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신약 성공률 분식’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신약 성공률 분식’
  • 고준영 기자
  • 호수 300
  • 승인 2018.08.10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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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 성공률 90% 소문 사실일까

미국시장에서 신약개발 성공 확률은 10%를 밑돈다. 임상시험을 통과해 신약이라는 확증을 받는 건 그만큼 가시밭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약개발 성공률은 90%라는 소문이 나돈다. 임상 승인만 받아도 제약업체의 주가가 춤을 추는 이유다. 사실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시스템은 제약업체가 보여주고 싶은 정보만 보여주는 거다. 당연히 신약개발 성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 신약개발 성공률의 비밀을 취재했다. 

제약사들이 유리한 임상 결과만 공개하기 때문에 국내 임상 성공률은 매우 높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제약사들이 유리한 임상 결과만 공개하기 때문에 국내 임상 성공률은 매우 높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9.6%. 신약후보물질이 임상1상에서부터 임상2ㆍ3상을 거쳐 의약품으로서 최종 허가를 받기까지의 확률이다. 미국바이오협회(BIO)가 2006~2015년 진행된 임상시험을 토대로 뽑아낸 결과다. 미국이 세계 제약시장의 41.1%(2017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각국의 일반적인 수준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국내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신약 개발 성공률이 10% 안팎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그것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블록버스터급 신약 하나만 터뜨리면 수조원대 매출을 우습게 올릴 수 있다곤 하지만,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게 신약 개발이라는 얘기다. “신약 개발에 성공하는 건 로또 벼락을 맞는 것에 비견될 정도”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그런데 국내 임상시험 성공률은 이런 사실을 뒤엎는다. 홍정기 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R&D진흥본부장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임상시험 성공률은 90%에 육박한다. 미국시장의 임상시험 성공률이 9.6%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전혀 딴판이다.

홍 전 본부장의 말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국가사업 중 하나인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R&D) 사업’의 성과다.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신약개발ㆍ백신ㆍ의료서비스 등 의료연구를 지원하고 있는데, 2016년 발표된 보건의료기술 R&D성공률(보건복지부ㆍ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96%에 달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제약사들이 치열하게 임상 경쟁을 벌이는 미국보다 국내의 임상 결과가 뛰어나다는 말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국내 주요 제약ㆍ바이오업체 5곳의 신약 임상시험 현황을 살펴봤다. 조사 대상은 지난해 기준 R&D 투자비용이 가장 많은 2곳(한미약품ㆍ유한양행)과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가장 큰 3곳(동아STㆍ바이로메드ㆍ제넥신)을 선정했다.[※참고 : 해당 기업들보다 더 높은 순위에 올라있는 곳들도 있지만 임상시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거나 사례가 극히 적은 경우 제외했다.]

5개 기업의 2010~2018년 1분기 약 9년여의 임상시험 실적을 살펴본 결과에 따르면 R&D 성공률은 90%에 육박하기는커녕 턱없이 모자랐다. 먼저 활발한 신약 개발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미약품은 해당 기간 총 21건(바이오신약 11건ㆍ합성신약 10건)의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중 4개 임상이 도중에 중단됐고, 16개 임상이 아직 진행 중이다. 남은 임상시험에서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다고 가정하면 성공률은 80%다. 

동아ST는 19건(바이오신약 5건ㆍ합성신약 14건)의 임상 가운데 4개의 신약을 출시했다. 반면 중단된 임상도 많았다. 중단이 확정된 것만 5건, 2년 이상 개발이 중단된 채 향후 계획을 논의 중인 임상이 2건이었다. 유한양행은 지난 9년간의 사업보고서에 총 6건(바이오신약 2건ㆍ합성신약 4건)의 임상실적을 기록했는데, 그중 4개의 소식이 도중에 끊겼다. 가장 최근까지 진행 중인 임상은 2건에 불과했다. 바이오업체 제넥신은 10건의 임상 중 1건을 중단했다. 바이로메드는 해당 기간 총 6건의 임상을 진행했지만 아직 개발에 성공한 것도, 중단한 것도 없다.

 

종합해 보면, 5개 기업은 9년간 총 62건의 임상을 진행했다. 그중 최종 허가를 받은 의약품은 4개. 확률로 따지면 6.5%다. 90%의 성공률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52건의 임상이 성공을 거둬야 하지만 중단된 임상이 14건(22.6%)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스쿠프의 조사 결과와 앞선 통계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임상시험의 통계에 허점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내에선 임상 결과가 연구 주체의 재량으로 공개된다. 쉽게 말해, 임상시험을 진행한 연구기관이나 제약사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는 공개하고, 그렇지 않은 결과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미국 제약업체들이 임상 결과를 미국 국립보건원이 운영하는 임상시험 데이터베이스(클리니컬트라이얼즈ㆍClinicalTrial.gov)에 의무적으로 등록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에선 임상시험의 승인을 받은 기록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임상 결과는 제약업체가 따로 공개하지 않는 한 찾을 수 없다. 어떤 결과를 공개하느냐에 따라 성공률도 천차만별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비밀주의의 폐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많은 제약사들이 실제론 임상을 중단했거나 실패했어도 대외에 공개하지 않거나, 계속해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것처럼 놔두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비밀주의가 ‘쩐錢의 전쟁’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일례로 한미약품이 2016~2017년 기술수출계약의 파기를 알리고 지난 4월 기대를 모았던 폐암신약 ‘올리타’의 개발 중단을 발표하자, 70만원까지 치솟았던 주식은 20만원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신라젠도 지난 19일 임상에 실패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주가가 6만2200원에서 4만6300원으로 뚝 떨어졌다. 국내 제약업체의 한 관계자가 “임상 중단 소식을 알려서 좋을 게 없는데 뭣 하러 공개를 하느냐”면서 예민한 반응을 보인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62건 가운데 14건 중단

하지만 이 역시 비밀주의가 초래한 부작용이다. 세계 유수의 제약사들이 경쟁을 벌이는 미국에서도 임상 성공률은 9.6%에 불과하다. 어찌 보면 임상에서 실패하는 건 당연한 얘기라는 거다. 임상 승인이 호재가 돼선 안 되지만 임상시험 실패가 악재여서도 안 되는 셈이다. 신약개발 과정을 베일 속으로 밀어 넣은 게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는 거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약 위주로 경영을 하던 국내 제약사들이 갑작스러운 신약붐에 이끌려 신약개발에 뛰어들다보니 절차상 부족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라면서 “이런 과도기를 성공적으로 넘기기 위해선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제약사들의 의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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