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11월 대구경북혈액원 A씨 기소
담뱃불 실화 혐의로 벌금 1000만원
대구경북혈액원 “직원 약식기소 사실”
화재사건 직후 ‘담뱃불’ 소문 나돌아
대한적십자사 ‘노후시설 때문’ 변명만
헌혈로 받은 피 날리는 등 7억 손해
사고 후 5개월 지나서야 감사 착수

 

검찰은 지난해 7월 발생한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의 원인이 담뱃불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지난해 7월 발생한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의 원인이 담뱃불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사진=연합뉴스]

2022년 여름에 발생한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의 진짜 원인이 직원이 피운 ‘담배’ 때문이란 결과가 나왔다. 더스쿠프의 단독 취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검찰은 혈액원 직원 A씨를 담뱃불에 따른 실화失火(잘못해 불을 냄) 혐의로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는 검찰이 일정한 벌금을 정해 재판부에 넘기면, 서면 심리만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누전과 노후화한 시설을 화재의 원인 중 핵심이라고 주장했던 대한적십자사의 해명은 일단 ‘거짓’으로 드러났다. 
 
대구경북혈액원 관계자는 “검찰에서 담뱃불을 화재 원인으로 보고 약속기소를 통해 직원에게 1000만원의 벌금형을 처분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내법상 실수로 불을 낸 행위를 처벌할 때 법원은 ‘1500만원 이하의 벌금(단순 실화)’ 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업무상 실화)’을 선고할 수 있다. 1000만원의 벌금을 받은 직원 A씨로선 무거운 처벌을 받은 셈이다. [※ 참고: 실화 혐의로 약식 기소된 직원 A씨는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의 불길 = 당시 사고의 개요를 보자. 2022년 7월 10일 새벽 1시 37분, 대구광역시 중구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에 불이 났다. 혈액원 A동 1층 혈액공급팀 사무실 인근이었다. 화재 발생 10분이 지나서야 당직 직원이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성난 불길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직원의 신고를 받은 소방서가 출동한 뒤에야 진화할 수 있었다. 화재 발생 30여분 만인 2시 10분께였다. 

피해는 심각했다. 혈액원 내부 410㎡(약 124평)가 불에 탔다. 소방서 추산 63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불이 난 지점 인근에 혈액을 보관하는 냉동창고가 있었다는 점이다. 냉동실 4개와 냉장실 2개가 화마火魔의 피해를 입었다. 냉동실에 보관 중이던 혈액제제 7600유닛(unit ㆍ1회 헌혈용 포장 단위)은 전량 폐기됐다. 소방수에 오염이 되거나 화재에 노출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재 직후 꺼낸 4000유닛의 혈액제제는 울산혈액원ㆍ부산혈액원ㆍ포항공급소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 역시 안전성이 우려돼 환자 수혈엔 쓰지 못한 채 연구용으로 남았다. 이렇게 1만1600유닛의 혈액이 폐기되거나 사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적혈구제제의 하루 평균 소요량이 4000~5000유닛 안팎이라는 걸 고려하면 적지 않은 혈액이 ‘담뱃불’로 사라져버린 셈이다. 혈액제제 1만1600유닛을 병원에 판매하면 금전적 가치가 7억원에 이른다. 

■ 심각한 모럴해저드 = 언급했듯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A씨를 약식기소하고 통보한 건 지난해 11월께다. 하지만 그전에도 대구경북혈액원 안팎엔 ‘담뱃불이 진짜 원인이다’ ‘직원 중 2명이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럼에도 대한적십자사의 신희영 회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노후 혈액원 개선’을 주요 현안과제로 꼽으면서 “안정적 혈액공급체계 유지를 위해 중장기 투자 재원의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조남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장도 같은날 국회 보건복지위의 한 위원이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를 언급하면서 시설 노후화를 지적하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데만 160억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한적십자사 측이 대구경북혈액원의 수사 또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화재의 원인을 시설 노후화로 몰고 갔다는 얘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구경북혈액원 사건을 취재한 언론을 향해선 “국고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시설이 노후화했다”는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한 서울남부혈액원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시설 자체가 최신화를 통해 가장 안전하게 (혈액이) 다뤄짐으로써 수혈자분들에게 안정적으로 더 안전하게 (혈액이)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 또다시 늑장 대처 = 그러면서도 대구혈액원 화재 사건의 진짜 원인을 살펴보는 과정은 발 빠르게 진행하지 않았다. 대한적십자사가 화재가 발생한 지 5개월 만인 지난해 12월에야 감사에 착수했다. 올 1월엔 2차 감사를 벌였지만, 담뱃불로 화재를 낸 A씨에겐 아직까지 ‘변상확인서’조차 받지 못했다. 

‘혈액사업’ ‘대북민간사업’ ‘재난구호’ 등 공공사업을 맡고 있는 대한적십자사는 국민이 납부한 적십자회비와 헌혈사업, 정부 보조금 등으로 운영되는 사실상 공공기관이다. 올해 책정된 예산만 해도 1조516억원에 달한다. 직원복무관리엔 국가공무원 규정을 준용하고, 계약을 맺을 땐 국가계약법을 따른다. 그런데도 사고만 터지면 책임지는 이는 없고 쉬쉬하기 바쁘다. 

익명을 원한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는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의 원인이 ‘담뱃불’이란 사실을 통보받은 건 대구지검이 약식기소를 명한 지난해 11월이지만, 아직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면서 말을 이었다.

“화재가 터진 건 지난해 7월이다. 그로부터 4개월이 흐른 11월 대구지검이 담뱃불에 의한 실화란 사실을 밝혀냈고, 대한적십자사에 통보했다. 그전에도 ‘담뱃불’ 때문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도 감사 한번 하지 않고 정부나 국회에 ‘시설 노후화’만 주장했다. 이참에 나랏돈을 더 받아내겠다는 계산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대한적십자사가 ‘담뱃불’에 또 멍들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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