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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PI 상승분 90% 주거지수
샌프란 연은 “내년까지 집값 하락”
재대출 권유해 우려 키우는 월가

미국 펜실베니아주 주택가. [사진=뉴시스]
미국 펜실베니아주 주택가. [사진=뉴시스]

#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주택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다가 올해 들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이를 두고 단순한 ‘데드캣바운스(일시적 회복)’인지 ‘대세 상승’인지 의견이 갈리고 있다. 

# 11일 발표된 미국의 7월 명목·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둘러싼 해석도 분분하다. 마땅한 방향성이 없어서다. 그런데 이번 CPI는 물가보다는 오히려 미국 주택 가격을 예상하는 데 더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 월가는 최근 미국 주택 가격이 정점에 근접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방식대로 가계 대출을 한번 더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의 악순환’이 우려된다. 

미국의 7월 CPI 상승률이 3.2%를 기록하고, 근원 CPI 상승률은 4.7%를 기록했다. 명목 CPI는 전월보다 0.2%포인트 상승했고, 근원 CPI는 전월보다 0.1%포인트 낮아졌다. 두 지표 모두 전망치보다는 다소 낮았다. 물가 지표의 방향성이나 동력이 한 방향을 가리키지 못하면서 이를 해석하는 목소리도 중구난방이다. 

■ 집값과 CPI 상승분=미국 주택 가격은 중위가격(순서대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있는 가격) 기준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하다가 올해 초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의 집값을 제대로 보려면 CPI를 봐야 한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이번 7월 CPI 상승분의 90%가 주거 지수와 관련됐다. 미국의 임대료와 집값이 여전히 뜨겁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거 지수의 상승폭은 확연하게 감소하고 있다. 계약 기간 등 문제로 주거 지수가 실제 CPI에 반영되는 데는 약 1년이 걸린다. 주거비 지수(shelter index)는 임대료, 임대 기회비용(자가의 경우), 소유주와 임차인의 보험료 등으로 구성된다.

[자료 |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 | 미국 노동통계국]

집값이 오르면 임대료, 보험료도 상승한다. 미국 CPI의 30~40%가 이같은 주거 관련 항목들이다. 한국은 자가의 임대 기회비용 등이 빠져있어 집값과 관련된 항목들이 CPI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대로 낮다. 

민간 경제연구소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라이언 스위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1일 회원들에게 보낸 노트에서 “CPI에서 주거 지수 인플레는 올해 눈에 띄게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CPI에서 주거 관련 항목의 물가상승률은 올해 3월 8.2%에서 7월 7.7%로 소폭 감소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주택시장 전망도 비슷하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지난 7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주거 관련 물가 상승은 내년 하반기까지 계속 완화될 것”이라며 “내년 중순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가격 하락)”고 내다봤다. CPI에 반영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올해 집값이 큰폭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 미국판 영끌의 악순환=샌프란시스코 연은이 내년 미국 주택 가격이 큰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한 가운데 월가에선 주택 소유주들이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을 늘려 자산시장에 재투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우려된다. 미국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의 악순환’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형 은행인 웰스파고는 지난 8일 ‘홈 스트레치: 미개발 자산이 소비를 유지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홈 스트레치’는 야구에서 3루와 홈베이스 사이를 뜻한다. 이 구간을 지나야 점수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팬데믹 이후 미국 가계의 초과저축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면서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보였지만, 이제 오른 집값을 바탕으로 가계가 빚을 내 소비와 투자에 나서야 경제가 활기를 띨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전체 단독주택 가격은 2017년 17조9000억 달러에서 2022년 41조2000억 달러로 폭등했다. 

뉴욕시에 있는 웰스파고 ATM. [사진=뉴시스]
뉴욕시에 있는 웰스파고 ATM. [사진=뉴시스]

2008년 금융위기는 집값 하락으로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한 집주인들이 대거 파산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주택 관련 대출은 모기지(주택 구매시 장기대출)와 홈 에쿼티(기존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로 나뉜다. 

2008년 당시 문제를 일으킨 건 홈 에쿼티다. 100만 달러짜리 집을 90만 달러 대출을 받아서 구매했는데 집값이 120만 달러로 오르면, 집주인은 홈 에쿼티를 통해서 추가로 30만 달러의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집값이 하락해 다시 90만 달러가 되면 주택 소유주는 파산하고, 은행이 집을 압류한다. 2006~2008년 미국은 집값 하락으로 이같은 일을 일상으로 겪었고, 이는 금융회사들의 줄파산으로 이어졌다. 

웰스파고도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지난 2008년과 2023년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기술하는 데 할애했다. 웰스파고의 변명을 요약하면 “미국 주택 가격이 오른 것에 비해서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 규모의 증가가 그리 많지 않아서 안전하다”는 내용이다.

웰스파고 이코노미스트들은 “너무 많은 대출과 레버리지는 2008년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이었다”며 “우리는 지금 집을 ATM처럼 쓰자고 제안하는 게 아니다”고 적었다. 과연 그럴까.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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