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올해부터 건보 재정 적자 시작
국민 부담 늘리자는 주장 솔솔
재정 지원 비율은 안 지킨 정부
보험료 인상보다 정부 역할 우선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위태롭다. 그러자 ‘보험료율을 올리자’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온다. 국민 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정부가 한발 뺀 채 국민에게만 부담을 요구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행법상 정부는 국고에서 일정 비율의 금액을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을 위해 써야 하는데, 이를 지킨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너무나 복잡해서 우리가 잘 몰랐던 ‘건보의 비밀’을 파헤쳐봤다.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올해부터 계속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올해부터 계속 적자를 낼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국민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6년부터 적자로 돌아선다. 그해 재정수지는 3072억원 적자를 기록한다. 이후 적자폭은 매년 늘어 2028년이면 1조5836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다.” 지난 4일 보건복지부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년)’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조만간 국민건강보험(이하 건보) 재정이 크게 악화할 거라는 얘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구 고령화와 함께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꾸준히 강화되고 있어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에 따르면, 2012년 11.0%였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2년 17.0%로 6%포인트 뛰었다.

같은 기간 건보 재정으로 감당하는 전체 진료비는 47조8312억원에서 102조4277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고, 이 가운데 노인 진료비는 16조3401억원에서 44조1187억원으로 2.7배가 됐다. 

그러자 건보 재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건보 혜택을 줄이고,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정부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년)’에서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모두 건강보험 혜택을 공평하게 누리면서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것도 그래서다.

단적인 예로 정부 방안에는 의료서비스 이용이 적은 건보 가입자에게는 전년도에 납부한 건보료의 10%(연간 최대 12만원)를 바우처로 지원하겠다고 하면서도, 의료 이용이 많거나 필요도가 낮다고 판단되는 의료 행위에는 본인부담률을 높이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에 따라 병원에 자주 가면 보험료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혜를 많이 보는 이들에게는 보험료를 더 물리겠다는 거나 다름없어서다.

[※참고: 물론 정부가 오로지 건보 재정건전화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정부는 ▲적정 의료서비스 공급과 생명·건강 유지 분야 보상 강화, ▲의료격차 축소와 의료서비스 지원체계 개선, ▲의료남용 차단과 부담 가능한 범위 내로 보험재정 효율적 관리, ▲필수의약품 등 안정적 공급과 의료 혁신 통한 선순환 구조 마련 등 네가지 방향성을 잡고 시스템을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이런 조치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점이 있다. ‘지속 가능한 건보 재정 확보’를 제시하면서 정작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만 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에는 정부가 건보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단에 일정 금액만큼 국고를 지원하도록 돼 있는데,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어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우선 두개의 법률을 보자. 하나는 국민건강보험법(제108조의2)이다. “국가는 매년 예산의 범위(일반회계)에서 당해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14(14%)’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공단에 지원한다.”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건강보험 재정 국고 지원 비율을 지키지 않았다.[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건강보험 재정 국고 지원 비율을 지키지 않았다.[사진=뉴시스]

다른 하나는 국민건강증진법(부칙 제6619호)이다. “보건복지부장관은 … 2027년 12월 31일까지 매년 기금에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당해 연도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100분의 6(6%)에 상당하는 금액을 … 공단에 지원한다.” 쉽게 말해 정부가 공단에 ‘매년 당해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일반회계에서 14%,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국고로 지원하라’는 거다.

이런 조항이 있는 이유 역시 명확하다. 건보 가입자의 급여비용과 취약계층의 보험료 경감 등을 지원해 건보 재정의 안정을 도모하고, 전 국민의 의료이용을 보장하기 위함이다.[※참고: 일반회계 국고 지원은 보건복지부의 ‘건보 가입자 지원’ 사업으로 수행하고 있다. 국민건강증진기금 국고 지원은 2006년에 5년 한시조항으로 신설했고, 지난해 6월 5년 연장해 2027년까지 지원하도록 했다.]

문제는 정부가 현행법에서 정해놓은 건보 재정 국고 지원 비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느 당이 정권을 잡느냐와 관계없이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가령,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건보 재정 국고 지원 비율은 최저 13.6%, 최고 14.8%였다. 연평균 13.8%에 불과했다. 법정 지원비율 20%(14%+6%)를 크게 밑돈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건보 재정 국고 지원 비율은 14.4%였고, 국회에서 의결된 올해 보건복지부 예산(수정)안을 기준으로 한 비율도 동일하다.

종합하면, 건보 재정을 위한 국고 지원 비율이 지금껏 15% 이상이었던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일반회계의 국고 지원 비율은 최소 9.7%(2018년), 최대 12.2%(2024년)였다. 같은 기간 기금의 국고 지원 비율은 최소 2.2%(2024년), 최대 3.8%(2017년)였다. 

정부가 공단에 매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6~7%포인트만큼 국고를 부족하게 지원하고 있다는 건데, 이는 정부가 건보 재정 적자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이 문제를 두고 “국민건강보험법의 ‘예산의 범위 안’이란 문구가 있기 때문에 국고 지원 비율을 충족하지 않는 게 문제가 될 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정부의 입장을 십분 받아들이더라도 국고 지원 비율이 왜 법적 기준을 밑도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과소 추계다. 일반회계에서 예산상 국고 지원율보다 실제 지원율은 더 낮게 나타난다. 이를 통해 과소 추계를 유추할 수 있는데, 그러면 추계에 따라 법정 국고 지원 비율을 맞추더라도 실질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년)’을 발표했다.[사진=뉴시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년)’을 발표했다.[사진=뉴시스]

다른 하나는 실현 불가능한 법조항 때문이다. 국민건강증진법(6% 지원)의 경우 “국고 지원금액은 당해 연도 담배부담금 예상 수입액의 100분의 65를 초과할 수 없다”는 단서조항이 있는데, 매년 담배부담금 예상 수입액 65%는 ‘건보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6%’보다 낮다. 더구나 이 부담금은 매년 더 줄고 있다. 법을 지켜도 도저히 법정 국고 지원 비율을 맞출 수가 없다는 거다. 

이처럼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건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이유로 국민의 부담부터 늘리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년)’에서 “2025년부터 보험료 수입 대비 14.4%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여전히 법적 국고 지원 비율을 훨씬 못 미치는 지원을 하겠다는 거다. 답답할 노릇이다.


정부 정책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법률에 명시된 법정 국고 지원 비율부터 맞춰야 한다. 정치권(국회) 역시 정부가 법정 비율을 지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법적 기초부터 다시 잡으란 얘기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onjongpil@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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