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문래동 떠나려는 소공인들
제조업 공정 이어나가려면
모여 있어야 시너지 낼 수 있어
청계천 사례 타산지석 될까
제조업 위한 정부 결단 필요해

영등포구 문래동의 1279개 공장이 한번에 이전할 땅을 찾고 있다.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임대료가 올랐고 재개발도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됐다. 공장을 운영하는 소공인들은 소공인들이 떠나야만 했던 청계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미 알고 있다. 어차피 나가야 할 수밖에 없다면 한번에 다 같이 움직여서 최대한 경쟁력을 유지하자는 게 서울소공인협회의 목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목표다. 더스쿠프가 문래동을 떠나야 할 운명과 마주한 소공인들을 만나봤다. 

임대료 상승을 이기지 못한 문래동 소공인들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사진=천막사진관]

서울에 남은 가장 큰 공업단지는 문래동(문래동1~6가)이다. 물론 영원할 순 없다. 영등포구 측은 지난 9일 문래동에 있는 소공업체 1279개를 ‘통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개발을 위한 일방적인 결정일까. 그건 아니다. ‘통이전’을 먼저 고려했던 건 문래동에 있는 1279개의 소공업체들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살펴보려면 2020년 12월로 돌아가야 한다.

2020년 12월 서울소공인협회가 ‘문래동 기계금속 산업 집적지 실태조사 및 산업 활성화 컨설팅’을 발주했다. 2021년 12월 나온 최종 보고서에는 문래동에 아파트형 공장을 세우는 방안과 대체지를 찾아 이전하는 방안이 모두 포함됐다.[※참고: 문래동 아파트형 공장 방안이 왜 사라졌는지는 후술했다.] 

서울소공인협회는 문래동 공업 집적지에 있는 소공인들이 모인 단체다. 이런 점에서 보고서의 결과는 다소 의외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자신들의 사업지를 떠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오랜 기간 축적해온 인프라를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곳 소공인들은 먼저 ‘떠날’ 계획을 수립한 걸까. 

■ 임대료 = 문래동은 이미 ‘힙’한 동네다. 힙한 바람이 불어온 것도 벌써 12년 전이다. 문화사업 지원ㆍ운영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은 2010년 문래동에 있는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문래예술공장 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홍대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던 상태였다. 저렴한 임대료 덕분이었다. 문래동에 새롭게 둥지를 트는 건 예술가뿐만이 아니었다. 볼거리가 생기자 관광객이 늘었고 예술가들이 모이자 비슷한 모습의 카페와 음식점도 늘었다.

유동 인구의 증가는 상업 건물의 임대료 상승을 부채질했다. 2010년대 중반만 해도 월 임대료가 50만원이던 문래동의 한 상가는 지금 3배 많은 임대료를 줘야 빌릴 수 있다. 문래동에 공장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주변 임대료가 오른다. 내 공장 건물도 마찬가지다. 이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건 영세한 소공업이 아닌 카페나 음식점이다.

문래동 건물주의 셈법은 그렇게 바뀌었다. 공장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하나둘씩 줄어들고, 그곳엔 카페나 식당이 들어섰다. 실제로 2015~2021년 문래동2가에서 매매된 건물 46호 중 20호가 카페나 식당으로 바뀌었다.

■ 청계천의 기억 = 문래동보다 앞서 이런 바람이 불었던 곳이 있다. 청계천이다. 지금 청계천은 작은 공장들이 사라지고 고층 오피스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기계부품업체 대하정공을 운영하는 최재식 대표는 8년 전 청계천에서 문래동으로 공장을 옮겼다. 많은 이웃들은 당시 서울시가 대안으로 내놨던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를 선택했다.

