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1분기 3조원대 적자
업황 반등 늦어지면 추가 감산
반도체 비중 높은 한국경제에 부담

SK하이닉스가 1분기에도 대량 적자를 기록하면서 반도체 감산에 또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이 한국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아 추가 감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반도체가 미국의 경제안보를 대표하는 품목이 됐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반도체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한국 경제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도체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한국 경제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 SK하이닉스 어닝쇼크=SK하이닉스가 26일 올해 1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공개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매출은 5조881억원, 영업손실은 3조4023억원이다. 창사 이래 최대폭의 적자다. 매출 규모도 1년 전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도 1조8984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6개월 동안 적자 규모는 5조원이 훌쩍 넘는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어닝쇼크가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불황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생산량을 줄였는데도(감산) 1분기엔 판매량이 큰 폭으로 감소해 완제품 재고가 전분기 대비 증가했다”며 “D램은 물론 낸드플래시 적자 폭이 심화한 만큼 현재 감산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재고가 많은 제품 중심으로 생산을 조절하고 있고, 2분기 판매량이 1분기 감소폭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돼 재고는 상반기를 고점으로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 감산 장기화 우려=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이어 올해 1분기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하면서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매출 63조원, 영업이익 6000억원을 기록했다. 하이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2분기에 1조3000억원대 적자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감산의 장기화 혹은 추가 감산 가능성도 높아졌다.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신통치 않아서다. 영국 경제매체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2일 “세계 1위 파운드리 회사인 대만 TSMC의 올해 매출이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TSMC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예상보다 늦은 3분기에야 재고량이 적정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감산에 들어갔고, 삼성전자는 지난 7일 잠정실적과 함께 감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반도체 반등의 열쇠를 쥐고 있는 반도체 가격은 여전히 하락세다. 시장조사회사 디램익스체인지와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D램 주류제품인 DDR4 8G 기준 평균 가격은 1월 7% 하락했고, 2월에는 2.7%, 3월에도 8.3% 하락했다. 낸드플래시 가격도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공급업체들의 재고가 줄어들지 않는 한 D램 평균 가격은 계속해서 내려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시장조사회사 트렌드포스는 지난 3월 말 “마이크론, SK하이닉스 등이 D램 생산을 줄이기 시작해 1분기 D램 평균 가격이 20% 하락했지만, 2분기에는 10~15%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진단했지만, “하반기에 수요가 회복될지는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또 “반도체 생산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감소해야만 가격이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 반도체 착시효과=한국무역협회는 25일 무역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에 편중된 한국 경제를 향해 경고장을 보냈다. 올해 1~3월에도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했고, 4월에도 20일까지 42억 달러 적자를 기록해 올 들어 한국의 무역적자는 266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무역협회는 그 원인을 “반도체에 편중된 경제 지형에서 찾았다”며 “최근 몇년간 수출 증가를 반도체가 주도해 온 반면 반도체 외 품목의 수출증가율은 2%대에서 정체됐다”고 지적했다. 반도체라는 산업이 특수를 맞았던 것을 한국 경제가 성장한 것으로 착각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실제로 2016~2022년 반도체가 전체 수출 증가분에서 차지한 비중은 42.3%에 달한다. 같은 기간 반도체·철강·석유화학과 같은 장치산업의 수출이 연평균 6.1% 증가했는데 자동차·선박·전자기기와 같은 비장치산업 수출은 오히려 2.3% 감소했다. 이 기간 반도체는 혼자 연평균 10.8 %씩 성장해 다른 품목들의 부진을 만회했다.  

하지만, 반도체 업황이 크게 악화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주요 수출국들은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수출을 늘려가고 있는데, 한국은 큰폭의 역성장을 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수출증가율을 보면 네덜란드가 13.0%, 미국이 8.9%, 독일이 3.8%를 기록했지만, 한국은 -12.6%로 크게 뒤처졌다. 중국과 일본에도 뒤졌다. 중국과 일본의 1분기 수출증가율은 각각 0.1%, -8.1%였다. 반도체 주요 생산국인 대만의 1분기 수출 증가율은 -19.2%로 크게 악화됐다. 

■ 감산의 경제학=국가별 1위 수출품의 비중을 보면 한국의 반도체 편중 현상은 심각함을 넘어선다. 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는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16.5%를 차지했다. 세계 각국의 1위 수출 품목의 비중이 일본 11.6%(승용차), 독일 9.4%(승용차), 미국 6.6%(석유제품), 중국 6.6%(휴대전화), 이탈리아 5.2%(소매의약품)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 1분기 13.6%로 줄었지만 이는 편중이 해소되서가 아니라 반도체 수출량이 더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은 3월 전년 동월 대비 34.5% 감소했고, 2월에도 1년 전보다 42.5% 줄었다. 5년 전인 2018년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9%였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반도체 감산의 위험성은 또 있다. 감산이 곧바로 투자의 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 자료에 따르면, 제조업 전체 설비투자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6년 25.9%, 2018년 44.5%, 지난해 53.6%(전망치)로 커졌다. 반도체 감산이 위험성을 동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워런 버핏의 충고=반도체는 이제 미국의 경제안보를 대표하는 품목으로 자리잡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서명한 반도체지원법은 280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통해서 첨단 반도체의 모든 생산 과정이 미국에서 이뤄지도록 하려는 법안이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만,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 미국 안보에 해를 입히는 국가들에 향후 10년 동안 반도체 관련 투자를 해선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포함해 산업 전반에서 패권경쟁을 벌이면서 반도체는 이제 지정학적인 제품이 돼가고 있다. 미국은 첨단기술 관련 업종에서 중국을 오랜 기간 압박해왔다. 

미국이 반도체를 패권경쟁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이 반도체를 패권경쟁의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국도 4월 초 마이크론 제품의 보안심사를 실시하고, 조만간 판매를 금지해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지난 4월 24일 미국 백악관 소식통 다수를 인용해 “백악관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우지 않도록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이다. 반도체 업계와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이어가면서도 이처럼 늘어나는 변수를 통제하기 위한 고심과 결심이 필요한 때다.

미국의 대표적 장기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지난해 3분기 대만 파운드리 회사 TSMC 주식 6000만주를 매수한 후 3개월 만에 86%인 5170만주를 매도했다. 워런 버핏은 지난 11일 일본을 방문해 현지 매체와 인터뷰를 갖고 “(지정학적인 문제도) 생각했던 요소 중 하나”라며 “TSMC는 압도적인 이익을 올리고 있고, 경영 상태도 좋지만, (버크셔) 자본을 투입할 더 나은 곳이 있었다”고 답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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