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 진단과 해법
갈수록 커지는 인플레 경고음
물가 뛰는데 경기는 악화일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데 경기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시장에선 이미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해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경기景氣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나치게 낮으면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한국경제는 이른바 ‘D의 공포’를 걱정해야 했다. 그해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4%(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하면서 한국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물가하락→공급량 축소→기업 이익 감소→인적 구조조정→소비부진→경기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이 2019년 7월 1.50%였던 기준금리를 2020년 5월 0.5%로 떨어뜨려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4%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0월부터 3%대로 올라섰다. 올해 3월부턴 4%대를 웃돌기 시작했고, 5월 5.4%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대로 올라선 것은 2008년 6월 5.5%를 기록한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소비자물가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거다.

이 때문인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5%대를 넘어 6%대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월 31일 “당분간 5%대 물가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제 유가나 원‧달러 환율 상승세에 따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6%대를 웃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실제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악재는 숱하다. 4개월째에 접어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이슈가 대표적이다. 특히 원자재 시장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게 걱정거리다. 

일례로 러시아의 원유 시장과 천연가스 시장의 비중은 각각 12.1%, 16.6%에 이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 원유가격 등 원자재값의 상승 압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거다. 미국과 독일의 4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각각 8.3%, 9.0%를 기록하는 등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하는 이유다. 

문제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경제성장률의 둔화세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7%에 그쳤다.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 1.2%와 비교해 0.5%포인트 꺾인 수치다.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는 눈높이가 갈수록 낮아져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1월 전망치)에서 2.5%로 0.5%포인트 낮췄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5월 26일 전망치를 2.7%에서 2.5%로 하향 조정했고, 한은도 같은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3.0%였던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내렸다. 

당연히 시장에선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저성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부) 교수는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결합한 스태그플레이션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며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한국의 금리 인상 압력이 경기 부진으로 이어져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상봉 한성대(경제학) 교수도 “(우리나라 경제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거나, 하반기 진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는 최근 몇년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물가까지 급등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 평균은 4%에 달하는 데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대에 불과하다. 한국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해결할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점이다. 경기 둔화세를 내수가 받쳐주면 다행이지만 전망은 어둡다. 물가를 잡으려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하면서 서민의 삶이 팍팍해질 공산이 크다.

기준금리 인상에서 기인한 대출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 차주借主들은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어서다.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23.2였던 소매판매액지수(2015년=100)는 지난 4월 119.7로 4개월 연속 둔화했다(계절조정지수 기준). 

내수도 쉽지 않은데 해외 변수는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같은 대외적 요인은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을 돌파하려면, ▲실질소득을 늘릴 수 있는 감세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한 근간인 고용 확대 ▲기업의 투자 의지를 부추길 만한 규제완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윤석열 정부는 식용유·돼지고기 등 수입 품목 14개의 관세인하, 수입 커피와 가공식품을 수입할 때 납부하는 부가가치세를 면제하는 감세정책을 내놨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어쩔 수 없이 늘어난 부동산세稅도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관세와 부가가치세는 소비자보단 생산자의 부담을 낮추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참고: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단순가공식품에 김치와 된장·고추장·간장·젓갈류·단무지 등을 포함한 것은 위안거리다.] 부동산세 완화책도 서민보단 다주택자가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감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지금으로선 확신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의 엇갈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사진=뉴시스] 
정부의 엇갈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사진=뉴시스]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일관성을 갖고 있느냐도 살펴야 한다. 정책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언제든 엇박자가 날 우려가 있다. 감세가 긴요한 시기에 60조원대 추경을 단행할 수밖에 없는 지금처럼 말이다. 한편에선 금리를 끌어올리면서 다른 한편에선 시장에 돈을 풀고 있는 셈인데,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허준영 서강대(경제학부) 교수는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 26일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통화당국과 재정당국의 엇박자는 인플레이션과 경기 예측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통화당국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안정시키고, 재정당국은 효율적인 재정집행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엇박자 정책 어쩔 수 없더라도…

다른 대비책도 미리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위기가 현실화했을 때 한국 경제의 방파제 역할을 할 외환보유액은 반드시 점검해야 할 분야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500억 달러(4월 현재 4493억 달러) 수준으로 국제결제은행(BIS)이 권고한 9300억 달러의 절반에 불과하다”며 말을 이었다. 

“외환보유액이 안전판 역할을 하려면 즉시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의 비중이 높아야 한다. 하지만 한은의 외화자산 구성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이는 주식 비중(7.7%)보다도 낮다. 외환보유액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선 현금 비중을 30%대로 늘려야 한다.”

물론 한국 경제를 얼리는 S-공포를 두고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있긴 하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2분기 이후 둔화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침체 우려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경기 둔화세를 스태그플레이션에 해당하는 침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 센터장의 주장처럼 S 공포를 둘러싼 우려가 기우杞憂에 그치면 다행이다. 하지만 ‘기우’에 머무를 것이라면서 대비책을 강구하는 걸 뒷전으로 미뤄선 안 된다. S의 공포보다 무서운 공포는 ‘부실한 정책’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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