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제2세종문화회관 부지
변경 과정서 빠진 절차
왜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여의도공원으로 변경됐나

제2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설 부지가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여의도동으로 변경됐습니다. 2018년 문래동에 제2세종문화회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수립된 지 5년 만입니다. 그런데 영등포구 구민 중 상당수는 제2세종문화회관의 부지가 여의도로 변경된 이유와 과정을 잘 모릅니다. 서울시든 영등포구든 주민 의견을 수렴한 적이 없는 데다, 사업성을 비교할 수 있는 타당성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제2세종문화회관을 둘러싼 논의에서 주민 의견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은 너무 좁았다.[사진=천막사진관]
제2세종문화회관을 둘러싼 논의에서 주민 의견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은 너무 좁았다.[사진=천막사진관]

지하철 2호선 문래역 5번 출구를 빠져나와 5분여 걷다 보면 덩굴식물이 길게 자라 뒤덮인 표지판이 보입니다. ‘제2세종문화회관 예정지’를 알리는 이 표지판은 식물이 몸통을 휘감고 있을 만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여기는 영등포구 문래동3가 55-6입니다.

인근에는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던 공장지대가 있고 조금 더 멀리엔 도시재생 사업지로 개발 중인 옛 ‘대선제분’ 공장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이곳에 공연ㆍ전시ㆍ콘서트를 모두 할 수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생겼다면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2023년 제2세종문화회관의 후보지는 원래 계획됐던 문래동 대신 여의도공원으로 변경됐습니다. 왜 처음에는 이곳이었고 지금은 또 그곳일까요?

■ 제2세종문화회관 필요했던 이유 = 시곗바늘을 2013년으로 돌려볼까요? 박원순 시장 시절이던 이때 서울시는 ‘서남권 복합문화시설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용역(이하 서남권 복합문화시설 조사)’을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이 부족한 문화소외지역인 서울 서남권 지역에 문화복합시설 건립을 검토함으로써 지역별로 균형된 문화향유기회 제공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함.”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1000석 이상의 공연시설은 체육관을 포함할 경우 38곳입니다. 그중 서남권에 있는 건 5곳인데, 스포츠 경기장인 2곳(목동 아이스링크ㆍKBS스포츠월드)을 제외하면 3곳이 남습니다. 여의도(KBS홀), 신도림(디큐브문화센터), 그리고 마곡(LG문화센터)입니다. 보시다시피, 영등포역 일대엔 공연장이 없습니다.

제2세종문화회관 후보지가 여의도로 변경됐지만 문래동엔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사진=더스쿠프]
제2세종문화회관 후보지가 여의도로 변경됐지만 문래동엔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사진=더스쿠프]

그래서인지 2017년 진행된 영등포구 주민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1000석 이상의 대공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87.1%로 높게 나왔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지역 내 문화시설 필요성, ▲구도심 이미지 개선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지역의 낙후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은 영등포구 구도심 일대에 문화시설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던 겁니다. 바로 이것이 제2세종문화회관을 문래동에 짓겠다고 나선 배경입니다.

이를 근거로 서울시는 2018년 2014석에 이르는 다목적 공연장과 300석의 소공연장, 그리고 기타 문화시설이 가득한 ‘제2세종문화회관’을 문래동에 건설하기로 했습니다.

■ 뒤바뀐 결정 = 2025년을 목표로 진행되던 제2세종문화회관은 2022년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문제는 제2세종문화회관 후보지가 ‘구유지區有地’라는 사실에서 시작했습니다. 문래동3가 55-6 토지는 영등포구청이 소유한 구유지입니다.

2018년 계획을 수립할 당시 영등포구청은 5년간 한시적으로 서울시에 무상 임대하고 서울시는 이곳에 제2세종문화회관을 ‘짓고’ ‘운영하는’ 비용을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5년 뒤가 지나면 무상 임대 여부를 다시 결정하기로 했죠.

