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
저가 시장 공략 가속화
LFP 이어 나트륨 공세
리튬 비해 성능 낮지만
발전 가능성 배제 못해
국내 제조사 주시해야

‘가성비’ 제품으로 떠오른 리튬인산철(LEP) 배터리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4년 전만 해도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LFP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7%를 넘겼다. 그 배경엔 LFP 배터리의 성능 개선에 집중한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있었다. 중국 기업들의 기세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들은 나트륨이란 새로운 소재를 무기로 중저가 시장에서의 장악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나트륨 소재 배터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나트륨 소재 배터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저익선低低益善. 사자성어 다다익선(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에서 파생한 조어造語로, ‘가격이 낮으면 낮을수록 좋다’는 뜻이다. 요즘 이 말이 꼭 들어맞는 곳은 숱한데, 그중엔 배터리 시장도 있다. 

배터리 업계에선 지금 값싼 소재를 찾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기차를 만드는 완성차기업들이 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저렴한 소재로 만든 배터리를 대거 채택하고 있어서다. 

중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대표적이다. 사실 LFP 배터리는 니켈 기반의 삼원계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낮다. 이 때문에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는 삼원계의 일종인 NCM(니켈ㆍ코발트ㆍ망간) 배터리를 장착한 차보다 주행거리가 짧다.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인 자동차 시장에선 치명적 약점이다. 

이런 단점에도 LFP 배터리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건 가격경쟁력이 뛰어나서다.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의 원료 가격을 비교해보자. 올 3월 기준 NCM의 주원료인 니켈, 코발트의 톤(t)당 가격은 각각 2만2000달러, 3만4000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LFP의 주원료인 철의 t당 가격은 127달러다(철 62% 함유 분광 기준). 단순 계산만 해봐도 니켈이나 코발트가 철보다 각각 173배, 268배 더 비싸다. 생산비를 절감해야 하는 완성차기업들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참고: LFP 배터리의 공급이 확대한 이유는 가격경쟁력만이 아니다. 중국 제조사들의 연구ㆍ개발(R&D)로 LFP 배터리 기술 수준이 향상된 것도 한몫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당 평균 145~160Wh였던 LFP 배터리의 셀 단위 평균 에너지밀도는 올 들어 210Wh로 31.3% 증가했다.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의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400㎞ 수준으로 개선됐다.]

LFP를 발판으로 ‘소재 전쟁’의 불씨를 댕긴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여세를 몰아 또다른 저가 소재를 내세우고 있다. 이번엔 나트륨이다.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의 최대 강점은 역시 가격이다.

6월 27일 기준 탄산나트륨의 가격은 ㎏당 1.96위안으로 LFPㆍNCM 배터리의 토대가 되는 탄산리튬 가격(310.5위안)의 0.6% 수준에 불과하다. 워낙 낮은 원가 덕분인지 시장 한편에선 나트륨으로 만든 배터리가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 제조사가 “앞으로도 나트륨 소재 배터리를 개발할 계획이 없다”거나 “가격대가 낮은 보급형 배터리는 LFP나 코발트 프리(NCM에서 코발트의 비중을 최저치로 낮춘 것) 배터리로 해결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근거 없는 단호함은 아니다. 나트륨 소재 배터리는 LFP와 마찬가지로 리튬 기반 배터리에 비해 성능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배터리에 전기가 잘 흐르기 위해선 소재 안에 있는 원자(물질의 기본 구성 단위)의 크기는 작고 무게는 가벼워야 한다. 그래야 원자가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고, 전기에너지를 원활하게 전달할 수 있다.

나트륨은 그 반대다. 리튬보다 원자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나트륨으로 만든 배터리는 리튬 배터리보다 에너지 용량이 적다. 에너지 용량이 전기차 주행성능과 직결된다는 점을 떠올리면, 나트륨 배터리는 시작부터 리튬 배터리에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측면에선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굳이 나트륨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 이유가 없어 보인다.  

나트륨 내세운 중국의 공세

눈여겨볼 대목은 지금부터다. 지난 4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언론 뉴욕타임스(NY T)는 ‘중국이 배터리 분야의 그다음 큰 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이유(Why China Could Dominate the Next Big Advance in Batteries)’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나트륨 배터리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또한번 굴기할 것이다”. 

중국 제조사들이 나트륨 배터리로 LFP에 이은 ‘제2의 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할 수 있을 거란 얘긴데, 이 주장이 터무니없진 않다. NYT 보도에 따르면 나트륨 배터리 연구는 197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돼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이후 기술 상용화에 앞장선 곳이 바로 중국이다. 영국의 컨설팅회사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BMI)의 조사 결과, 현재 전세계에서 계획 중이거나 이미 건설 중인 20개의 나트륨 배터리 공장 중 16개가 중국에 있다.

