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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부자에 일본인 5명
한국인 삼성 이재용 1명
‘신탁’에 숨어 있는 부자들
한국의 지배구조는 어떨까

일본은 지난해 디플레이션 탈출에 성공했다. 환율 문제로 독일에 국내총생산(GDP) 3위 자리를 내줬지만, 닛케이지수는 거품경제 시절 역대 최고치에 임박했다. 그런데 1월 30일 기준 세계 500대 부자 순위에서 일본인은 자수성가한 창업자 5명에 불과하다. 일본 기업 지배구조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공교롭게도 이 문제는 한국의 지배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지난해 도쿄오토살롱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지난해 도쿄오토살롱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 경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30일 오후 1시 현재 3만6107로 1개월 만에 8.49%나 상승했다. 닛케이지수는 거품경제 시절인 1989년 12월 29일 역대 최고치인 3만8915포인트에 한발짝 더 다가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디플레 탈출에 성공했다. 2019년 이후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최저임금을 매년 3%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기업들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는 방식을 썼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서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지불한 산업 보조금은 2조엔(약 18조원)이고, 앞으로 11조엔(약 100조원)을 더 집행할 예정이다. 

그런데 블룸버그가 매일 갱신하는 세계 500대 부자 순위에서 일본인은 5명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GDP) 규모와 비교해 눈에 띄게 적다. GDP 순위 13위 국가 중에서 일본보다 500대 부자 수가 적은 나라는 한국(1명)이 유일했다. 

■ 창업자 나라의 행간=블룸버그 세계 500대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린 일본인은 5명이다. 모두 자수성가한 창업자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이다. 투자은행 UBS 연례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은 상속 부자가 조사 이래 처음으로 자수성가 부자를 넘어선 해다.

UBS는 지난해 11월 “설문에 응한 억만장자들 중에서 상속 부자 53명의 자산이 1508억 달러로 자수성가 부자 84명의 자산 1407억 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상속 부자 비율도 여러 조사에서 50~75%에 달한다. 

먼저 세계 13대 경제대국의 부자 순위를 살펴보자. 500대 부자 중에서 GDP 1위인 미국 부자는 192명으로 가장 많았다. GDP 2위인 중국은 49명, 3위로 올라선 독일은 19명, 5위 인도 23명, 6위 영국 16명, 7위 프랑스 13명, 8위 러시아 26명, 9위 캐나다 15명, 10위 이탈리아 6명, 11위 브라질 10명, 12위 호주 9명, 13위 한국 1명이었다. 

세계 500대 부자 중에서 유일한 한국인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으로 262위였다. 이재용 회장 자산은 지난 1년간 8억3400만 달러 줄어 90억5000만 달러였다. 

미쓰비시 자동차의 도쿄 본사. [사진=뉴시스]
미쓰비시 자동차의 도쿄 본사. [사진=뉴시스]
[자료 | 각사 공시]
[자료 | 각사 공시]

블룸버그 부자 순위에 따르면 일본에서 가장 자산이 많은 부자는 세계 34위를 차지한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 리테일링 창업자다. 야나이 회장은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와 GU로 자산 402억 달러를 축적했다. 64위는 전자 센서 회사 키엔스를 창업한 다키자키 다케미쓰 명예회장이다.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손정의 회장(한국계 일본인 손 마사요시)이 192위, 기저귀 생산업체 유니참 창업자인 다카하라 게이치로 회장이 380위다. 440위인 시게타 야스미쓰는 소프트뱅크 이사 출신으로 휴대전화 유통회사 히카리통신을 창업했다. 

■ 재벌 해체와 계열 성립=일본의 부자는 왜 이렇게 적고, 왜 모두 창업자인 걸까. 미국이 2차대전 후 전범기업인 재벌(자이바쓰)을 해체하면서 계열(게이레쓰)이라는 기업집단이 일본 산업계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일본 재벌은 1826년 이후 왕이 국영기업을 봉건 영주와 고위 관료들에게 헐값에 매각하면서 형성됐다. 당시 4대 재벌은 미쓰비시, 스미토모, 미쓰이, 야스다였다. 2차대전 이후에는 야스다가 빠지고 후요(닛산 모체), 산와, 다이이치칸교(미즈호은행 모체)가 합류해 6대 재벌이 됐다. 

일본 기업집단이 재벌에서 계열로 바뀐 건 언급했듯 2차대전 패전 때문이다. 미군은 전후 일본의 4대 개혁 중 하나로 일본 금융계 거물인 재벌의 해체를 선정했다. 미국은 재벌들의 지주회사를 없애고, 100~200여개 독립회사로 운영되도록 했다. 

계열이란 게 등장한 건 미국이 한국전쟁을 명분으로 이들 재벌 계열 회사들을 다시 묶었기 때문이다. 계열에서 오너 일가의 지분은 대폭 축소됐지만, 지주회사 대신 은행이나 무역회사(상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의 5대 부자가 모두 창업자인 이유다. 

■ 은행과 신탁계좌의 지배=일본 기업집단의 정점은 은행이나 상사다. 계열은 수직과 수평으로 나눈다. 수평 기업집단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은행이 있다.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은 미쓰비시 계열 기업집단의 돈줄이다. MUFG 공시에 따르면, 이 은행 최대주주는 지분 15.42%를 보유한 일본마스터신탁은행의 신탁계좌이고, 2대주주는 지분 5.91%의 일본신탁은행의 신탁계좌다. 

MUFG는 계열 신탁은행을 통해서 일본마스터신탁은행의 지분 46.5%를 보유했다. 계열은 이렇게 소속 회사들이 서로 지분을 교차하고, 상속 등의 이유로 존재하는 특정 신탁계좌의 존재로 유지된다. 

수직 계열은 우리나라 재벌과 동일하게 특정 가문이 소유한다. 극히 적은 지분으로 전체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게 특징이다. 도요타가 대표적이다. 도요타는 현재 회장인 도요타 아키오 지분이 0.17%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손정의 회장(한국계 일본인 손 마사요시)은 세계 500대 부자 중 192위를 차지했다. [사진=뉴시스]
소프트뱅크를 창업한 손정의 회장(한국계 일본인 손 마사요시)은 세계 500대 부자 중 192위를 차지했다. [사진=뉴시스]

일본 매체들은 도요타 일가의 전체 지분을 2~9%로 추정하는데, 정확한 지분을 알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도요타의 최대주주는 미쓰비시 계열과 마찬가지로 일본마스터신탁은행의 특정한 신탁계좌이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3대 주주도 미쓰비시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린 일본신탁은행의 특정계좌다.

신탁계좌의 권리 관계는 알 수 없어서 추정치가 제각각이다. 신탁은 불투명성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늘 문제가 됐다. 영국에서는 2016년에도 웨스트민스터의 공작인 제럴드 그로스베너가 사망하면서 아들에게 90억 파운드 재산 대부분을 신탁으로 넘겨주고 상속세를 내지 않아 문제가 됐다. 

일본의 부자가 다른 나라보다 적다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도요타 일가만 해도 이들이 소유한 자산가치가 과연 히카리통신이나 유니참 창업자의 자산가치보다 낮을지 의문이다. 도요타 회장의 지분이 0.17%라지만, 신탁계좌의 권리관계나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계열이라는 이름의 기업집단이 신탁·재단 등 소유자의 이름을 가린 돈으로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세계 500대 부자에서 일본인 수가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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