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보다 가속페달이 정확한 증거

자동차 급발진 문제가 심각하다. 대형사고로 이어져 사망자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도 끝이 아니다. 사고의 책임을 운전자가 온통 뒤집어써야 한다. 과장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선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운전자가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법ㆍ제도ㆍ시스템 등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우리나라에선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운전자가 입증해야 한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에선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운전자가 입증해야 한다.[사진=뉴시스]

1980년대 초 자동차에 전자제어장치가 탑재됐다. 그런데 우연히도 비슷한 시기에 이전엔 없던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급발진 사고였다. 운전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동차가 급격하게 돌진하는 문제였다. 당연히 급발진 문제의 원인 으로 전자제어장치가 지목을 받았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사망자를 낳았고, 운전자들 중 대다수는 평생 운전을 하지 못할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동차 결함으로 급발진 사고를 당해도 배상을 받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선 운전자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제로 전체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 중 약 80%는 운전자 실수로 간주되고 20%가량만 급발진 사고로 추정된다. 하지만 수십년간 운전자가 승소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사고 원인을 운전자가 밝혀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문제는 운전자가 급발진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통상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기록장치(EDR)를 확인하지만 에어백이 터지지 않으면 EDR로는 급발진 사고기록을 알 수 없다. EDR은 완성차 업체가 에어백이 터지는 전개과정을 보기 위해 넣은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사고 원인을 찾을 때 주로 확인하는 것 중 또다른 하나인 브레이크 기록 신호도 약점이 있다. 이 기록에서 ‘0’이 나오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는 뜻이고, ‘1’ 나오면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얘기이지만 객관성이 떨어진다. 브레이크 기록 신호는 전자제어장치로 작동하는데, 급발진의 유력한 원인 중의 하나가 전자제어장치의 오작동이기 때문이다. 

 

사실 브레이크 기록 신호에 1이 남았다거나 인근 CCTV를 통해 차량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을 확인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업체가 브레이크를 덜 밟았다든지 가속페달과 동시에 밟았다고 변명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운전자가 완성차 업체를 상대로 이길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이유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완전히 반대다. 완성차 업체가 차량에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업체가 증명을 하지 못하면 운전자들은 보상을 받는다. 우리나라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먼저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무엇보다 자동차 결함의 입증 책임을 완성차 업체에 지워야 한다. 자동차 결함을 업체가 밝혀야 하는 구조가 되면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

둘째는 문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2009년 후반부터 출고된 자동차엔 실시간으로 모든 정보가 담기는 OBD2(On Board Diagn osis2ㆍ자가진단장치)가 탑재돼 있다. 이 정보를 기록ㆍ조회할 수 있는 데이터로거장치(Data Loggerㆍ데이터이력 기록장치)만 있으면 운전자의 운전행태를 모두 볼 수 있다.

다른 정보는 제쳐두더라도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실제로 밟았는지, 얼마나 밟았는지 확인하면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앞서 언급한 EDR에 가속페달 정보를 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방법 모두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데다, 책임소재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현재는 급발진의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자동차 관련 소비자단체도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동차 급발진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이제는 소비자가 억울하게 패소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최소한의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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