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전세 포함 ‘확대 가계부채’ 1위
총리·부총리·장관 “DSR 완화”
신용 긴축 효과 사라질 듯

국제결제은행(BIS)은 43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매 분기 발표한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이 순위에서 3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전세 보증금을 포함하면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156.8%로 압도적 1위다. 하지만 정부는 오히려 신용 여건을 완화할 계획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면서 가계부채 축소가 요원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면서 가계부채 축소가 요원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전세 포함 ‘확대 가계부채’ 1위=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5.0%라고 발표했다. 비금융권 기업들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도 2021년 113.7%에서 2022년 4분기 기준 119.6%로 크게 높아졌다. 

오직 한국의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만 2021년 3분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가계가 12.6%, 기업이 40.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많이 빌리지만 지금까지는 열심히 갚고 있다는 뜻이다. 

전세를 포함한 ‘확대 가계부채’ 비율은 GDP 대비 156.8%로 BIS 조사대상 43개국 중 압도적인 1위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올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세 보증금 1058조3000억원을 합친 한국의 가계부채는 총 2925조3000억원이다. 

한국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속도가 빠른 것도 우려된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89.4%, 2018년 91.8%, 2019년 95.0%, 2020년 103.0%, 2021년 105.8%, 2022년 105.0%다. 특히 2022년 금리 인상 이후 집행된 대출의 금리 수준은 1%대 성장률의 시대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 신용 긴축 필요성=가계·기업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15개월 만에 동결했고,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도 역대 최대 폭으로 벌어져 있다.

한국 경제가 올해 1%대 초중반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신용 긴축을 어렵게 하는 이유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평가데이터(KoDATA)와 함께 국내 상장사 1612곳의 지난해 말 재무 상황을 분석한 결과, 매출은 전년 대비 12.1% 증가했지만, 영업이익 증감률은 전년 대비 34.2% 꺾였다.

[자료 | BIS]
[자료 | BIS]

한국은행이 14일 발표한 지난해 기업경영 분석 결과를 보면 한해 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의 비중은 전년보다 1.1%포인트 커진 35.1%에 달한다. 

신용 긴축은 우리가 경기침체를 악화하지 않는 범위에서 부채축소(디레버리징)와 인플레이션을 잡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신용 긴축은 은행들이 금리와 상관없이 대출할 상황이 안 돼 자연스럽게 대출 규모가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골드만삭스는 올 초 미국에서 은행들이 연쇄 파산한 여파로 예금보호 비중이 낮은 소형은행 등에서 신규대출이 줄면서 금리를 0.25~0.50%포인트 인상한 효과가 났다고 발표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도 지난 5월 금리 동결을 언급하며 “앞으로 6~7주 동안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신용 긴축(credit tightening)’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를 동결해도 신용 긴축으로 금리 상승 효과가 날 수 있다는 의미다. 

■ 정부의 신용 완화 역행=신용 긴축의 핵심은 부동산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6월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주택 대출 보유한 차주의 신용대출 등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은 가계부채의 67%에 달하기 때문이다.

18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전세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파악한 ‘전세제도의 구조적 리스크 점검과 정책제언’ 보고서에서 “전세자금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금리 인상을 대신해서 대출을 옥죄는 상황을 만드는 게 신용 긴축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잇달아 DSR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잇달아 DSR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전체 가계대출이 분기 기준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올해 1분기에도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전 분기보다 5조3000억원 증가한 1017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더구나 1‧2월 감소세를 보이던 주택담보대출은 3‧4월에 각각 1조원, 1조9000억원 늘어났다. 

더구나 정부는 신용 여건을 올 초부터 큰 폭으로 완화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것은 정부가 지난 1월 출시한 특례보금자리론이 3개월 만에 올해 공급 목표인 39조6000억원의 80%를 채운 영향이 크다.

특례보금자리론은 소득제한과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9억원 이하 주택에 최대 5억원까지 대출해주는 1년 한시 정책 상품이다. DSR은 돈을 빌릴 때 자신의 소득으로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지난해 7월 이후 대출이 1억원 이상인 차주의 경우 DSR 4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최근 주택 거래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DSR 규제까지 완화하면 주택담보대출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금융공사가 지난 6월 셋째주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특례보금자리론의 평균 금리는 연 4.26%로 예금 은행들의 지난 4월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인 4.19%보다 오히려 높았다. 그런데도 특례보금자리론이 인기를 끈 것은 DSR 등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멀어지는 디레버리징=한국은행이 6월 셋째주 공개한 지난 5월 25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의사록에는 행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를 꼬집는 목소리가 담겨있다. 어느 위원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가계부채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주택시장 연착륙 목적의 정책 시행으로 가계대출이 늘어나면서 정책 간에 상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발언했다. 다른 금통위 위원은 “(가계대출 증가에는) 시장금리가 하락한 점도 영향을 미쳤지만, 특례보금자리론 실행의 영향도 크다”고 발언했다. 

한국은행은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을 내놓는 등 신용 완화에 나선 게 가계대출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뉴시스]
한국은행은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을 내놓는 등 신용 완화에 나선 게 가계대출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정부는 신용 긴축, 디레버리징을 두곤 한국은행과 정반대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3일, 추경호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9일 일제히 DSR 완화를 언급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단기적, 한시적으로 DSR을 미세하게 하향 조정하겠다는 얘기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반등하고 있다. 매매가격, 매매량, 부동산 관련 대출, 전세가격, 청약경쟁률 모두 일제히 상승했다. 18일 신한라이프 상속증여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가장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응답자의 34.6%가 부동산 투자를 꼽았다. 부동산 거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고, 구매자들은 가격 상승에 베팅한다면, 가계부채 축소 기회는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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