이 계획의 기류는 구청장의 당적이 더불어민주당(채현일)에서 국민의힘(최호권)으로 바뀐 2022년부터 달라졌습니다. 최호권 구청장은 그해 11월 시정연설에서 “‘2023년 예산도 정해져 있지 않고’ ‘문래동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모자란다는 의견’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면서 제2세종문화회관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최 구청장은 한발 더 나아가 “남(서울시)에게 구유지를 빌려주게 되면 영등포구민을 위한 문화 인프라를 위해 다시 땅을 사고 건축비가 들어가지 않겠느냐”라는 주장도 내놨습니다.

제2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설 부지를 ‘무상 임대’하는 게 영등포구 주민에겐 손해라는 입장을 견지했던 건데, 이런 기류는 “제2세종문화회관 운영을 위한 ‘무상 임대’를 주민들은 몰랐기 때문에 2013년 타당성 조사도 잘못됐다”는 지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서울시는 올해 ‘제2세종문화회관’을 문래동에서 여의도로 옮기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의도 공원 내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밀고 있는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정책의 일환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제2세종문화회관을 지역별로 균형된 문화향유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서남권에 만들겠다’는 애초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언급했듯 여의도엔 이미 1000석 이상의 공연장이 있습니다.

■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렸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사실 ‘무상 임대’를 놓고 벌어진 논란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닙니다. 2013년 진행했던 설문조사에선 ‘지역 문화시설이 필요하느냐’고만 물었을 뿐 영등포구청의 토지가 서울시에 무상 임대된다는 내용은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무상 임대가 제2세종문화회관을 여의도에 넘겨줄 만큼 영등포구에 손해일까요? 단순 계산을 하면 이렇습니다.

영등포구에 따르면 문래동3가 55-6 토지는 연간 임대료 23억원(2020년 기준)이 나올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서울시는 1600억원의 사업비, 연간 110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해 ‘제2세종문화회관’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영등포구는 23억원의 연 임대료 수입을 얻지 못하는 대신 건축비와 운영비를 서울시로부터 보존받는 셈입니다. 만약 ‘무상 임대’가 아니었다면 연 23억원의 임대료를 얻는 대신 건축비를 일부 투입했어야 할 겁니다.

문제는 영등포구와 서울시가 제2세종문화회관의 둥지를 옮기는 결정을 하면서 이익과 손해를 정확하게 측정한 적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 이번엔 주민들의 의견도 묻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타당성 검토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구유지를 무상 임대해 지역 문화시설을 만든다”고 주민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의 영등포구청도 “무상 임대 문제로 인해 제2세종문화회관을 옮긴다”는 계획을 물어보지 않은 겁니다.

서울시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엠보팅(mvoting)’이란 온라인 투표 플랫폼으로 오랫동안 주민참여예산 의견을 받거나 정책을 결정하는 데 참고 조사로 활용해온 서울시는 제2세종문화회관을 두고는 온라인 투표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든 영등포구청이든 시민이나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는 앞으로도 진행할 계획이 없는 듯합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문래동 원래 지역에 제2세종문화회관을 지어야 한다는 주민 의견이 100%라 할지라도 그대로 할 수는 없다”며 “무상 임대와 관련한 결정은 공유재산심의회가 담당하는 것이며 요새는 사용료를 내고 땅을 빌리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 이 지점에선 우리가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2013년 기본 계획과 2018년 제2세종문화회관 문래동 건립 계획, 그리고 2023년 여의도 이전 결정 때 달라진 게 무엇이냐는 겁니다. 딱 하나 있습니다. 서울시장과 영등포구청장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영등포구 측은 2014년 주민설문조사에서 ‘무상임대’ 조건을 묻지 않았다는 걸 제2세종문화회관을 유치해선 안 되는 이유로 내걸었는데, 정작 2023년 땐 ‘옮겨도 되겠느냐’는 주민설문조사조차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여의도공원으로 이전해도 괜찮은지를 검토하는 ‘타당성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제2세종문화회관을 여의도공원으로 옮겨도 괜찮을까요? 지금이라도 절차적 공정성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요? 이제 서울시가 답할 차례입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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