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삼성에 던진 원초적 질문➊
삼성전자 반도체 14년 만에 적자
‘캐시카우’ 메모리가 부진한 탓
자금줄 막히면 파운드리도 위험
파운드리는 반도체 최대 격전지
미국 이어 일본까지 출사표 던져
TSMC 추격도 힘에 부치는데
인텔과 일본도 견제해야 할 처지
앞으로 1~2년이 삼성의 변곡점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변곡점을 맞았다. 앞으로 1~2년의 행보가 앞날을 바꿔놓을 공산이 크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변곡점을 맞았다. 앞으로 1~2년의 행보가 앞날을 바꿔놓을 공산이 크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 반도체 산업의 지형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지원 경쟁이 치열하고, 반도체 기업들은 그에 발맞춰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향후 몇년 안에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구도를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 

#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파운드리 시장(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제2의 성공신화를 쓰려는 삼성전자도 앞으로 1~2년이 중요하다. 지금 시기에 어떤 전략과 투자 플랜을 만들어갈지에 따라 향후 판도가 달라질 공산이 크다. 이 때문인지 삼성전자 역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 하지만 삼성전자의 야심찬 투자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삼성전자의 투자 레이더에 포착된 건 미국이었고, 아직까지 중국은 배제됐다. 지정학적 요소가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가르는 변수로 떠올랐다는 걸 감안하면 과감하면서도 위험한 선택이다.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정말 괜찮은 걸까. 더스쿠프가 視리즈를 통해 삼성전자에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반도체 시장의 지형을 흔드는 첫번째 변수는 지정학적 요인이다.[사진=뉴시스]
반도체 시장의 지형을 흔드는 첫번째 변수는 지정학적 요인이다.[사진=뉴시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올 1분기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09년 1분기 이후 14년 만에 적자를 냈는데, 손실액은 4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2009년 1분기 적자(6458억원)보다 7배나 많은 수치다.

문제는 올 2분기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희박하단 점이다. 증권가에서도 올 2분기 삼성전자가 전체 영업적자를 기록할 거란 예측을 쏟아내고 있다. 증권가의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삼성전자가 전체 실적에서 적자 전환하는 건 2008년 이후 15년 만이다. 

■ 현주소➊ 메모리 반도체 = 그럼 삼성의 위기는 지금 어느 정도일까. 지금부터 이 원초적인 질문을 풀어보자.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실적이 부진한 건 아무래도 메모리 반도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非메모리 반도체(설계ㆍ생산)를 모두 다루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그중 메모리 반도체가 반도체 부문 전체 매출의 60.5%(2022년 기준)를 담당하며 캐시카우 역할을 맡고 있다.

[※참고: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는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시스템LSI’ 사업부와 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ㆍFoundry)’ 사업부로 나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선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선 후발주자다. 특히 ‘파운드리’ 부문에선 대만 TSMC의 아성을 좀처럼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후술했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엔 고질적 문제가 있다. 주문 제작하는 시스템 반도체와 달리 수요와 공급 법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일종의 칩인 메모리 반도체는 스마트 기기든 전기차든 어딘가에 탑재해야 하기 때문에 전방 산업의 경기 상황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다만,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의 수요에 공급이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공급량을 늘리려면 2년여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그사이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당연히 가격은 널을 뛰고, 업황 사이클에 따른 부침도 심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이번 실적이 유독 나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 등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악재가 맞물리면서 불황의 골이 깊어진 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이후 깜짝 늘어난 반도체 수요에 반응한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늘렸던 것도 공급과 수요의 간극을 더 벌려놨다. 

그사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 지표인 ‘가격’도 크게 고꾸라졌다. 일례로 메모리 반도체의 한 종류인 D램 DDR4 8Gb의 경우 지난해 4월 3.41달러에서 1년 만인 지난 4월 1.45달러로 절반 이상 떨어졌다(D램 익스체인지 자료).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ARM과 손을 잡았다.[사진=뉴시스]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 지배력을 키우기 위해 ARM과 손을 잡았다.[사진=뉴시스]

■ 현주소➋ 비메모리 반도체 = 물론 삼성전자만 불황의 타격을 입은 건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 선두기업인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도 올 1분기 3조원대의 영업적자를 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부진이 갖는 의미는 좀 더 예민하게 살펴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 사정에 따라 비메모리 반도체의 미래도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삼성전자가 사활을 걸고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들어갈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선 메모리 반도체에서의 원활한 자금 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거다.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부진을 좀 더 심각하게 봐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 특히 파운드리 부문에서 뾰족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기업 간 주도권 경쟁이 복잡해졌다. TSMC를 뒤쫓던 삼성전자는 이제 신규주자인 인텔까지 견제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우려스러운 건 ‘추격’도 ‘견제’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일단 TSMC와의 점유율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줄곧 TSMC의 등을 보고 달리던 삼성전자가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선단공정 기술력에서 앞서 나가며 추격의 불씨를 지피는 듯했지만 시장점유율은 되레 반대로 움직였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TSMC와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53.6%, 16.3%였지만 그해 4분기엔 58.5%, 15.8%로 벌어졌다. 앞서 선보인 3나노 선단공정에서 수율收率(투입량 대비 양품 비율) 문제를 겪으며 고객사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게 패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파운드리 사업에 사활을 걸며 대규모 투자를 선언한 인텔의 위협도 만만찮을 공산이 크다. 특히 인텔은 최근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과 동맹을 선언하면서 파운드리 시장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인텔과 ARM이 손을 잡고 차세대 모바일 반도체(시스템온칩ㆍSoC)를 만들겠다는 건데, ARM이 모바일 칩 설계 분야에서 9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본도 파운드리 시장에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소니ㆍ키옥시아ㆍ도요타ㆍ소프트뱅크 등 8개 기업이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를 설립했는데, 2027년부터 2나노 공정 반도체를 양산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이런 역학구도 속에서 삼성전자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전략을 취하느냐에 따라 파운드리 경쟁의 판도가 뒤바뀔 수도 있어서다. 더욱이 메모리 반도체 부진이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점은 삼성전자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참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번 반도체 불황이 2001년 IT버블, 2008년 금융위기와 비슷한 수준의 여파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했다.]

이종환 상명대(시스템반도체공학) 교수는 “삼성전자로선 매우 위험하면서도 중요한 시기”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TSMC는 멀리 달아나고, 인텔은 새 시장을 잡겠다면서 달려들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간에서 제길을 잘 찾아야 한다. 문제는 메모리 반도체가 캐시카우 역할을 못하면 파운드리 투자도 어렵다는 거다. 메모리 반도체가 언제 회복될 거란 기약이 없고, 회복돼도 당장은 예년처럼 호황을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1~2년이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현주소➌ 투자의 법칙 =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삼성전자는 지금껏 투자를 통해 극복해 왔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는데, 이런 삼성전자의 DNA는 이번에도 발동했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연구ㆍ개발(R&D) 비용으로 분기 사상 최대 규모인 6조5790억원을 지출했다. 같은 기간 시설투자에 쓴 돈도 1분기 기준 최대 액수인 10조7388억원에 달했다. 

대규모 투자 플랜도 마련했다. 지난 3월 15일 삼성전자는 경기도 용인에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발맞춰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미국 텍사스주에 20년간 2000억 달러(약 250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안을 제출한 데 이은 두번째 장기 투자 플랜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야심찬 투자 로드맵을 향한 우려도 적지 않다. 중대한 기로에 놓인 것치곤 ‘투자 로드맵’에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아서다. 이 이야기는 삼성을 향한 원초적 질문 두번째 편에서 이어나가보자. 

고준영 더스쿠프 경영전문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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