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글로벌 빅테크의 민낯➊
25억 달러 투자 약속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트 산업 반길 일이지만
넷플릭스만 득 누릴 가능성 있어
한국 OTT 산업은 넷플릭스 천하
생산만 맡는 하청기지 전락 우려
한국법인 번 돈 대부분은 본사로
넷플 투자 효과 냉정히 분석해야

글로벌 빅테크의 한국 사회 기여도가 낮다는 지적이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글로벌 빅테크의 한국 사회 기여도가 낮다는 지적이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 첫날. 넷플릭스 소식이 미디어를 도배했다. 이 회사가 한국 콘텐츠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국 콘텐츠 산업은 열광했다. 넷플릭스의 투자 약속이 한류 열풍 확산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에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킹덤’ ‘오징어게임’ ‘지옥’ ‘피지컬: 100’ ‘더글로리’ 등 세계 시장에서 흥행한 우리의 콘텐츠 대부분이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됐기 때문이다. 

# 하지만 한쪽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 OTT 산업은 이미 넷플릭스 천하인데,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커지면 어쩌나”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한국 OTT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경쟁 OTT 서비스는 수년간 적자만 켜켜이 쌓고 있는데, 넷플릭스는 쏠쏠한 실적을 거뒀다. 

# 이렇게 한국 콘텐츠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넷플릭스가 정작 한국 시장에 기여하는 건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넷플릭스 한국법인은 벌어들인 돈의 80% 이상을 미국 본사로 보냈다. 직접 투자한 상당수 한국 콘텐츠의 지식재산권(IP)도 넷플릭스가 보유했다. 앞으로 진행될 막대한 투자 역시 넷플릭스의 실적과 플랫폼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쓰일 공산이 크다. 

# 따지고 보면 넷플릭스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 시장에 깃발을 꽂은 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도 벌어가는 돈만큼 기여하는 부분은 턱없이 부족하다. 

# 더스쿠프가 ‘視리즈 글로벌 빅테크의 민낯’을 통해 그들의 속내와 전략, 그 속에 숨은 탐욕을 들여다봤다. 여기엔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가 정말 환영할 만한 일인가’란 의문도 담겨 있다. 첫번째 이야기,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에 숨은 비밀을 들여다보자.

넷플릭스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25억 달러의 콘텐츠 투자를 약속했다.[사진=뉴시스]
넷플릭스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25억 달러의 콘텐츠 투자를 약속했다.[사진=뉴시스]

4월 24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땅을 밟았다. 국내 주요 기업인 122명과 함께였다. 윤 대통령으로선 지난 1분기 역성장을 겨우 면한 경제성장률(0.3%)을 끌어올릴 해법이 절실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해 온 그가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을 꾸린 이유였다. 미국과 대규모 투자 계약을 맺으면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방미 첫 스케줄로 미국 기업인을 만났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 테드 서랜도스였다. 이날 넷플릭스는 향후 4년간 한국 콘텐츠에 25억 달러(약 3조3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넷플릭스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투자한 전체 금액의 2배에 달하는 액수다. 윤 대통령은 “이번 투자는 대한민국 콘텐츠 사업과 창작자, 넷플릭스 모두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라며 “넷플릭스의 파격적인 투자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넷플릭스 투자의 파급 효과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 투자 유치로 6만8000개의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갑을 열어젖힐 기업이 넷플릭스란 점도 의미가 남달랐다. 

넷플릭스는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결정적인 변곡점을 제공했다. 이 플랫폼은 전세계 2억3000명이 넘는 시청자의 안방에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선보였다.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감독상ㆍ남우주연상을 비롯해 6관왕에 올랐던 덴 넷플릭스의 공이 컸다. 

넷플릭스는 황동혁 감독이 10년간 구상했던 오징어게임에 과감히 투자했다. 넷플릭스 독점작으로 190여 개국에서 동시 개봉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넷플릭스가 약속한 25억 달러 투자는 ‘제2, 제3의 오징어게임’의 발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 넷플릭스 투자의 함의 =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엔 또다른 노림수가 있어서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에 유통할 뿐만 아니라 국내 OTT 산업도 과점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주요 OTT의 월간활성사용자수(MAU) 순위는 넷플릭스(1258 만명), 티빙(515만명), 쿠팡플레이(439만명), 웨이브(401만명), 디즈니플러스(216만명), 왓챠(81만명) 등의 순이다. 

