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정책 신중하지 못했다 비판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부동산 전락

여의도와 용산 일대에 묘한 적막감이 돌고 있다. 주민들의 얼굴은 침울했고, 문의가 빗발치던 공인중개소는 고요했다. 오랜 숙원이었던 재개발 사업이 손에 쥐어진 지 7주만에 모래알처럼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 더스쿠프(The SCOOP)는 여의도ㆍ용산 지역을 찾았다. 박원순 시장을 향한 기대와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한편에선 “우산 없는 사람들만 비를 맞는 것”이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날렸다.
 

여의도 아파트 단지는 재개발 예정 지역으로 손꼽혀왔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개발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로 언제 재개될지는 미지수다.[사진=연합뉴스]
여의도 아파트 단지는 재개발 예정 지역으로 손꼽혀왔다. 하지만 박원순 시장이 개발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로 언제 재개될지는 미지수다.[사진=연합뉴스]

태풍이 몰고온 먹구름이 서울 하늘을 뒤덮었다. 호우 경보가 내려진 8월 28일. 아직 오후 4시밖에 안됐지만 주변은 벌써 어둑어둑했다. 쏴악~. 버스를 타자마자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졌다. 버스에선 다음 정류장을 알리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이번 정류장은 이촌동 한강맨션, 이촌역입니다.” 

버스가 멈춰서자, 한눈에 보기에도 족히 30~40년은 그 자리를 지켰을 게 분명한 낡은 상가가 눈에 들어왔다. 비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차양 밑으로 뛰어들었다. 천천히 둘러보니 상가의 낡은 외관과 다르게 안쪽 곳곳엔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 일본식 선술집 등이 눈에 띄었다. 다른 지역 상가처럼 수많은 공인중개소가 터주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상가를 돌아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고,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단지 입구에 다다르니 정직한 글씨로 아파트 벽에 칠해놓은 ‘한강맨션’ 글자가 하나둘 드러났다. 5층 높이의 판상형 아파트가 반듯하게 줄지어 서있는 모습에서 고색창연한 느낌이 물씬 났다.

한강맨션이 입주한 건 1971년 3월. 올해로 벌써 47년이 지났다. 이제는 서울 한가운데 몇 남지 않은 5층 아파트 단지 중 한곳이다. 그만큼 재개발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실제로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한다는 소식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특히 지난 7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ㆍ용산 일대 개발 계획인 ‘여의도ㆍ용산 마스터플랜’의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기대감은 크게 부풀었다. 이번에야말로 개발사업이 본격화할 거란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박 시장은 여의도ㆍ용산 마스터플랜을 발표한 지 약 7주만인 8월 26일 마스터플랜 추진을 보류했다. 마스터플랜 발표 이후 여의도와 용산 일대 부동산 가격이 껑충 뛰며 과열 양상을 보인 게 부담이 된 셈이다.

 

마침 저녁 찬거리를 사가지고 오는 길이라는 주부 김영선(가명ㆍ53)씨를 단지 안에서 만났다. 김씨도 재개발 소식을 깨나 기다려온 듯했다. “여기서 산 지는 20년 정도 됐어요. 당연히 재개발되길 바라죠. 사실 지난해부터 이제 재개발된다는 말들이 많았어요. 허가도 떨어졌다고 하고. 그런데 갑자기 보류한다고 하니까 이전에 진행되던 재개발 사업까지 엎어진 건지, 또 얼마나 기다려야 될지 모르겠어요.”

김영선씨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랜 시간 정붙이고 산 이곳을 떠날까 하는 고민도 든다고 전했다. “집값도 올랐겠다 그냥 이 기회에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손꼽아온 재개발 기대 무너져

단지를 빠져나와 처음 들렀던 상가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노란색ㆍ초록색ㆍ파란색…. 간판 색으로 차별점을 두고 있는 많은 공인중개소 가운데 한곳에 들어갔다.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공인중개사 박인순(가명ㆍ47)씨는 “신중하지 못한 정책 때문에 집 가진 사람이든 집 없는 사람이든 모두 피해를 봤다”고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이 개발 계획을 발표한 이후에 매도가가 2억원씩 뛰었어요. 그래도 사겠다는 사람은 많았어요. 근데 개발이 보류되니까 2건이나 계약이 파기되고, 갑자기 안 사겠다고 말을 바꾸는 사람도 있었죠. 지금은 다들 눈치 보느라 매도도, 매수도 못하고 있습니다. 한번 올라간 집값은 잘 안 내려오는 데다 물건도 없으니 집 사려고 했던 사람들은 피해 입은 거죠.”

다음 날 소낙비가 한차례 내리고 햇볕이 든 오후 1시 무렵,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찾았다. IFC몰과 금융회사 등 고층빌딩이 몰려 있는 여의도 중심가에서 여의나루역 방향으로 10분여간 걷자, ‘흉물’이라는 오명을 쓴 파크원 건설현장이 보였다.

 

지난 8월 28일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 단지엔 적막감이 감돌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난 8월 28일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 단지엔 적막감이 감돌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파크원 건설현장을 끼고 들어가니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연식이 한참 돼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이 옹기종기 서 있었다. 박원순 시장이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이곳은 용산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재개발 예상 지역인 삼부아파트ㆍ대교아파트ㆍ시범아파트 등은 마스터플랜 발표 이후 매매가가 3억원가량 껑충 뛰었다.

단지 내 상가의 한 공인중개소에선 공인중개사 두 사람이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그중 식사를 막 끝마친 이명식(가명ㆍ37)씨는 “여의도는 원래 집값이 몇억원씩 뛰는 곳이 아니다”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재개발 얘기는 원래 있었어요. 그런데 유독 이번에 변동폭이 컸단 말이에요. 여기엔 여의도 주민들의 심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반포ㆍ강남 등 부동산 시장에서 주목 받는 지역에 열등감이나 상대적 박탈감 같은 걸 갖고 있어요. 그런데 박원순 시장의 플랜이 이를 자극한 겁니다. 플랜대로라면 여의도도 강남처럼 뜰 수 있겠구나 싶었고, 이게 집값을 띄운 셈이죠.”

시민 의견 모으겠다는 정책자 어디에

그러면서도 이씨는 “하지만 이제 계획이 보류됐기 때문에 그 기대가 꺾일지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버스를 타러 되돌아가던 길에 만난 30대 주부 김지희(가명ㆍ36)씨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사실 강남ㆍ송파 이런 곳은 집값이 더 많이 오르잖아요. 그럼에도 재개발은 잘만해요. 그렇다고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서울 웬만한 곳은 그만큼 집값이 높고, 양도세ㆍ부대비용 등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예요.”

마지막으로 이씨는 “집값이 오르건 떨어지건 무슨 소용이냐”면서 “그래봤자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는 팔 수도 살 수도 없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마스터플랜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추후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낮에 만난 한 공인중개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개발 계획이 보류되고 나서 기자들이 많이 찾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정책자들은 단 한번도 찾아온 적이 없어요.”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자, 빗방울이 창문에 맺히기 시작했다. ‘우산’ 없는 사람들만 비를 맞았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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