BMI는 앞으로 2년 내 중국이 글로벌 나트륨 배터리 생산 능력의 95%를 점유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은 이미 나트륨 배터리를 대중화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갖춰놓은 셈이다.

나트륨만이 갖는 강점과 잠재력도 주목할 만하다. 엄지용 자동차부품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나트륨은 원소 중 그나마 원자 크기가 작은 편인 데다 리튬과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기존 리튬 배터리 제조 공정을 똑같이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나트륨이 리튬을 대체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최성훈 광주친환경에너지연구센터 박사는 “리튬 수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장량이 많다는 것만으로 나트륨은 메리트가 높다”면서 “당장 상품화가 힘들다고 해도, 미래 배터리 시장의 한 축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나트륨 매장량은 리튬의 423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유진투자증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면, 중국이 시장을 거머쥐기 전에 우리나라 업체들도 하루빨리 나트륨 배터리 기술을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법하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노선을 전환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기업은 매우 보수적이며 이는 배터리 제조사들도 마찬가지”라면서 “제조사로선 현재 무르익은 기술과 (시장에) 자리를 잡은 소재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훈 박사는 “지금 제조사들의 공장, 설비, 공정이 모두 리튬 배터리에 최적화돼 있다”면서 “소재를 바꾸면 단순히 소재만 달리 하는 게 아니라 관련 인프라 전부를 모조리 교체해야 하기 때문에 제조사 입장에선 비용을 투자했을 때 그만큼 메리트가 있을지 회의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엄지용 수석연구원 역시 “소재를 바꾸면 배터리 개발 자체도 새로운 환경을 세팅해서 다시 해야 하고, 성능 평가ㆍ완성차기업 승인 등의 필수 절차도 다시 거쳐야 한다”면서 “새로운 소재를 채택해서 배터리 성능이 아주 월등해지거나 가격이 획기적으로 저렴해진다는 확신이 없는 이상, 배터리 제조사는 굳이 소재를 확장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내 제조사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

논리적으론 타당한 얘기다. 기업의 자원은 한정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성이 확실한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일 수 있다. 더욱이 나트륨 배터리 앞엔 LFP 배터리가 그랬던 것처럼 기술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다. 언제쯤 기술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일례로 나트륨 배터리의 시장화를 주도하고 있는 중국 최대 배터리 업체 CATL은 지난 6월 15일(현지시간) 박람회(더 스마터 E 유럽)에서 선보이기로 했던 나트륨 배터리를 공개하지 않았다. 시장 안팎에선 CATL의 기술력에 의구심이 일고 있다. 


그럼에도 ‘만약’을 가정해볼 필요는 있다. 엄지용 수석연구원은 “LFP 배터리만 해도 국내 업체들이 이미 십수년 전에 개발했었다”면서 “다만 시장이 지금처럼 커질 것이란 예상을 못해 더이상의 진전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LFP 배터리의 ‘작은 가능성’에 주목했고, 집중 투자를 통해 성능 향상을 이끌어냈다.  

나트륨 배터리에도 똑같은 시나리오를 적용할 수 있다. 지금은 나트륨 배터리의 성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건 아니다.

중국 정부가 나트륨 배터리의 전초기지로 삼은 후난성湖南省 창사시長沙市에선 대학 교육을 통해 기술 인력이 끊임없이 배출하고 있다. 상당수 졸업생은 세계 최대 화학 제조업체인 독일의 바스프(BASF) 등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에서 나트륨 배터리 기술을 연구 중이다.

CATL은 올 하반기 나트륨 배터리를 출시할 예정이다.[사진=CATL 제공]
CATL은 올 하반기 나트륨 배터리를 출시할 예정이다.[사진=CATL 제공]

중국 업체들이 배터리 셀→모듈→팩으로 이어지는 패키징 과정을 셀→팩으로 줄이며 LFP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늘렸듯, 나트륨 배터리에서도 차세대 기술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2월 발표한 리포트(나트륨이온배터리 게임체인저가 될 것인가)에서 “나트륨 배터리로 ‘반값 배터리’ 달성이 가능하면 중저가 라인을 중심으로 확장 속도가 빠를 것”이라며 “올 하반기 (CTAL이) 출시할 것으로 예상하는 나트륨 배터리의 성능, 스펙, 가격이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해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런 분석엔 나트륨 배터리가 언제 LFP 배터리처럼 급부상할지 모른다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깔려 있다. 우리 기업들이 나트륨 배터리를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라고 치부하기보단 이것의 실체를 좀 더 면밀히 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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