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백옥희격자 장롱 맞은편 벽에뜰채처럼 걸린 잉어 네 마리꼼짝없는 찰나가 형광등 아래 있다왕소금 뻘을 누비던 잔뼈를 부려놓고허기로 잘록한 아내는 머플러를 둘렀다곧 죽어도 대학생이라고 비늘을 번쩍이며낚싯줄쯤이야 얕보던 아들이 그 옆에어부 낚싯바늘에 아가미가 걸린 딸안간힘으로 팔딱팔딱거리다 멍이 들고거친 풍랑과 맹골수에 식솔들 챙기느라풍성하던 지느러미 다 뽑힌 아버지가 중심에 있다저녁 바람이 곱게 다림질한 물 실크 옥색 치마동해 바다가 태곳적 고향이라는데,비린내만 일렁이는 항구 마을은이제 진저리가 난다는 턱걸이 급들 데리고무리를
심우장 가는 길 김유조마음 답답한 날은심우장 오르던 길을되새긴다저 기억의 꼬불꼬불 힘든 언덕길선종 깨달음의 경로처럼소를 찾아 떠나는 험로삶이 그렇듯 어찌 넓고 곧기만 하랴옛 총독부를 뒤로 하고 앉은팔작지붕 민도리 일자 집은만해 대선승(大禪僧)의 항일 독립의지의 표상일진데거기 닿는 비좁고 가파른 길을 예지한 데에는수행의 깊은 뜻 서려삼 년 기거의 마지막 흔적은오도송(悟道頌) 친필에 담아 벽에 걸고손수 심은 마당의 향나무도이제 백년을 헤아리는데모진 속세의 인연이런가일본 대사관이 저 아래 건너편에다시 따라와 앉아 있고부자 동네가 된 성북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이니셰린’ 섬 일상의 모습은 묘하다. 일견 목가적이고 평화스러워 보이면서도 왠지 절망적인 느낌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차츰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이니셰린이라는 섬에 젊은이도 안 보이고 동네에 아이들도 안 보인다는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에도 아이들 손님은 없다.영화 속 ‘이니셰린’ 섬에 사는 인물들은 모두 혼자 산다. 중년의 파우릭은 중년의 노처녀 여동생 시오반과 살면서, 아이 대신 ‘반려 당나귀’와 함께 일상을 보낸다. 중늙은이 콜름도 반려견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마을의 경찰서장 역시 정신
알로이시우스 수녀는 ‘진보적’인 플린 신부가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추론推論’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플린 신부가 ‘커밍아웃’한 것도 아니고, 목격자도 없고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그저 ‘추론’할 뿐이다. 알로이시우스 수녀의 ‘추론’ 방식은 관객들이 보기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추론’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더욱 황당하다.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짐작하고 예측할 때 흔히 ‘추론’의 방식을 동원한다. 추론이란 눈에 보이고 이미 알려진 사실을 통해 눈에 안 보이고
영화 ‘다우트’ 속에서 감독은 2개의 상반된 식사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진보적’인 플린 신부가 사제관에서 다른 신부들과 식사하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보수적’인 알로이시우스 수녀원장이 수녀원에서 수녀들과 식사하는 장면이다.플린 신부는 피가 철철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가운데 두고 신부들과 술을 마셔가면서 ‘너절한’ 수다를 떨고 킬킬대면서 식사를 한다. 사제복을 입은 건달들의 회식장면 같다. 반면에 알로이시우스 수녀원장과 수녀들은 사관생도들처럼 경직된 자세로 완전한 침묵 속에서 엄숙하게 ‘깨작’거린다. 사형수들의 마지막
민족문제연구소는 3·1독립선언기념일을 앞두고 일제의 사찰 관련 문서철을 번역·분석한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를 발간했다고 밝혔다.일제는 강제병합 이전부터 해방 때까지 반일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요주의 사찰 대상으로 분류해 감시하는 다양한 형태의 요시찰제도를 조선에서 시행하였다.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번역 발간한 『약명부』의 원본은 1945년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약명부』는 총 790명이 실려 있으며, 조선 안(한반도)의 요시찰인은 물론 일본에 건너간 조선인, 중국이나 러시아에 망명한 조선인도 감시 대상으로 삼아
12월 12일은 도쿄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리고 미리 약속되어 있던 인터뷰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필자는 캐리어를 이끌고 신주쿠로 향했다.한국 문화원을 지나 도착한 어느 빌딩. 고지받은대로 7층을 누르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푸근한 인상의 사내가 필자를 맞아 주었다.“어휴, 어서 오십시오.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웹소설 「도굴왕」, 「전지적 독자 시점」, 「나노 마신」등 의 웹툰화를 주도한 웹툰 제작사, 주식회사 레드세븐의 이현석 대표였다.■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만화업계 입문일본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이