한국 대기업을 뒷배로 둔 티빙(CJ ENMㆍKT)과 웨이브(SK텔레콤ㆍ방송3사)는 여전히 넷플릭스의 아성을 위협조차 못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약속대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 가뜩이나 벌어진 격차가 더 벌어질 게 분명하다. 

OTT 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이름값이 있는 PD의 콘텐츠와 작가의 시나리오가 넷플릭스에 쏠리고 있다”면서 “한국 콘텐츠 생태계를 장악함과 동시에 국내 제작사를 자신들의 하청기지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넷플릭스가 직접 투자한 콘텐츠 상당수는 자사 플랫폼을 통하지 않고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선보이기 때문이다. 지식재산권(IP)이나 판권도 넷플릭스가 보유한다. 콘텐츠를 성심껏 만든 제작사는 IP를 활용해 2차 사업을 전개하는 게 쉽지 않다. IP에서 나오는 추가 이익은 대부분 넷플릭스의 몫이다. 콘텐츠의 수익이 제작사ㆍ창작자 대신 넷플릭스 쪽으로 과도하게 기울었다는 얘기다. 

물론 “한국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넷플릭스의 투자와 유통 덕분”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무의미한 논쟁이다. 넷플릭스 역시 한국 ‘작감배(작가ㆍ감독ㆍ배우)’의 탁월한 제작능력이 없었다면 ‘오징어게임’ 같은 콘텐츠로 전 세계 유료 가입자를 끌어모을 수 없었다. 판권ㆍIP를 독점한 넷플릭스가 추가 수익을 독점하는 구조를 두고 불공정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넷플릭스가 한국 OTT 산업을 장악해 벌어들인 수익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한국에서 OTT 사업을 전개하는 사업자 중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넷플릭스의 한국법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는 지난해 매출로 773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을 구성하는 건 ‘스트리밍 수익’, 이를테면 한국 고객이 넷플릭스를 보려고 낸 구독료다. 

같은 기간 티빙은 2475억원을 벌었고, 웨이브를 운영하는 콘텐츠웨이브는 27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넷플릭스의 매출이 두 회사의 매출 합보다 많다.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로 올해 넷플릭스 한국법인의 매출은 더 커질 공산이 크다.

문제는 ‘통 큰 투자’의 결실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한국법인은 벌어들인 매출 상당 부분을 본사에 ‘배급 수수료(Distribution fee)’로 보내고 있어서다.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는 국내 OTT 시장의 과점 구조를 공고히 할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는 국내 OTT 시장의 과점 구조를 공고히 할 공산이 크다.[사진=연합뉴스]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지난해 7732억원의 매출을 올린 넷플릭스 한국법인은 그중 6507억원을 본사 수수료로 냈다. 전체 매출에서 84.1%를 수수료로 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넷플릭스 한국법인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42억원, 107억원에 머물렀다. 

‘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법인세 역시 33억원 납부하는 데 그쳤다. 2021년에도 마찬가지였다. 6295억원을 벌었지만, 미국 본사에 5166억원을 수수료로 지급했다. 전체 매출의 87.1%를 본사로 넘기면서 한국에 낸 법인세는 30억원에 불과했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 교수(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는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꾸준히 투자해 온 건 한국 콘텐츠 산업을 부흥하겠다는 선의라기보단 미국 콘텐츠와 비교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한국 콘텐츠의 뛰어난 가성비에 주목했을 것”이라면서 “경쟁 OTT 업체들은 수년간 적자만 커지면서 콘텐츠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드는 가운데 넷플릭스만 베팅액을 올리면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점유율만 크게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우리가 넷플릭스의 ‘통 큰 투자’가 한국 콘텐츠 산업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윤 정부 역시 ‘넷플릭스 투자’를 자찬할 게 아니라, 그 이면에서 벌어질 일을 전략적으로 검토해 봐야 한다. 더구나 국내 시장을 과점하면서 실질적인 혜택은 자국 본사로 돌리고 있는 건 넷플릭스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의 행태도 비슷하다. 이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가 보자.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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