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 추운 겨울

금융업계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다. 생보사는 새 회계기준 도입, 증권사는 증시 부진, 카드사는 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업계가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지점 통폐합·희망퇴직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드업계도 머지않아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금융업계에 찾아온 추운 겨울을 취재했다.  

주요 증권사의 지점 통폐합, 구조조정 이슈가 업계 전반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주요 증권사의 지점 통폐합, 구조조정 이슈가 업계 전반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보험업계에 삭풍朔風이 불어온 건 지난해였다. 새 회계기준인 IFRS17 도입을 앞두고 자본확충을 해야 하는 데다, 저축성 보험 비중이 축소하면서 실적 부진이 깊어진 탓이었다. 숱한 보험사들이 구조조정 플랜을 가동했다.

푸본현대생명(옛 현대라이프)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희망퇴직을 진행해 전체 직원의 절반에 이르는 250여명을 정리했다. KDB생명 역시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해 직원 수를 크게 줄였다. 지난 10월에는 미래에셋생명이 희망퇴직에 나서면서 100명이 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회계기준 도입이 1년 유예됐지만 자본확충 필요성은 여전하다”며 “금리인상, 외국인 투자 감소 등으로 자금조달 비용까지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회사 차원에서는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지점 통폐합, 감원 등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험에서 출발한 삭풍은 순식간에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증권업계로 방향을 바꿨다.

이유는 사실 뻔하다. 국내 증시를 이끈 반도체 업계의 전망이 어둡다. 반도체 수요를 떠받치던 클라우드(가상저장 공간) 서버 업체의 주문량이 감소하고 있는 데다 스마트폰 판매량도 감소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글로벌 경기둔화 등 대외 불확실성도 계속되고 있다. 금리인상의 영향으로 채권금리까지 상승하면서 자기자본이익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증권업계가 일평균 거래대금과 거래량 감소에 따른 실적 부진을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3분기 증권·선물회사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55곳의 3분기 당기순이익은 9576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 1조2458억원 대비 2882억원(23.1%)이나 감소했다. 주요 증권사가 올 2분기까지 역대 최대 당기 순이익을 기록하던 모습과는 180도 달라졌다.


몸집 줄이기 나선 증권사

특히 수수료 수익이 2조1575억원으로 전분기(2조7061억원) 대비 20.3%(5486억원) 줄었다. 증시 부진으로 수탁수수료가 전분기 대비 30.2%(3945억원)나 감소한 것이 실적 부진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내 증권사의 ‘돈줄’ 역할을 하는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줄어들면서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는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든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방법은 영업점 통폐합과 인력 재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말 기준 국내 증권사의 지점수는 998개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1047개와 비교하면 39개가 사라진 셈이다. 같은 기간 미래에셋대우가 169개에서 148개로 21개 지점을 줄였다. KB증권도 110개에서 10개가 줄었다. 두 회사에서만 사라진 지점의 80%가량인 31개가 감소한 셈이다. 미래에셋대우의 몸집 줄이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지점 통폐합을 통해 30%가량의 점포를 축소하겠다고 밝히면서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KB증권은 현대증권 인수 이후 첫 희망퇴직을 시작한다. KB증권은 지난 5일부터 만 43세(1975년 이전 출생자)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KB증권은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근속연수에 따라 27~31개월치 급여의 희망퇴직금과 생활·전직지원금 3000만원을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회사의 권고가 없는 순수한 희망퇴직이라곤 하지만 대형증권사의 희망퇴직이 증권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장 내년 실적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경영효율화를 생각하지 않는 증권사는 없을 것”이라며 “특히 리테일 부문의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증권사가 인력 줄이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삭풍에 벌벌 떠는 건 증권사만이 아니다. 최근 카드수수료 인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카드사도 구조조정 이슈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현대카드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경영체질 개선 컨설팅 작업을 통해 인력감축 필요성을 확인했다. 총 400명 규모로 현대카드 200명, 현대캐피탈과 현대커머셜에서 각각 100명이다. 현대카드가 창사 이후 첫 인력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매각이 결정된 롯데카드도 비용절감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다른 금융업권도 안심하긴 어렵다. 올해 최대실적을 거둔 은행권도 내년이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 경기 부진 등의 영향으로 올해 실적을 이어가긴 어려워 보여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적용자를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이외엔 인력조정 계획은 없다”면서도 “비용절감 필요성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생보업계는 새로운 제도 탓에, 증권업계는 시장 부진 탓에, 카드업계는 정부 정책 탓에 비용절감·경영효율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업 종사자에겐 매서운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휘몰아칠 공산이 그만큼 커졌다는 거다. 금융업계 사람들이 또 추운 겨울을 맞았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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