코마바 공원을 나온 뒤, 다음 행선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분쿄 구에 위치한 모리 오가이 기념관을 가기 위해서였다.모리 오가이(森鷗外, 1862~1922)는 소설가이자 평론가, 의사로서, 동시대에 살았던 나쓰메 소세키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츠와노(津和野, 현재 시네마 현의 지망)번주의 전속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의사였지만 하급 무사라는 사회적 계급에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던 모리의 아버지는, 아들 모리의 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데 집중했다.네덜란드어, 영어, 독일어를 배우는 등 고등 교육을 받은
1970년대 초중반만 해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일제 강점기 동안 투쟁과 저항의 역사를 지닌’ 이른바 민족지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1950년대부터 본격화한 두 신문을 향한 이런 평가는 1970년대 중고등 국사 교과서에 실리며 다수 국민이 사실로 믿게 되는 단계를 거치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그 인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최근엔 ‘거짓과 배신의 역사’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여러 단체의 목소리가 들려 오고 있다. 반일과 친일은 왜 이처럼 극단적으로 엇갈린 걸까. 오랜 시간 한국 언론의 역사를 연구해 온 언론학
일본 도쿄의 중심부에 있는 신오오쿠보(新大久保駅)는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하다.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에 사는 일본인들이 한국 요리가 그리울 때, 한국 물품이 필요 할 때 들르기도 하고, 일본을 방문하는 우리 정치인들이 현지 교민들을 만날 때면 으레 신오오쿠보를 방문한다.그리고 신오오쿠보역에는, 큼지막한 기념비가 있어 오가는 길손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바로 20년 전 이곳,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해, 제 목숨을 희생한 두 의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이다. 한 명은 사진작가 故 세키네 시로(関根史郎)씨였으며,
현재 국가보훈처가 독립보훈 업무를 맡고 있다. 국가기관인 보훈처가 독립유공자 서훈 업무를 관여하고 있는 공적심사위원의 임기를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장기간 연임할 수 있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운영규정’(2020)의 제3조(구성)에 “⑤ 공적심사위원회 민간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연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현행 공적심사위원의 임기와 연임 규정은 시대착오적이다. 2년 임기는 너무 짧다. 물론 임기를 마친 공적심사위원이 다시 연임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과 대법원의 대법관 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문화충돌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듯하다. 1960년대 미국사회의 혼란기에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사회의 주류문화와 ‘히피’로 대표되는 미국사회의 비주류문화가 충돌한다. 그렇다면 히피의 반대주의(antism)는 1960년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패권을 장악한 미국 사회는 자본주의 원칙이 우악스럽게 장악했다. 그 아래에서 과학기술 제일주의, 경쟁에 따른 성과주의와 업적주의, 금전만능주의, 문명을 향한 맹신에 가까운 찬양이 주류문화로 확
2021년 11월 12일, 제 15회 임종국상 시상식이 서울 글로벌센터에서 열렸다. 임종국선생기념회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을 모토로 올해로 15회를 맞았다. 수상부문은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이다. 학술·문화부문의 수상자는 정연태 가톨릭대 교수로서, 수상저서인 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자행되는 민족차별의 문제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심사위원회는 해당 수상저서를 통해 민족차별의 논리와 실상을 객관적으로 규명한 점을 성과로
