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마켓분석
AI용 반도체 미래 설계도➊
AI 황태자로 떠오른 엔비디아
MS, 애플에 이어 시총 3위로
엔비디아 경쟁력 어디서 오나
2006년 개발한 플랫폼 ‘쿠다’
덕분에 AI 개발 한결 수월해
엔비디아 생태계 탈출 힘들어

#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 많은 것이 바뀔 거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기업, 새로운 공급망 등이 판도를 흔들면 산업의 지형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재편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해 AI 열풍이 불면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 중요한 건 이런 변화 앞에서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는 점이다. 더스쿠프 마켓분석 ‘AI용 반도체 미래 설계도’를 통해 AI 시대의 앞날을 그려보자. 그 1편 엔비디아 독주의 서막이다.  

엔비디아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에 이어 시총 3위로 뛰어올랐다.[사진=연합뉴스]
엔비디아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에 이어 시총 3위로 뛰어올랐다.[사진=연합뉴스]

미국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2조 달러를 넘어섰다. 연초 480달러대에서 출발한 엔비디아의 주가는 두달여 만인 지난 1일(현지 시간) ‘시총 2조 달러’ 분기점인 810달러대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시총 1조 달러의 문턱을 넘었던 지난해 6월 이후 불과 9개월여 만이다.

사실 엔비디아의 시총이 처음 2조 달러를 넘어선 건 그보다 앞선 2월 23일(장중 823.4달러)이다. 다만, 장 마감까지 상승세를 유지하지 못했고, 이후 엔비디아의 주가는 연일 출렁이며 700달러대를 맴돌았다. 지난 7일 926.69달러로 최고가를 기록한 후에도 하락세를 그렸다. 8일 5.5% 하락한 데 이어 9일에도 2.0% 떨어졌다.

그 결과, 주가는 최고가 대비 7.4% 하락한 857.74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12일에는 다시 7.16% 상승세를 보이며 3거래일 만에 910달러(919.13달러)대를 회복했다. 주가의 출렁임에도 엔비디아는 시총 2조 달러를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다.

‘2조 달러’는 큰 숫자다. 2조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면 약 2629조원(3월 12일 기준)이다. 국내 주식시장 전체 시총 규모인 2608조원(3월 12일 기준)보다 크다. 단순하게 따져보면 한 기업의 시장 가치가 국내 증시 전체보다 큰 셈이다.

미국 증시에서도 시총 2조 달러의 고지를 밟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엔비디아 외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애플만 그 고지를 점령했다. 미국 증시를 주도해온 아마존과 구글, 메타, 테슬라조차도 ‘시총 2조 달러 클럽’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수년 전만 해도 엔비디아가 이 기업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건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엔비디아와 같은 반도체 기업의 시총이 ‘조兆 달러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도 지난 1일 기준 시총이 1853억 달러(약 243조원)에 불과하다. 파운드리 선두주자 TSMC와 세계 1위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시총은 각각 6945억 달러(약 912조원), 3899억 달러(약 512조원)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판세를 뒤집을 수 있었던 배경엔 인공지능(AI)이 있다.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가 세상에 나온 후 생성형AI 열풍이 불어닥쳤고, 먼 미래의 기술로 여겨졌던 AI는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이는 AI용 반도체를 준비해왔던 엔비디아엔 기회였다.[※참고: 생성형AI란 AI가 텍스트ㆍ이미지ㆍ영상 등 기존 데이터를 학습ㆍ분석해 능동적으로 새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말한다.]

사실 AI와 반도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AI 기술이 발전하려면 반도체 성능이 좋아져야 하고, AI 시장이 커지면 반도체 산업도 성장할 수밖에 없다. AI 기술의 기반은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ㆍ학습ㆍ추론할 수 있는 연산능력인데, 이를 구현할 수 있느냐는 반도체의 성능에 달려있어서다. 

그중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AI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필수 부품으로 꼽힌다. AI용 반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80%대에 육박할 만큼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도 절대적이다. 챗GPT가 AI 열풍을 불러온 이후 엔비디아가 고공행진을 이어온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엔비디아의 상승세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AI 시장의 성장세가 얼마나 지속할지를 따져봐야 한다. 지난해만 해도 한편에서는 “AI 열풍이 한때의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이미 AI는 글로벌 기업들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아마존(큐), 구글(제미니), 메타(라마) 등 빅테크 기업들은 앞서 생성형AI 서비스를 론칭했고, 그밖에 업종과 규모를 막론하고 많은 기업들이 AI 기술 도입을 꾀하고 있다. 

각종 리서치 결과에서도 AI 시장은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세계 생성형AI 시장 규모는 2023년 149억 달러에서 2027년 1511억 달러로 10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또다른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도 올해 세계 AI 시장 성장률을 43.5%로 예상하며, 주요 신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의 전망처럼 AI 시장이 성장을 거듭한다면 엔비디아의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음으로 따져봐야 할 건 후발주자와의 경쟁이다. 엔비디아의 뒤를 쫓는 건 AMD, 인텔 등 GPU 경쟁업체만이 아니다.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선 빅테크 기업도 적지 않다. 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AI 반도체 개발ㆍ생산을 위한 투자금으로 7조 달러를 조달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건 대표적인 예다. MS나 구글처럼 이미 자체 개발한 반도체를 공개한 곳도 있다.

그럼에도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이 당장 위축되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엔비디아가 제공하는 ‘특별한 플랫폼’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2006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위한 컴퓨팅 플랫폼 ‘쿠다(CUDA)’를 공개했다. 엔비디아의 GPU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쉽게 말해, 쿠다는 ‘개발 도우미’였다.

이를테면 복잡한 컴퓨터 언어를 번역해주거나 자주 쓰는 명령어를 꺼내 쓸 수 있도록 해주는 등 까다로운 AI 개발 과정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 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AI 시대가 열리면서 반도체 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생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당연히 쿠다에 익숙해진 개발자들은 다른 기업의 제품으로 바꾸는 걸 꺼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이 전부는 아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상 쿠다로 인해 엔비디아를 벗어나기 힘든 생태계가 구축된 셈이다. 이는 반도체 설계회사 ARM이 독자적인 설계자산(IP)을 통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 시장을 장악하거나 TSMC가 IP와 첨단 패키지 공정으로 자체 생태계를 구축한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인프라와 생태계 조성이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하다. 엔비디아가 AI용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자적인 프로그래밍 생태계를 구축해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엔비디아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2024’에서도 엔비디아는 AI 개발을 지원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서비스들을 선보였다. 이를테면 전력소모량을 낮추고 AI 추론 속도를 높이는 ‘NIM(NVIDIA Inference Microservice)’, 맞춤형 AI 개발을 돕는 ‘AI 파운드리’ 등이다.

이날 엔비디아는 차세대 GPU ‘블랙웰(Blackwell)’을 공개하며 “블랙웰은 반도체 칩이 아닌 플랫폼”이라고 밝혔는데, 사실상 반도체를 넘어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미래 AI용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위상이 꺾이긴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인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엔 기회가 없는 걸까. 이 이야기는 ‘AI용 반도체 미래 설계도’ 두번째 편에서 살펴보자. 

고준영 더스쿠프 경영전문기자
shamandn2@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