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품 불매운동 수혜기업의 ‘과제’

지난 7월 시작된 한일무역분쟁은 유통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펼치고 있고, 그 수혜를 모나미, 신성통상, 하이트맥주,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몇몇 국내 기업이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이 언제까지 호조세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각 기업이 안고 있는 과제가 숱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일본제품 불매운동 수혜기업의 과제를 취재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도 늘었다. [사진=뉴시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도 늘었다. [사진=뉴시스]

한일 갈등의 불씨가 가장 먼저 타오른 곳은 유통업계다. 많은 소비자가 ‘노노재팬(No No Japan)’ 사이트 등을 통해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적극 펼치고 있다. 각 분야의 일본 기업 브랜드를 솎아내 국내 기업의 대체품을 찾아 공유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불매운동의 수혜를 누릴 만한 국내 브랜드도 부각됐다. 

대표적인 기업은 모나미다. 국내 필기구 시장을 미쯔비시 유니·펜텔·제브라 등 일본기업이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모나미 공식 온라인몰의 7월 4~18일 문구류 매출은 전월 동기 대비 359.3% 늘었다. 모나미 주가는 7월 3일 2560원에서 지난 9일 7000원으로 약 한달 간 173.4% 껑충 뛰었다. 5일부터 예약 판매한 ‘8·15 광복절 FX-153’ 패키지는 6일 1차 초도물량(7000세트)이 완판됐다. 

맥주시장에도 불매운동이 판도를 바꾸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8월부터 ‘수입맥주 4캔에 1만원’ 행사에서 일본 맥주를 제외하기로 했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7월 일본 맥주 매출은 전월 대비 33.0% 줄었다. 같은 기간 국산 맥주의 매출은 4.3% 증가했다. 국내 맥주업체 중에선 하이트진로가 맥주 ‘테라’의 인기를 등에 업고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주가는 7월 1일 9000원에서 지난 9일 1만850원을 기록해 한달 새 20.6%  올랐다. 

유니클로가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의류업계의 판도 흔들리고 있다.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브랜드는 탑텐(신성통상)이다. 유니클로와 비슷한 제품군(쿨에어·온에어, 경량패딩점퍼)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탑텐의 인기 덕분인지 신성통상의 실적도 긍정적인 흐름을 타고 있다. 올 1~3분기 누적 매출은 7220억원으로 전년 동기(6299억원) 대비 14.6% 증가했다. 같은 기간 탑텐의 실적이 12.4%(563억→633억)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생활용품전문점 업계에선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주(JAJU)가 이목을 끌고 있다. 경쟁업체인 무인양품無印良品이 불매업체로 꼽히면서다. 7월 15일부터 지난 7일까지 자주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했다. [※ 참고: 자주의 매출과 매장수는 170여개, 2060억원(이상 2018년 기준)으로, 각각 38개, 1378억원에 머물러있는 무인양품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호조세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불매운동 이전부터 안고 있던 과제가 숱해서다. 서용구 숙명여대(경영학) 교수는 “국가 간 정치적 갈등은 금방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 불매운동은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모든 기업이 애국마케팅을 내세운다면 역효과를 맞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모나미는 2016년 매출 정체기에 돌입했다. 2016년 1003억원, 2017년 1032억원, 2018년 1008억원 등 3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지난 1분기 매출도 전년 대비 64억원 감소한 탓에 올해 전망도 밝지 않다. 프리미엄 제품을 끊임없이 출시하고 있지만 품질 면에서 일본을 압도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최근 대체품으로 주목을 받은 유성볼펜 ‘모나미 FX-ZETA’가 출시된 지 거의 10년여 만에 조명받은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모나미 관계자는 “젊은 기업으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며 “젊은 층에겐 가치 소비 대상으로, 중장년층에겐 고급 필기구로 인식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등 국내 맥주업체도 수혜를 누리기엔 장애물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고 반드시 국내 맥주 수요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면서 “국산 맥주는 (맛없다는) 편견이 있는 만큼 유럽산·중국산 등 아예 다른 국가의 수입 맥주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휴가철에는 업소용 맥주 수요가 줄어든다”며 “최근 저녁에 술을 마시지 않는 문화까지 확산돼 생각만큼 (불매운동이) 실적에 크게 기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꼬집었다. 

신성통상의 미래 역시 지켜봐야 한다. 2012년 유니클로·자라 등 해외 SPA 브랜드를 잡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졌다. 신성통상 관계자는 “차별화를 위해 제품력을 키웠다”며 “‘코튼 모달’ 소재 ‘온에어’와 거위털을 사용한 경량패딩점퍼 등은 유니클로 제품보다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니클로의 브랜드력을 넘어서는 덴 실패했다. 유니클로의 대표 제품인 히트텍·에어리즘과 비슷한 제품을 갖추고도 국내에서 인지도가 낮았다.  

자주는 ‘무인양품의 카피캣’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실제로 일본 불매운동 사이트 ‘노노재팬’에서는 “일본 기업을 베낀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 건 불매운동 취지에 반하는 행위”라는 의견이 제기돼 설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측은 “애국마케팅을 따로 하지 않는다”며 “자주는 휴무일이 많은 이마트 위주로 입점해 실적이 크게 오른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용구 교수는 “연말 이후 불매운동 여파가 수그러들면 국내 기업의 수혜도 끝날 것”이라며 “효과를 지속하려면 애국 마케팅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애국 마케팅이 실패로 돌아간 대표적 사례는 ‘콜라독립 815(815콜라)’다. 

1998년 범양식품은 815콜라를 출시하며 빨간 캔, 태극기 등 애국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815콜라의 시장점유율은 한때 13.7%까지 기록했지만 정작 맛과 품질에서 차별화를 꾀하진 못했다. 2004년 815콜라의 생산라인이 멈췄고, 이듬해(2005년) 범양식품은 파산했다. 웅진식품이 2016년 재출시했지만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서 교수는 따끔한 조언을 계속했다. “일본 기업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업체는 애국심 같은 감정에 기대는 대신, 제품력으로 구매욕구를 자극해야 한다. 기술력을 높여 소비자가 불매운동 이후에도 제품에 흥미를 갖게 해야 지금의 호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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