국내서도 유명한 칭다오맥주의 공장에 가보면 낯선 기록을 볼 수 있다. 칭다오맥주공장에서 일본 삿포로맥주를 생산했다는 거다. 이는 1900년대 일본에 침략을 당했던 중국의 아픈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중국인의 반일감정은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의 관영방송 CCTV는 일본 침략과 관련한 드라마를 거의 매일 방송할 정도다. 그런데도 중국과 일본의 학술교류는 활발하다. 우리는 중국의 이런 역설적 정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는 맥주로 유명하다. 2017년 6월 칭다오시를 방문한 필자는 ‘청도맥주’라고 불리는
( [한국의 문예비평] 동인문학상 적절성 논란 속 들여다보는 ‘야비한 자연주의 - 김동인론’ (1) 은 이곳(클릭)을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3. 그는 과연 전범이 될 만한 ‘모범적’ 작가였나자, 나는 앞에서 김동인의 실체에 대해, 즉 그가 비록 자칭, 타칭 한국 근대 소설의 선구자라는 고평을 받아왔다손 치더라도 이것은 사실 형식에 대한 일부 ‘인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지,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땅뜀(감히 생각조차 못하다)을 할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정치적 패배주의의 문학적 반영인 자연주의의 일본적
러드로 대령은 정의롭지 못한 ‘인디언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젊음을 바친 군대를 떠난다. 러드로 대령이 보기에 그것은 ‘전쟁’이라기보단 ‘학살’이었다. 군인의 명예는 당연히 적군과 맞서 싸워 조국을 지키는 것일 텐데, ‘인디언 전쟁’은 그렇지 않았다. ‘인디언 전사’들과의 전투가 아니라 인디언 마을을 덮쳐 마을을 불태우고 인디언 아녀자들을 몰살했기 때문이다. 러드로 대령은 명예롭지 못한 ‘전쟁’에 분노하고, 그 ‘학살명령’을 내린 미국정부에 대해서도 분노한다. 정의롭지 못한 ‘인디언 전쟁’에 치를 떨게 된 러드로 대령은 ‘반전주의자
릉라인민유원지에서 만난 평양 시민들우리의 평화자동차는 릉라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로 대동강이 흐른다. 대동강이 굽어 흐르는 가운데 위치한 섬, 릉라도. 우리는 릉라도에 있는 놀이공원, 릉라인민유원지에 가는 길이다. 북에서 맞이 한 토요일 오후다. 북녘 동포의 다양한 삶의 모습, 삶의 표정을 보고 싶다. 재미와 즐거움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 가는 곳, 놀이 공원. 그곳에 가면 평양시민들이 어떻게 여가를 즐기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평양의 놀이 공원,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호기심을 가득 담고 릉라유원지로
올 한해 한일 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등으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했으나, 깊게 팬 감정의 골은 여전하다. 국내에서의 반일 감정은 어느 때보다 고조됐고 불매운동도 뜨거웠다. 일본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미디어를 통해 체감하는 일본 내 혐한嫌韓 감정 또한 무겁고 냉랭하기만 하다. ‘혐한’이란 용어는 어떻게 시작되고 이어져 온 걸까. 신간 「혐한의 계보」는 혐한 인식의 시작, 혐한 담론의 출현, 정치화하고 있는 혐한까지 그 계보를 알아본다. 혐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노윤선은 혐한의 사고방식
NH아문디자산운용이 출시한 ‘필승 코리아 펀드’의 인기가 뜨겁다. 출시 3개월 만에 수탁고 1000억원을 돌파했을 정도다. 대통령과 정부 주요 인사가 펀드에 가입하면서 인기몰이에 성공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일 무역갈등으로 높아진 반일反日 감정도 인기에 한몫했다. 문제는 높은 인기에 비해 펀드의 투자 대상 기업인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돌아가는 실익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필승 코리아 펀드의 인기 뒤에 숨은 한계를 살펴봤다.“소재·부품·장비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만들어져 아주 기쁘다. 저도 가입해 힘을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수출 규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양국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한때 친일문인기념상인 동인문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지난 17일 주최 측인 조선일보를 통해 발표된 제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자는 한신대 교수 최수철 작가로 장편 소설 ‘독의 꽃’으로 당선됐다.동인문학상의 경우 소설가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으로 해당 작가의 적극적 친일 행적으로 지속적인 논란을 빚어왔다. 작년 11월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개최된 시상식장 앞에서는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인천 민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