그중 몇몇은 경기도 양주 등을 택했고, 100여개 업체는 문래동으로 이전했다. 최 대표는 “그때도 가봤지만 가든파이브는 일하기엔 너무 좁은 곳이었다”면서 “그래서 문래동을 택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의 말처럼 8년이 흐른 지금 가든파이브에 남아 있는 공장은 많지 않다. 가든파이브를 떠나지 않은 공장들도 문래동에서 중간처리를 마친 다음 제품을 들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협업할 공장이 가까이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문래동마저 같은 상황에 처했다. 일부 시민단체가 청계천과 가든파이브를 사례로 들며 ‘산업 이전’이 성공한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협업의 힘 = 왜 산업 이전은 매번 실패했을까. 이 질문의 답은 제조업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제조업은 하청과 재하청으로 얽힌 형태다. 시화공단이나 남동공단 등 수도권에 있는 대기업ㆍ중소기업인 발주처가 하청을 주고 하청회사가 또다시 문래동에 재하청을 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대기업은 대량 생산에 적합하다. 테스트 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회사에 맡기는 게 더 경제적이다. 문래동이 재하청에 적합한 건 ‘협업 시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일반적인 과정은 금형→주조→소성가공→용접접합→열처리→표면처리 등 총 6개다. 문래동에선 이 6단계를 모두 처리할 수 있다. 특히 소성가공과 표면처리 업체 수는 수도권을 기준으로 각각 38.3%, 27.6%가 문래동에 있다. 문래동이 청계천처럼 흩어지면 한번에 이뤄지던 금속ㆍ기계 제조 과정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전을 하려면 다 같이 해야 하는 이유다. 

■ 어려운 선택 = 그럼 문래동에 남는 게 유리하지 않을까. 소공인들은 왜 떠날 생각을 품은 걸까. 소공인들이 아무런 대안도 없었던 건 아니다. 이들은 2019년 ‘내공장갖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아파트형 공장을 만들어 ‘내 공장’을 마련하자는 게 목표였다.

4년 후인 2023년 현재 참여업체는 320곳, 모인 돈은 30억여원이다. 하지만 영등포구청이 소공업체의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문래동에 공장을 만드는 방안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더구나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 2021년 기준 문래동 공장의 1㎡당 임대보증금와 임대료는 각각 16만5000원, 1만6000원이었다. 66㎡(약 20평) 이하 공장이 전체 공장의 60% 이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공장은 보증금 1089만원에 매월 105만6000원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이마저도 이전 임대료와 비교하면 크게 오른 편이다 보니 소공인들이 희망하는 임대료(연구 기준)는 현재 임대료보다도 낮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영등포구청이 문래동4가 재개발 조합 설립을 허가했다. 조합을 설립했다는 건 그만큼 재개발 사업이 한걸음 더 진전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임대료가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소공인들로선 이를 버틸 재간이 사라진다. 공공이 예산을 투입해 지원하면 몰라도 그런 움직임은 없다. 결국 남은 건 ‘이전’뿐인 셈이다. 

■ 남은 과제들 = 그렇다면 문래동 소공인들은 어디로 이전할까. 이들의 공동이전을 도와줄 법안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있긴 하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관할하는 ‘공공임대주택’처럼 사무용 건물에도 ‘공공임대 지식산업센터’가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 산업의 6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소공업 분야에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한부영 서울소공인협회 내공장갖기 프로젝트 추진위원장은 “일본ㆍ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소공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있다”며 “대량 생산을 하는 건 대기업에서 할 수 있어도 첫번째 샘플을 만들어 테스트하는 건 ‘문래동’ 같은 소공인들이 집적한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산업단지를 만들어 정책적으로 육성해 주지만 소공업에는 그런 기회를 제공한 적이 없었다”며 “이런 점에서 정부가 소공업을 위한 산업단지를 만드는 등 지속적인 육성을 위해 노력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래동 소공인들은 협업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함께 이전할 수 있는 공공 후보지를 찾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래동 소공인들은 협업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함께 이전할 수 있는 공공 후보지를 찾고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소공업을 보호해달라는 말은 문래동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다. 10여 년 전 청계천 개발 때도 소공인들은 요구했고 을지로 인쇄골목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하지만 행정도 정치도 제대로 된 응답을 내놓지 못했다. 대책으로 이주용 건물을 내놨지만 효과는 없었다. 산업 연계는 끊어졌고 입주했던 소공인들도 다시 나왔다. 

그걸 지켜봐 온 문래동의 소공인들이 미래 플랜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흩어지지 않고 한 번에 다 같이 옮겨야 이 산업은 유지됩니다. 이미 개발이 시작됐는데 막을 수는 없겠죠. 다 같이 갈 곳을 찾는 것.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겁니다.”

아직 이전 후보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조건은 명확하다. 다 함께 갈 수 있는, 단층 공장을 만들 수 있는 소공업만을 위한 땅이다. 정부는 제조업의 뿌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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