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IT 언더라인
스마트폰 기준은 일체형
EU 배터리 탈착 법안 내놔
달라진 환경에 제조사 골머리
생산 비용 증가할 가능성 높아
기기 교체 주기 더 늘어날 수도
제조사들 어떻게 대응할까

스마트폰 업계가 또다른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유럽의회가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교체가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선 당장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제조 비용 증가를 걱정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스마트폰 판매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왜일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스마트폰 배터리 이야기를 다뤄봤습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분리되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제조사들의 고민도 깊어졌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마트폰 배터리가 분리되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제조사들의 고민도 깊어졌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집중과 단순함, 그것이 나의 명상 주문 중 하나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어렵다(That’s been one of my mantras—focus and simplicity. Simple can be harder than complex).’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입니다.

이 말처럼 그의 초점은 늘 ‘단순한 스마트폰’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게 아이폰(2007년 6월)이었습니다. 전면엔 수많은 버튼을 없앤 뒤 디스플레이를 배치했고, 불룩 튀어나와 있던 배터리를 안으로 집어넣어 일체형으로 바꿨죠. 스마트폰 전용펜도 사용할 필요가 없도록 손가락으로 모든 기능을 작동할 수 있게 설계했습니다.

이런 단순함에 매료된 소비자들은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어젖혔습니다. 아이폰은 출시 후 6개월 만에 139만대가 판매됐고, 이듬해엔 1년간 1163만대나 팔려나갔습니다(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 이는 당시 1억2232만대(2007년)였던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의 10%를 차지하는 수준입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죠.

그래서일까요. 지금의 스마트폰 외형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전면부의 홈 버튼도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애플은 한술 더 떠 이어폰 단자까지 없앴습니다. ‘단순한 게 최고다(Simple is the best)’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여전히 스마트폰 업계를 관통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간결함을 중시하는 스마트폰의 제작 방식이 바뀔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유럽의회가 본회의에서 ‘지속가능한 배터리법’을 통과시키면서입니다.

이 법안은 배터리 설계와 생산, 폐배터리 관리 등 배터리를 규제하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이 이 법안을 도입하려는 건 ‘친환경’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전기차 등 배터리를 쓰는 기기들이 늘면서 폐배터리도 급증하고 있으니,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으로 산업 구조를 바꿔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게 이 법안의 골자죠.

[자료 |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사진 | 뉴시스]
[자료 |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사진 | 뉴시스]

이 법은 스마트폰의 배터리 디자인도 규제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EU 내에서 판매하는 스마트폰은 소비자들이 배터리를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 배터리를 내장형이 아닌 탈착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현재 형식적인 EU 이사회 승인 절차만 남겨두고 있어 이 법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무척 높습니다. 그러면 법안 내용에 따라 2025년에 효력이 발생하고, 늦어도 2027년엔 EU 국가 전체에 적용됩니다.

이 법안이 통과하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골치가 아파질 겁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설계가 이전보다 더 어려워질 공산이 큽니다. 최근 시중에 유통하는 스마트폰의 상당수는 대부분 방수·방진 기능을 갖추고 있는데, 이게 가능한 이유 중 하나가 스마트폰을 일체형으로 설계하고 있어서입니다.

물론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2013년 삼성전자는 탈착형 모델인 갤럭시S4액티브에 IP67 등급의 방수·방진 기능을 탑재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전체 등급 중 가장 높은 IP68의 바로 아래단계죠.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술 공정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탈착형으로 만들어도 높은 품질의 방수·방진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구현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생산 비용이 늘어나는 걸 피할 순 없을 겁니다. 제품 디자인을 바꾸는 건 물론이고 제조 공정 라인업도 새로운 디자인에 맞춰 바꿔야 합니다. 라인업을 탈착형과 일체형으로 이분화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겁니다. 국가별로 디자인을 다르게 만드는 것보단 배터리 탈착형 스마트폰(이하 탈착형 스마트폰)으로 통일하는 게 더 효율적이니까요.

[자료 |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사진 | 뉴시스]
[자료 |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사진 | 뉴시스]

자! 여기까지가 배터리법을 두고 지금까지 나온 스마트폰 업계의 반응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 유저의 소비패턴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일단 스마트폰을 새로 바꾸는 기간이 대폭 늘었습니다. 10년 전인 2013년 당시 소비자들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평균 25.6개월지만, 지금은 43개월로 10년 새 67.9% 길어졌습니다(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기기 성능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신모델의 파격적인 기능이나 성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면서 “여기에 구입 가격까지 꾸준히 올랐기 때문에 교체 주기가 길어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제조사를 불문하고 주력 스마트폰 가격대는 계속 상승세를 보였죠. 일례로, 2013년 출시한 아이폰5의 가격은 81만4000원(16GB)인 반면 현재는 125만원으로 53.5% 올랐습니다.

여기까진 약과입니다. 상위 모델 ‘아이폰14 프로맥스’의 가격은 무려 175만원이나 됩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는 89만9800원(갤럭시S4)에서 99만9900원(갤럭시S22)으로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만, 최상위 모델인 갤럭시22울트라 모델값 역시 145만2000에 이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체형 스마트폰이 탈착형으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일체형과 기능에 큰 차이가 없다면 소비자들로선 반길 만한 상황임에 분명합니다. 이전에는 스마트폰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면 전문 수리점에 맡겨야 했습니다. 교체 비용도 꽤 비쌉니다.

아이폰의 경우 10만9800원(아이폰13 기준), 갤럭시는 일반형 모델은 4만~5만원 선이고 폴더블폰은 10만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탈착형 스마트폰을 쓰면 자신이 원할 때 손쉽게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EU의 배터리법에 난색을 표하는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익명을 원한 스마트폰 판매점의 한 관계자는 “애플은 잡아당기면 배터리가 분리되는 ‘풀탭(pull-tab)’ 띠를 아이폰 안에 매립해 놨는데, 이 분리법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가 수백만건에 달한다”면서 “이는 그만큼 소비자들의 배터리 교체 수요가 높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 탈착형이 되면 소비자는 편하겠지만 제조사로선 매출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자료 | 더스쿠프]
[자료 | 더스쿠프]

이제 스마트폰 업계를 둘러싼 배터리법의 논점이 무엇인지 눈에 보이나요? 현재 스마트폰 시장은 정체기에 들어선 상태입니다. 지난해 시장 전체 매출이 4090억 달러(531조 4955억원)로 2017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통계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수년째 계속된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소비 심리가 한풀 꺾였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체 주기를 늘리는 배터리법까지 적용되면 판매량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연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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