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황금기 웹툰의 그림자➊
시장 규모 2조원 달성 코앞
해외 진출도 순조롭지만
작가 근무 환경 여전히 나빠
뾰족한 수 없는 정부와 플랫폼

웹툰 시장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웹툰 시장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 요새 웹툰을 즐겨보는 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수업 후 쉬는 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에 짬을 내 볼 수 있는 웹툰은 바쁜 하루를 보내는 이들에게 유용한 즐길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덕분에 국내 웹툰 산업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이제는 해외시장에서도 저변을 넓히고 있습니다.

# 최근 도서정가제에서 웹툰이 제외된 것도 호재입니다. 이대로 법이 개정되면 ‘기다리면 무료’란 웹툰 산업의 독특한 마케팅을 유지하는 게 가능해집니다. 이쯤 되면 웹툰으로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별칭을 이어갈 수 있을 듯합니다.

# 하지만 웹툰 산업의 어두운 그림자도 그만큼 짙어지고 있습니다. 웹툰 작가들은 줄어든 수입과 고된 집필 강도에 시달리고 있고, 웹툰을 불법으로 유통하는 불법 사이트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웹툰 플랫폼은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가 한국 웹툰 산업에 펜을 집어넣었습니다. 더스쿠프 視리즈 황금기 웹툰의 그림자 제1편입니다.

웹툰 산업이 호황기를 맞은 만큼 어두운 면도 짙어지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웹툰 산업이 호황기를 맞은 만큼 어두운 면도 짙어지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10년 전에는 자녀가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말리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학부모님이 먼저 찾아와서 ‘우리 아이가 웹툰 작가로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라면서 물어봐요. 그만큼 웹툰이 ‘되는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다는 거죠.”

인기 웹툰 ‘닥터 프로스트’를 쓴 이종범 작가가 유튜브 채널 ‘머니그라피’의 최근 영상에 출연해 한 말입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 웹툰 작가의 입지가 크게 좋아졌다는 얘긴데, 이는 웹툰이 그만큼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로 거듭났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웹툰의 위상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영화의 상당수가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난해 8월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OTT 서비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원작 무빙·작가 강풀)’은 론칭 직후 디즈니플러스 시청자가 40% 증가할 정도로 인기몰이에 성공했습니다. 그해 12월 국내에서 호평을 받은 티빙의 ‘이재, 곧 죽습니다(원작 이제 곧 죽습니다·작가 이원식)’도 티빙 역대 오리지널 인기 콘텐츠 중 2위를 차지했죠.

이 때문인지 웹툰의 인기는 이제 ‘종이 만화책’을 압도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간하는 ‘2023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만화·웹툰 형태별 이용 경험을 묻는 질문에 성인남녀 3500명 중 67.4%가 ‘웹툰만 본다’고 답했습니다. ‘웹툰과 출판만화를 모두 본다’는 답변이 29.7%였고, ‘출판만화만 본다’는 2.9%에 그쳤죠.

웹툰은 특히 MZ세대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900명 중 ‘10대 후반(97명)’의 87.6%가 웹툰 이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20대 초중반(255명)’과 ‘20대 후반~30대 중반(247명)’의 응답률은 각각 80.8%·74.9%에 달했죠. 이는 MZ세대가 짧은 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웹툰의 장점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인기 덕분인지 웹툰 산업 자체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웹툰 산업의 매출은 2021년 1조5660억원에서 2022년 1조8290억원으로 16.7% 늘어났습니다. 실태 조사를 시작한 2018년 이후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2023년 시장 규모는 2조원을 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 웹툰은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어메이징 페스티벌’에 참가한 네이버 웹툰.[사진=네이버 웹툰 제공]
한국 웹툰은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어메이징 페스티벌’에 참가한 네이버 웹툰.[사진=네이버 웹툰 제공]

웹툰을 서비스하는 플랫폼들도 성장세가 가파릅니다. 이 시장의 업계 1위인 네이버의 ‘네이버 웹툰’은 지난해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2685억원) 대비 41.4% 증가한 379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적자는 445억원에서 175억원으로 270억원 줄었죠. 업계에선 올해 안에 네이버 웹툰이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여세를 몰아 웹툰 플랫폼들은 해외 시장에서도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 데이터에이아이에 따르면, 2022년 미국 웹툰 플랫폼 시장에서 네이버웹툰의 시장점유율은 70.5%를 차지했습니다.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픽코마가 운영하는 ‘픽코마’는 만화 강국인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월 누적 매출 22억5000만 달러(약 2조9688억원)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죠.

