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2년 전 대구경북혈액원서 화재
원인은 피우다 만 담뱃불로 판명
1심 결과 벌금 1000만원 선고
직원 실수와 감독 부실이 문제
시설 노후 탓에 불 났다던 한적
어떠한 유감 표명도 내놓지 않아
지금껏 담뱃불로 인한 화재 숨겨와
당시 화재 원인 소문 돌았는데도
자체 내부 감사 뒤늦게 착수해
되레 시설개선자금 혈세로 받아
대한적십자사 심각한 모럴해저드

대한적십자사가 혈액원 노후화 개선을 명목으로 10억원이 넘는 나랏돈을 타냈다. 2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건이 ‘시설 노후화’ 때문이라고 주장한 결과다. 하지만 이 혈액원에 불이 난 진짜 이유는 직원이 피우다 만 ‘담배꽁초’였다. 도대체 대한적십자사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야간 근무 중 담배꽁초를 버려 화재를 일으킨 혈액원 직원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사진=연합뉴스]
야간 근무 중 담배꽁초를 버려 화재를 일으킨 혈액원 직원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사진=연합뉴스]

2022년 7월에 발생한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의 진짜 원인은 더스쿠프가 단독 보도한 내용 그대로였다(“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직원 담뱃불 때문”ㆍ더스쿠프 통권 532호). 화재를 일으킨 장본인은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않은 당직 직원 A씨였다.

지난 1월 17일, 대구지법은 대구경북혈액원 직원 A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실화失火죄였다. A씨가 담배를 피운 후 담뱃불을 완전히 끄지 않은 채 담배꽁초를 플라스틱 쓰레기통에 버린 게 화근이었다. 

A씨는 “자신이 버린 담배꽁초 때문에 불이 난 게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혈액창고 외부에 설치된 CCTV에 찍힌 영상과 인적 요소로 인해 발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식 결과를 따져봤을 때 그랬다. 아울러 화재 당시 혈액원엔 A씨와 동료 B씨 둘만 근무했고, 발화 원인이 될 만한 다른 요인은 포착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가 경찰에서 담배꽁초 안쪽까지는 실질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또다른 직원 B씨는 피고인이 불씨를 튕기며 담뱃불을 끄는 것을 봤다는 취지로 말해 담배꽁초에 불씨가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피고인이 버린 담배꽁초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A씨는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최종 결론은 다음 재판에서 결판난다. 

2년 전 화재 사고의 피해는 심각했다. 사건 개요를 다시 보자. 2022년 7월 10일 새벽 1시 37분, 대구광역시 중구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에 불이 났다. 혈액원 A동 1층 혈액공급팀 사무실 인근이었다. 화재 발생 10분이 지나서야 직원 A씨가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성난 불길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직원의 신고를 받은 소방서가 출동한 뒤에야 진화할 수 있었다. 화재 발생 30여분 만인 2시 10분께였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불로 약 3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더 큰 문제는 불이 난 지점 인근에 혈액을 보관하는 냉동창고가 있었고, 이 때문에 ‘피 같은 피’가 소실됐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냉동실에 보관 중이던 혈액제제 8481유닛(unitㆍ1회 헌혈용 포장 단위)은 폐기되거나 부적격 처분을 받았다. 소방수에 오염이 되거나 화재에 노출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재 직후 꺼낸 일부 혈액제제는 다른 지역 혈액원으로 분산 이송됐지만, 이 역시 안전성이 우려돼 환자 수혈엔 쓰지 못한 채 연구용(3102유닛)으로 남았다. 이렇게 총 1만1583유닛의 혈액이 폐기되거나 온전히 쓰일 수 없게 됐다. 

대구ㆍ경북 지역 의료기관에 공급되는 일평균 혈액량이 450유닛이라는 걸 고려하면 25일치의 혈액이 담뱃불로 사라진 셈이었다. 더구나 화재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성을 부리면서 헌혈 횟수가 많이 감소하던 시기였다. 국민들이 무상으로 기부한 혈액은 한방울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각한 문제였다.

■ 화재 뒷얘기 = 재판부 판결까지 나왔으니 이제 사건은 일단락된 걸까. 그렇지 않다. 담뱃불 실화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국민의 피를 낭비한 대한적십자사는 이 사건으로 뜻밖의 ‘횡재’를 얻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강기윤 의원실(국민의힘)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올해 대한적십자사에 ‘혈액원 시설 노후 관리’를 명목으로 13억5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론 소방시설(스프링클러)을 구축하는 데 쓰일 돈이다. 그간 ‘혈액원 노후 장비 교체지원’ 사업에 복지부가 예산을 지원한 적은 있었지만, 혈액원 시설 노후 관리에 보조금을 책정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대한적십자사는 대구경북혈액원 화재의 원인을 ‘시설 노후화’로 지목했다. 2022년 10월 열린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신희영 전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노후 혈액원 개선’을 주요 현안과제로 꼽았다. 

