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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 더 단단해진 달러
미 증시 떠받친 재정지출
풍부한 여유자금도 한몫
신용등급 복귀 쉽지 않아
미, 장기적 안정은 의문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지만, 그 여파가 크지 않다. 미국 경제계 주요 인사들은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을 무시하거나 오히려 비난하고 있다. 미국 금융시장이 신용등급 하락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지만 그 여파는 크지 않다. [사진=뉴시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지만 그 여파는 크지 않다. [사진=뉴시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는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된 지난 2일 경제 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강등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며 “미국과 미군이 만들어준 안정성에 의지하는 나라들의 신용등급이 우리보다 높다(they depend on the stability created by the U.S. and its military)”고 말했다. 피치가 미국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한 나라는 호주‧덴마크‧독일‧룩셈부르크‧네덜란드‧스위스‧노르웨이‧스웨덴‧싱가포르 9개국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같은 날 “피치의 결정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며 “미국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특출나게 안전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워런 버핏은 3일 CNBC와 인터뷰에서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주 월요일, 이번주 월요일에 미국 국채 100억 달러어치를 샀다”며 “다음주에도 우리는 100억 달러로 미국 국채 3개월물을 살지 아니면 6개월물을 살지만 걱정한다”고 말했다. 버핏은 그 이유가 “누구나 알듯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말은 사실일까.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가 미국 국채시장과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결과적으로는 사실이다. 하지만, 피치가 지적한 재정악화, 정부부채 증가, 정치적 해결 능력의 약화라는 문제는 미국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심각한 이슈다. 미국이기 때문에 당장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뿐이다. 

신용등급 강등은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적 흥망을 결정할 수도 있는 대형 이슈다. 피치가 강등 이유로 꼽은 과도한 재정지출, 막대한 정부부채는 그리스‧스페인‧아일랜드 등에도 공통으로 적용됐던 문제들이다. 이들 나라는 신용등급 강등으로 큰 피해를 보고, 국가부도 사태 직전까지 몰렸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해당 국가 경제의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장기국채 금리가 급등한다. 이로 인해 주식시장 자금이 국채로 이동하면서 증시가 하락세를 탄다. 최악은 국가부도, 최선도 해외 투자금의 이탈이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는 세계 최고 안전자산이란 입장을 밝혔다.[사진=뉴시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는 세계 최고 안전자산이란 입장을 밝혔다.[사진=뉴시스]

하지만 미국에선 신용등급 강등의 여파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신용등급이 강등돼 글로벌 자금이 안전한 투자처로 이동해도 여전히 미국의 장기국채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이어서다. 미국과 그 외 국가의 차이점은 통화다.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신용등급 강등에도 오히려 강세를 보였다. 달러가 대체 불가능한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력은 여러 차례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미 검증이 끝났다. 2008년 금융위기, 2013년 재정절벽 위기는 모두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지만, 당시 달러 가치는 상승했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위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달러, 달러화 표시 채권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이 지난해 10월 “나는 달러 강세를 걱정하지 않는다. 오직 나머지 세계가 걱정될 뿐이다(I’m not concerned about the strength of the dollar, I’m concerned about the rest of the world)”고 말한 배경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미 증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다른 이유는 미국에 돈이 넘쳐나서다. 모건스탠리는 신용등급 강등 사태 일주일 전 발표한 ‘선행과 후행 지표의 레벨’ 보고서에서 “S&P 500이 9개월 동안 27% 상승했지만, 하락장을 대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에 돈이 넘치는 이유가 “미국 재정지출이 팬데믹 이후 급증해 통화량(M2)은 5월 기준 20조8000억 달러에 달하고, 최근 1년 동안 고금리에도 기업들은 그 전에 오랜 기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놨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료 | 시장조사회사 야르데니 리서치, 참고 | 8월 기준]
자료 | 시장조사회사 야르데니 리서치, 참고 | 8월 기준]

실제로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PER를 비교해 보면 미국 증시에 몰린 돈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PER는 기업 이익 대비 주가가 몇배인지를 나타낸다. 시장 조사회사 야르데니 리서치에 따르면 8월 현재 미국 증시의 평균 PER는 20.0이다.

반면 영국은 10.7, 독일은 10.9에 불과하다. 브라질과 터키는 각각 8.1, 5.0에 그쳤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일 한국 코스피의 PER는 15.96이다. 

미국 경제계의 날선 반응을 보면 이번 강등 조치에도 미 정부는 재정 관련 정책을 개선할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앞으로도 미국 증시가 계속 안전할 것이라고는 보장하기 힘들다. 신용등급은 한번 강등되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외환위기 발발 전 신용등급으로 돌아오는 데는 무려 16년이 걸렸다. 1996년 6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책정한 피치는 1997년에만 4회나 강등시켰다. 한국은 2002년 A로 올라왔지만, 2012년에야 외환위기 발발 이전 수준인 AA-로 복귀할 수 있었다. S&P도 12년 전 강등한 미국 신용등급을 아직도 상향 조정하지 않고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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