최근 정부의 정책 변경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지난 1월 22일 윤석열 정부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 생활 규제 개혁’에서 ‘도서정가제’의 개선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도서정가제는 책의 할인폭을 15%(가격할인 10%+마일리지 5%) 내에서만 가능하도록 규제한 법인데, 정부는 웹툰·웹소설 등 웹 콘텐츠를 도서정가제에서 제외할 예정입니다.

이는 웹툰 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현재 웹툰 산업에서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은 일정 시간 기다리면 웹툰을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입니다.

무료 회차로 유입된 소비자들이 웹툰에 매력을 느껴 유료 회차를 결제하도록 하는 게 이 서비스의 골자입니다만, 웹툰이 2019년 도서정가제에 편입되면서 ‘불법 마케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웹툰이 도서정가제에서 제외되면 이같은 잡음은 자연히 사라지고, 웹툰 플랫폼들도 관련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이처럼 웹툰 산업을 둘러싼 생태계는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하지만 이게 오로지 ‘장밋빛 미래’만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웹툰 앞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게 웹툰 작가의 처우 개선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내내 연재한 웹툰 작가의 연평균 수입은 8840만원으로, 전년(1억870만원) 대비 2030만원 줄었습니다. 1년 이내 연재한 경험이 있는 작가의 수입도 같은 기간 8573만원에서 6476만원으로 2097만원 감소했습니다. 웹툰 산업이 호황기를 맞은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드라마로 제작된 웹툰 ‘무빙’은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로 흥행돌풍을 일으켰다.[사진=디즈니플러스 제공]
드라마로 제작된 웹툰 ‘무빙’은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로 흥행돌풍을 일으켰다.[사진=디즈니플러스 제공]

왜일까요? 업계 관계자들은 작가들의 수입이 줄어든 이유로 에이전시·스튜디오 등 콘텐츠 제공자(Content Provider·CP)의 대거 등장을 꼽습니다. 웹툰 플랫폼들이 성장하면서 웹툰의 꾸준한 공급이 중요해지자 이들 CP사가 새로운 유통책으로 떠오른 겁니다.

CP사가 작가풀을 만들어 웹툰 플랫폼에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한 건데, 그 결과 웹툰의 유통 구조가 ‘작가-플랫폼 직계약’에서 ‘작가-CP-플랫폼’으로 바뀌었습니다. CP사가 중간에서 수수료를 떼가니 웹툰 작가들의 수입도 그만큼 줄어들었던 겁니다.

그렇다고 웹툰 작가의 근무 환경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2023년 1월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의 일평균 근무 시간은 9.9시간으로 조사됐습니다.

2021년 조사 결과(일평균 10.5시간)보단 소폭 줄었지만 문제는 여전히 숱합니다. 근로기준법으로 정한 1일 근무 시간(잔업·연장근로 제외)이 하루 8시간임을 생각하면 웹툰 작가의 노동 강도가 여전히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웹툰 작가의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꽤 오래전에 나왔는데도 업계에선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2년 12월 “작가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취지로 계약서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웹툰의 최소 컷 수를 60컷에서 50컷으로 낮추고, 휴재권을 2번 보장하는 게 개정안의 골자입니다.

네이버 웹툰은 지난해 4월 ‘작가와의 상생’을 강조하며 작가의 업무 강도를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AI) 채색 서비스인 ‘AI 페인터’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AI가 작가의 단순 노동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취지에서 만들어졌죠.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이들 웹툰 플랫폼의 대안을 두고 “큰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독자들이 더 많은 컷수, 더 뛰어난 퀄리티의 작품을 원해서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료 | 문화체육관광부, 사진 | 연합뉴스]
[자료 | 문화체육관광부, 사진 | 연합뉴스]

이는 웹툰에 있는 독자들의 댓글만 읽어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컷수가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댓글란엔 ‘이번 화는 컷이 왜 이렇게 적냐’ ‘작가가 초심을 잃었다’는 댓글이 달립니다. 웹툰 플랫폼이 최소 컷수를 줄여줘도 작가 입장에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대부분의 인기 웹툰 작가가 채색 담당을 따로 둘 정도로 채색은 웹툰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그런 작가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AI에 채색을 맡긴 작품은 아직까진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웹툰의 밝은 미래를 방해하는 변수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잡아도 잡아도 잡초처럼 생겨나는 불법 사이트는 웹툰 산업이 당면한 또다른 악재입니다. 불법으로 웹툰을 유포하는 이들 사이트 탓에 한 해에만 수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하지만 정부에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웹툰 산업이 커질수록 이 그림자도 더 짙어질 게 뻔한데,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요. 이 이야기는 황금기 웹툰의 그림자 2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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