신 전 회장은 “안정적 혈액공급체계 유지를 위해 중장기 투자 재원의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지원을 요청했다. 같은 날 국회 보건복지위의 한 위원이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를 언급하면서 시설 노후화를 지적하자 대한적십자사 임원은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데만 160억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화재 당시 대구경북혈액원 사건을 취재한 언론을 향해선 “국고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시설이 노후화했다”는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한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시설 최신화를 통해 가장 안전하게 (혈액이) 다뤄짐으로써 수혈자분들에게 안정적으로 더 안전하게 (혈액이) 전달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철수 현 대한적십자사 회장 역시 지난해 말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뉘앙스로 말했다. “대구경북혈액원에 불이 났는데 스프링클러가 없어서 제때 진압이 안 됐다. … 지은 지 30년을 초과한 6개 혈액원의 노후시설 개선에 148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와 논의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혈액원 노후화 이슈가 짚어야 할 문제인 건 맞다. 혈액원은 소중한 국민의 혈액을 관리하고 병원에 공급하는 중요한 시설이다. 그런데 이미 대구경북혈액원뿐만 아니라 부산혈액원, 광주전남혈액원, 대전세종충남혈액원, 경남혈액원, 서울남부혈액원 등은 만든 지 30년이 넘었다. 가장 기초적인 화재 진압 시설인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고, 화재 당시 대구경북혈액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노후화가 심각한 문제였다면, 진즉에 해결했어야 했다. 낡은 혈액원을 방치하고 화재 진압 인프라를 갖추지 않은 건 대한적십자사였다. “스프링클러가 있었다면 피해 없이 불을 금방 진압했다”는 것도 가정에 불과하다. 

혈액원 화재 원인은 담뱃불이었음에도 대한적십자사는 시설 노후화를 빌미로 예산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혈액원 화재 원인은 담뱃불이었음에도 대한적십자사는 시설 노후화를 빌미로 예산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해야 한다. 진단을 잘못하면 처방에도 오류가 생긴다. 대구경북혈액원에 불이 난 건 시설이 낡았기 때문이 아니다. 직원이 담배를 피웠고, 이를 제대로 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한적십자사는 진짜 원인인 담뱃불은 어딘가에 슬쩍 숨겨놓은 채 엉뚱한 진단을 내렸다. 

애초부터 대한적십자사는 대구경북혈액원의 화재 원인이 ‘담뱃불 실화’였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불이 난 게 2022년 7월이었는데, 4개월이 흐른 2022년 11월 말에야 내부감사에 착수한 게 이를 방증한다. 사고 초기부터 대구경북혈액원 안팎엔 ‘담뱃불이 원인이다’ ‘직원 중 2명이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는데도 대한적십자사는 미적거렸다. 

그러다 뒤늦게 감사를 실시한 건 화재 원인이 실화임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구경북혈액원 화재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A씨를 약식기소하고, 대한적십자사가 이 내용을 통보받은 건 2022년 11월 3일이었다. 감사실이 움직인 건 그로부터 25일이 흐른 11월 28일이었다. 

물론 이때만 해도 세간은 대구경북혈액원 화재 사고의 원인을 ‘시설 노후화’로 인지하고 있었다. 진짜 이유가 담뱃불이었단 게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사고 이듬해 2월 더스쿠프가 관련 내용을 단독으로 보도하면서였다. 

그렇게 착수한 감사 결과도 마뜩지 않다. 징계위원회는 지난해 9월에 열렸는데,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견책 1명, 감봉 3명이었다. 불을 낸 직원은 판결 이후 징계하기로 했다. 

이는 실책이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신속하게 감사에 착수하고 피해 대책을 강구했다면 다른 결과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감사실은 대구경북혈액원의 여러 문제를 지적했다.

‘재산종합보험 가입 부적절’ ‘소방 훈련 교육 및 계획서 작성 소홀’ ‘금연구역 지정 등 화재 예방 조치 미흡’ ‘방호 관리 및 감독 소홀’ ‘화재 초동 조치 및 대응 미흡’ ‘화재 피해 복구 이행 관련 절차 미준수’ 등이 대표적이었다. 쉽게 말해 대구경북혈액원이 화재 안전을 둘러싼 관리ㆍ감독을 엉망으로 하고 있었단 거였다. 이는 ‘노후화한 시설’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특히 보험 관련 문제는 국민의 혈세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대한적십자사 내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고 전, 대구경북혈액원이 가입한 재산종합보험엔 ‘혈액’을 보상하는 내용이 없었다. 보험 적용 재산 리스트에 혈액을 넣었어야 했는데, 공교롭게도 불이 난 대구경북혈액원만 이를 빠뜨렸던 거다. 폐기 혈액의 가치는 수억원에 달한다. 보험사에 청구를 못 하니 회수할 길이 막막해졌다. 남은 건 직원 A씨에게 손해배상을 거는 것뿐이다. 만약 소송에서 이긴들 온전히 받아낼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 결국 대한적십자사 예산으로 메워야 한다. 이는 혈세다.” 

대한적십자사는 적십자 회비와 기부금, 국민으로부터 헌혈받은 혈액을 판 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다. 그런데도 화재 원인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또 다른 혈세’를 요구해 받아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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