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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20년만에 가장 크게 감소
사상 첫 2년 연속 소매판매지수 ↓
무디스 “은행들 수익 감소 예상”
저신용·저소득·노령층 침체 직격탄

소비가 실종되고, 불황이 깊어지고 있다. 무디스는 최근 우리나라 개인들의 소비 여력이 없어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며 은행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벌어진 일들과 그로 인해 흔들리는 취약계층의 현주소를 자세히 알아봤다.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신용회복 관련 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신용회복 관련 상담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내 은행들은 지금 사상 최고의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은 2021년 16조9000억원, 2022년 18조5000억원이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결과였다.

유럽에서는 이런 이익을 횡재로 판단해 일회성 부과금인 횡재세를 매길 정도였다. 국내 은행들의 2023년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도 15%나 늘어난 21조3000억원이었다.

■ 무디스의 경고=글로벌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생각은 달랐다. 무디스는 지난 7일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향후 12~18개월 내 은행의 영업 환경과 자산 건전성, 수익성 약화가 예상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국내 은행들의 발목을 잡은 건 낮은 경제성장률일까, 아니면 횡재세 대신 토해내야 하는 상생협력 비용일까. 둘 다 아니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전망 하향은 침체의 결과다. 

무디스는 보고서에서 “개인 소비력이 이자 부담과 높은 생활비로 감소하면서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NIM은 금융회사가 자산을 운용해서 낸 수익에서 조달비용을 뺀 나머지를 운용자산 총액으로 나눈 수치로, 수익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 소비의 실종=경기침체는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소비를 보여주는 2023년 소매판매액지수는 물가를 반영한 불변지수 기준으로 전년 대비 1.4% 감소했다. 20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고,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줄었다. 

통계청의 연간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소매판매 증감률은 지난해 1분기 -0.4%, 2분기 -0.2%, 3분기 -2.8%, 4분기 -2.4%였다. 올해 1월에도 소매판매 증감률은 -3.4%였다. 

무디스가 지적한 대로 장기 침체가 개인의 소비력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생활비 부담은 늘어나는데, 버는 돈은 줄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머서가 지난해 전세계 주재원을 대상으로 도시별 생계비를 조사한 결과, 서울 생계비는 세계 227개 주요 도시 중에서 16번째로 비쌌다. 서울은 런던(17위), 도쿄(19위)보다 생활비가 많이 드는 도시다. 

물가를 반영한 우리나라 실질임금은 지난해에도 줄면서 2년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에 다니는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55만4000원으로 1년 전보다 1.1% 줄었다. 2022년 실질임금도 전년 대비 0.2% 줄어들었다. 

■ 침체의 심화=경기침체 장기화와 실질임금의 후퇴는 이제 은행 수익성까지 위협하고 있다. KB국민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이 공시한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3개월 이상 연체되고, 이자조차 못 받은 무수익여신이 1년 만에 30% 증가했다. 무수익여신은 가계대출에서 22%, 기업대출에서 34% 증가했다. 

‘불황형’ 흑자(수출보다 수입이 더 감소해 수출입 결과가 흑자로 나타나는 현상)도 재발했다. 지난해 말 잠시 불황형 흑자 상태서 벗어났지만, 올해 2월 다시 발생했다. 관세청은 2월 우리나라 수출이 1년 전보다 4.9% 증가한 524억 달러였지만, 수입은 1년 전보다 13.1%나 줄면서 43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 침체와 취약계층=한국은행의 ‘2월 경제전망’ 보고서는 “자산 자체가 적은 취약층, 부동산 등 비유동성자산을 보유해 현금과 같은 유동성자산이 부족한 금리상승 손해층이 한계소비성향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계소비성향은 추가 소득 중에서 저축하지 않고 소비하는 금액의 비율을 말한다. 

금리 손해층을 쉽게 말하면 부동산은 많지만, 현금이 부족한 가계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각주에서 이들을 ‘부유한 근근이 먹고사는 가계(Wealthy Hand-To-Mouth)’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들이 고금리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순 있어도, 경기침체 때문에 ‘근근이 먹고사는 가계’가 됐다고 분류하긴 힘들다. 금리 손해층은 비유동성자산을 처분할 기회가 있어서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기침체가 장기화해 필수적인 소비를 제외한 다른 것들이라도 줄여야 하는 계층을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지난해 소득이 하위 20%였던 가구가 그렇다.

이들은 경기침체로 소득이 0.7% 줄었지만, 연소득의 23.0%를 써야 하는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줄이지 못했다. 하위 20%는 대신 교육비를 13.9%, 가정용품·가사서비스를 19.7%, 교통비를 8.1%, 통신비를 10.4% 줄였다. 

금융권 빚을 갚지 못해 카드회사에서 고금리로 빚을 낸 사람, 보험 환급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람, 저신용·저소득층을 위한 안전망 정책 대출을 받은 사람, 상대적 빈곤율이 높은 66세 이상 노령층도 침체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8일 발표한 전업 카드회사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지난해 1.63%로 1년 전 1.21%보다 0.42%포인트 상승했다. 보험 해지환급금을 담보로 받은 ‘약관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71조원으로 사상 최고치였다. 

금감원이 지난 17일 양정숙 개혁신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책 서민금융 상품을 이용하지 못하는 저소득·저신용자들이 연율 20% 이상의 ‘안전망2 대출’을 받았지만 상환하지 못해 정책기관이 대신 갚아준 금액 비율은 지난해 24.5%로 1년 전 15.5%보다 11%포인트나 상승했다. 

70세 이상 취업자의 임시근로자 비율은 올해 2월 76만명으로 2020년 48만7000명에서 급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령층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 14.2%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 효과적 지원책=글로벌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지난 6일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A-’로,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피치 보고서에는 “한국은 지난 20년간 공공 부채 조정이 없었다”며 “이는 부채 상환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지난 6일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A-’로.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사진은 2023년 한국을 찾은 피치 연례협의단. [사진=뉴시스]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지난 6일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A-’로.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사진은 2023년 한국을 찾은 피치 연례협의단. [사진=뉴시스]

빚 상환 의지는 경기침체에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채무자일수록 높다. 개인 신용평가 회사 FICO(Fair Issac Corporation)는 “경기침체 장기화로 연체를 한 이들의 평균 대출 회수율은 9개월로 짧지만, 일반 연체자들의 평균 대출 회수 기간은 30개월로 길었다”며 “침체에 타격을 받은 연체자는 재정적 도덕성이 매우 높고, 연체를 걱정하며,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모든 조처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FICO는 미국 대출회사들에 “연체자들을 정확히 프로파일링하라”고 조언한다. 

그럼 정부가 경기침체 탓에 흔들리는 취약계층을 도울 수 있을까. 미국의 싱크탱크인 CBPP(예산 및 정책 우선순위 센터)는 2020년 4월 ‘대공황의 교훈’이라는 보고서에서 “불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재정 부양책”이라며 “소득을 보존해주는 실업보험, 긴급지원금, 무주택자 지원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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