률은 총 보험료의 80%입니다.]

이후 B사업장까지 잃으면 여러분은 완전한 실업자가 되고, B사업장의 근로시간(2시간)을 기준으로 46만1760원의 실업급여를 받습니다(표
참조). 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인정해줬을 때(92만3520원)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실업급여가 줄어 단시간 노동자의 삶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그냥 나온 게 아닌 셈입니다. 
이게 정말 공정하고 합리적일까요? 당초 고용노동부는 ‘실제 근로시간’을 반영하겠다면서 실업급여 산정 기준을 개정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실제 근로시간은 A사업장(3시간)과 B사업장(2시간)을 합친 5시간입니다. 그나마 이전엔 4시간만이라도 인정을 받았지만, 이제는 2시간밖에 인정받지 못합니다. 

단시간 일자리 다중취업자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여가를 즐길 겨를이 없다.[사진=뉴시스]
단시간 일자리 다중취업자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여가를 즐길 겨를이 없다.[사진=뉴시스]

■ 시나리오 B사업장 먼저 실직 = 근로시간이 2시간인 B사업장을 먼저 잃고, 나중에 A사업장을 잃는다면 어떨까요? 마찬가지로 종전 기준대로라면 4시간을 적용해 92만3520원을 받지만, 바뀐 기준대로라면 69만2640원의 실업급여를 받을 겁니다(표 참조).

상황은 A사업장을 먼저 잃을 때보다는 조금 낫지만, 근로시간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다를 바 없습니다. 이는 최종 근무지에 따라 실업급여를 산정하는 기준이 단시간 다중취업자에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오류입니다. 어찌 보면 근로시간을 4시간으로 인정해주던 기존의 실업급여 하한선 규정은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장치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단순히 근로시간이 2시간인 단시간 노동자의 실업급여 액수에만 집착해 불합리하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시간 다중취업자는 고려하진 않았습니다. “전엔 2시간만 일해도 생활이 어렵지 않다가, 실업급여의 액수가 적어지니까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진다고 하소연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댓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시나리오
실업급여 반복 수급의 실체 = 물론 ‘일부 단시간 노동자가 취업과 퇴직을 습관적으로 반복해 월급보다 높은 실업급여를 타 먹는다’는 지적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살펴본 것처럼 단시간 다중취업자가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두 일자리를 모두 잃어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데다, 실업급여도 총소득보다 적어서 굳이 실업자를 선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취업과 퇴직을 반복하는’ 꼼수는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꼼수를 막겠다면서 취약계층인 단시간 다중취업자의 삶의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든 건 괜찮은 정책일까요? 꼼수를 막기 위한 다른 방법은 없었던 걸까요?

이런 맥락에서 고용노동부는 실업급여의 목적을 되새겨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용보험법은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의 예방, 고용의 촉진 및 근로자 등의 직업능력의 개발과 향상을 꾀하고, 국가의 직업지도와 직업소개 기능을 강화하며, 근로자 등이 실업한 경우에 생활에 필요한 급여를 실시해 근로자 등의 생활안정과 구직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경제ㆍ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용보험법 제1조).”

법 조항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단시간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보면 지금보다 보호장치가 더 늘어나야 마땅합니다. 
그들에겐 주휴수당도, 연차도, 유급휴가도, 퇴직금도 없습니다. 사실 실업급여가 기존 월급보다 많은 건 단시간 노동자만이 아닙니다. 1일 8시간 일하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경우에도 실업급여가 월급보다 더 많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저소득층의 생활 안정과 구직 활동을 보호해주겠다는 거죠. 이는 3시간 이하 단시간 노동자를 위한 기초일액 산정규정 하한선이 불합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왜 단시간 노동자의 실업급여를 문제 삼고 나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내용이 복잡해서 그 속내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다만 밑단이 무너지면 윗단도 흔들립니다. 노동계층의 가장 밑단은 단시간 노동자입니다. 단시간 노동자가 살길을 잃으면 그 위험성이 윗단으로 전이될 게 분명합니다. 정부가 단시간 노동자의 삶을 한번 더 고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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